아시아 에너지 안보에 연 1조달러 필요, 호르무즈 충격에 공급망 재편해야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10-25 22: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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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아시아가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하면서 공급망 충격에 대비하려면 앞으로 15년간 매년 최대 1조달러 규모의 에너지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의 석유·가스 공급 차질이 아시아의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다시 드러내면서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전력망과 저장시설, 국내 에너지 생산, 수입선 다변화까지 포괄하는 에너지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최근 ‘아시아의 에너지 결산: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너지 시스템 확보(Asia’s energy reckoning: Securing the energy system to drive growth)’ 보고서에서 아시아 에너지 시스템을 보다 안정적으로 재편하기 위해 향후 15년 동안 연간 약 1조달러의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전망의 배경에는 빠르게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가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아시아는 현재 세계 에너지 수요의 약 절반을 차지하며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8%, 온실가스 배출의 약 55%를 차지한다. 특히 2040년까지 전 세계에서 새로 증가하는 순 에너지 수요의 약 70%가 아시아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맥킨지는 올해 아시아의 2040년 에너지 수요 전망을 지난해 예상보다 약 15% 높였다. 산업 활동 확대와 데이터센터 건설, 냉방 수요 증가 등이 에너지 소비를 끌어올리는 주요 요인이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 수요가 새롭게 증가하는 가운데, 경제성장과 도시화에 따른 산업·냉방용 에너지 사용도 함께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아시아의 에너지 소비 증가 속도에 비해 역내 석유 가스 생산 기반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아시아는 하루 약 4000만배럴의 석유를 소비하지만 역내 원유 생산량은 하루 약 1000만배럴에 불과하다. 천연가스도 2025년 기준 역외 지역에서 연간 약 1억3500만~1억4000만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한 것으로 맥킨지는 분석했다. 기존 유전과 가스전의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추가 투자가 없을 경우 아시아의 원유 생산량은 2040년 하루 약 700만배럴까지 떨어지고, 가스 자급률은 현재 약 76%에서 60%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

이 같은 구조적 취약성은 올해 호르무즈 해협 공급 차질을 계기로 더욱 뚜렷해졌다. 아시아는 그동안 원유 수입의 절반 이상, LNG 수입의 40%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해왔다. 이란 전쟁으로 이 항로를 통한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파키스탄에서는 액화석유가스(LPG) 부족이 나타났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순환정전이 제조업에 영 향을 미쳤다. 반면 일본과 싱가포르 등 상대적으로 재정 여력이 큰 국가는 비축유를 활용하고 미국 등 비 걸프 지역에서 추가 공급을 확보하면서 충격을 완화했다.

맥킨지는 이번 사태가 유럽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쳤던 것과 유사하게 아시아의 에너지 안보 정책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아시아가 유럽의 대응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렵다고 봤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수요 자체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단순한 에너지 절약이나 수요 감축만으로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맥킨지는 아시아 각국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선진경제는 비축시설과 국제 현물시장을 활용해 단기 공급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도 이러한 ‘수입 의존형 선진경제’에 포함된다.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국내 자원 탐사, 공급선 다변화 등을 병행해야 하는 국가군으로 분류됐다.

인도는 국내 석탄과 빠르게 늘어나는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국내 화석연료 자원과 바이오연료를 활용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필리핀처럼 에너지 가격 상승에 취약한 국가는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수요관리와 석탄, 태양광 등 대체 수단을 동시에 활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재생에너지는 아시아 에너지 투자의 가장 큰 축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맥킨지는 2040년까지 아시아에서 태양광과 풍력에 매년 약 3000억달러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중국은 절대적인 설비 규모에서 계속 역내 최대 재생에너지 설치국 지위를 유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만 늘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실제 수요지역까지 보내기 위한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 투자가 동시에 확대돼야 하기 때문이다.

맥킨지는 아시아의 전력망 투자가 현재 연간 약 1850억달러에서 2030년에는 3000억달러 이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과 인도는 이미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내륙지역과 대도시·산업지역을 연결하기 위한 초고압직류송전망(HVDC)을 확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의 급속한 증가는 전력망 투자 필요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1~3년 안에 건설할 수 있는 반면 대규모 전력망 확충에는 계획과 인허가 등을 포함해 5년 이상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 신청 규모가 12GW를 넘어섰는데 이는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약 40%에 해당한다. 맥킨지는 데이터센터나 전기차 등 새로운 전력수요가 실제 발생한 뒤 전력망을 확충하는 방식이 아니라 발전소와 송전망, 저장시설을 수요 증가에 앞서 함께 계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석탄 역시 예상보다 오랫동안 아시아 에너지 시스템에 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됐다.중국에서는 발전부문의 석탄 사용이 점차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증가가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하면서 향후 약 10년 동안 아시아 전체 석탄 수요는 비교적 정체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인도의 석탄 수요는 2040년까지 50% 이상, 인도네시아는 약 40%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맥킨지는 내다봤다.

이는 에너지 안보 강화와 탈탄소 정책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수입 LNG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이 불안정해질 경우 일부 국가는 단기적으로 국내에서 확보하기 쉬운 석탄에 다시 의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역시 단기와 장기의 전망이 다르다. 향후 5~10년 동안은 호르무즈 사태 이후 LNG 공급 위험이 부각되면서 각국이 석탄과 재생에너지를 우선 활용해 가스 수요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산업용 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전원 역할 때문에 가스 수요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의 가스발전 설비는 2040년까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확대될 수 있다는 게 맥킨지의 전망이다.

국내 석유 가스 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도 다시 중요해질 것으로 분석됐다. 아시아의 기존 가스전 생산량 감소를 상쇄해 현재 수준을 유지하려면 연간 600억달러 이상의 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 에너지 안보를 우선할 경우 과거에는 경제성이 떨어져 개발되지 않았던 중국과 인도네시아, 태국 등 일부 고비용 유·가스전도 정부의 지원이나 인센티브 아래 개발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바이오연료도 수입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거론됐다. 특히 팜유 등 바이오연료 원료를 확보하기 쉬운 동남아시아에서는 활용 가능성이 크다. 인도네시아는 바이오디젤 혼합비율을 B40에서 B50으로 확대했으며 말레이시아와 태국 역시 바이오디젤 혼합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대신 다른 공급망에 의존할 경우 위험이 또 다른 해상 요충지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라카 해협을 통과한 원유는 2025년 상반기 하루 2300만배럴 이상으로, 호르무즈 사태 이전 호르무즈를 통과했던 약 2100만배럴보다 많았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동북아시아로 이동한다.

맥킨지는 이에 따라 아시아 에너지 안보 전략을 ▲국내 에너지 생산 및 대체연료 확대 ▲수입 공급처·운송경로 다변화 ▲전력망·저장시설 등 인프라 확충 ▲에너지 효율과 수요관리 ▲투자자금 조달 등으로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에너지 안보가 반드시 화석연료 자급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태양광과 풍력, 원전, 바이오연료, 저장시설을 확대하고 송전망을 강화하는 것 역시 수입 화석연료에 대한 노출을 낮추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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