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기후변화와 연관된 가뭄과 홍수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일으키지만, 지진이나 화산 폭발과 같은 재난에 비해 국제 언론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재난의 실제 피해 규모뿐 아니라 얼마나 극적인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지, 사망자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피해 국가와 보도 국가 사이에 얼마나 강한 사회적 관계가 있는지가 국제뉴스의 비중을 좌우한다는 분석이다.
독일 본대학교와 영국 워릭대학교,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진은 2016년 이후 발생한 자연재난과 국가 간 언론 보도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재난이 발생하기 전후 특정 국가에 대한 해외 언론의 보도량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국제적인 보도량을 좌우하는 세 가지 주요 요인이 확인됐다. 재난의 유형과 사망자 수, 그리고 피해 국가와 보도 국가 사이의 사회적 연결성이었다.
지진과 산사태·눈사태 같은 급격한 지반 이동, 화산 폭발은 재난 직후 해외 언론 보도가 크게 증가했다. 산불 역시 비교적 높은 관심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발생하고 건물 붕괴나 화염, 화산 분출 등 강렬한 영상과 사진을 제공할 수 있는 재난일수록 국제적인 뉴스 가치가 높게 평가된 것이다.
반면 홍수와 가뭄, 폭풍, 극한기온 등 수문·기상재난에 대한 해외 언론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특히 가뭄 발생 이후 해외 언론 보도의 증가는 통계적으로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 홍수 역시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에 비해 보도 증가 폭이 현저하게 작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기후위기를 인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뭄이나 홍수는 인간의 생활과 식량 생산, 물 공급 등에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피해가 서서히 진행되거나 한 장면으로 포착하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반면 지진이나 화산 폭발은 발생 순간부터 극적인 영상과 피해 장면이 쏟아지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 쉽다. 연구진은 이런 보도 편향이 기후 관련 위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각각의 재난을 기후변화가 직접 발생시켰다고 규정한 것은 아니다. 논문은 기후변화를 정책적 맥락으로 다루면서, 앞으로 기후변화와 함께 여러 수문·기상재난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언론 보도 격차가 더욱 중요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 결과 사망자가 많아질수록 다른 나라 언론이 해당 재난을 보도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특히 사망자 0~9명인 재난과 비교했을 때 100명 이상이 사망한 대형 재난에서 해외 보도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피해 규모만으로 모든 보도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같은 수준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어느 국가에서 발생했느냐에 따라 언론의 관심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확인한 세 번째 요인은 국가 간 사회적 연결성이었다. 연구진은 국가 간 페이스북 친구 관계를 인구 규모에 맞춰 계산한 ‘사회적 연결성 지수(Social Connectedness Index)’ 등을 이용해 국가 간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피해 국가와 사회적 관계가 긴밀할수록 해당 국가의 재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났다. 단순한 지리적 거리나 공통 언어만으로는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본대학교와 워릭대학교의 티모 페처 교수는 개인적인 연결이 관심과 공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가상의 사례를 계산하면 독일 언론은 멕시코에서 62명이 사망한 폭풍과 방글라데시에서 100명이 사망한 폭풍을 비슷한 수준으로 보도할 것으로 추정됐다. 지리적으로는 방글라데시가 독일에 더 가깝지만 국가 간 사회적 관계의 차이가 보도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연구에서는 국가 집단 사이의 유전적 거리와 보도량 사이에서도 연관성이 관찰됐다. 그러나 이 부분은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유전적 유사성이 특정 집단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생물학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논문은 이를 과거 이주와 공동의 역사, 통혼, 문화·언어적 뿌리 등 장기간 형성된 국가 간 연결성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했다. 연구 설계만으로 이러한 요인들의 개별적인 인과효과를 분리할 수 없다는 점도 명시했다.
이번 연구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언론의 보도 관행을 넘어 이러한 선택이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언론 보도는 사람들이 기후위험의 심각성을 판단하고 감축·적응정책을 지지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피해가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는 가뭄이나 홍수 등이 국제뉴스에서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진다면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기후위기의 규모와 빈도를 체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연구진은 재난 보도의 선택과 프레이밍이 대중의 기후위험 인식과 국제적 연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연구는 재난의 심각성과 국제뉴스의 크기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갑작스럽고 시각적으로 강렬한 재난은 국경을 넘어 빠르게 알려지는 반면, 오랜 시간에 걸쳐 피해가 누적되는 가뭄과 홍수는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재난이 될 수 있다. 기후위기가 세계적인 문제인 만큼 국제 언론 역시 재난의 시각적 충격뿐 아니라 장기적인 인명·생계·환경 피해까지 고려하는 보도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