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처리 비용,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부담한다면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7-24 22: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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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제품과 포장이 폐기물이 된 뒤 처리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제품을 만든 기업인가, 아니면 지방정부와 시민인가. 이 질문은 폐기물 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확산되고 있는 확장생산자책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제도의 출발점이다.

EPR은 제품이나 포장이 폐기된 이후의 재활용·수거·처리 책임을 생산자에게 부여하는 정책이다. 기존에는 지방정부와 시민이 폐기물 처리 비용을 주로 부담했다면, EPR은 그 비용과 책임을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기업으로 이전한다. 이를 통해 기업이 처음부터 재활용이 쉽고 폐기물이 적게 발생하는 제품과 포장을 설계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EPR은 전 세계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포장재, 전자제품, 매트리스, 배터리 등 다양한 품목에 적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제도가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이미 7개 주가 생산자에게 포장재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책 확산과 함께 EPR의 효과와 한계를 평가하려는 연구도 늘고 있다. 예일환경대학 산업생태센터의 연구자인 리드 리프셋은 1990년대 초반부터 EPR을 추적해온 전문가로, 최근 EPR 연구와 분석을 모은 공개 온라인 참고문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는 EPR이 폐기물 감축과 제품 설계 개선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제도이지만, 실제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PR의 기본 구조는 생산자에게 폐기 단계의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제도에는 재활용 목표, 생산자의 비용 부담 의무, 재활용 및 폐기물 관리 체계, 모니터링과 집행 규정이 포함된다. 단순히 “기업이 돈을 낸다”는 수준을 넘어, 제품의 수거와 선별, 재활용까지 제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이 생산자책임기구(PRO, Producer Responsibility Organization)다. PRO는 생산자를 대신해 재활용품 수거, 선별, 처리 등 실무 서비스를 제공한다. 생산자는 해당 서비스 비용을 PRO에 지불한다. 제품 종류와 국가별 제도에 따라 운영 방식은 다양하며, 이 차이는 정책 설계의 복잡성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실험과 개선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EPR이 항상 순조롭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재 기업과 폐기물 관리 업계는 추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제도 도입에 반대해왔다. 또 현재 일부 제도에서는 기업이 제품의 재활용 가능성을 높이더라도 비용 부담이 시장 점유율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 친환경 설계를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적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의 EPR 포장법은 2025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전국 도매 유통업자 협회의 소송 대상이 됐다. 캘리포니아주의 EPR 포장법 역시 17개 주 법무장관들이 제기한 소송에 직면해 있다. 이는 EPR이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산업계 비용 구조와 주 정부 권한, 시장 규제 문제까지 건드리는 제도임을 보여준다.

EPR이 실제로 폐기물을 얼마나 줄였는지, 친환경 제품 설계를 얼마나 촉진했는지를 평가하는 일도 쉽지 않다. 국가별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경제 상황 변화, 폐기물 구성 변화, 제도 운영 방식 차이 등이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폐기물 감축 효과를 EPR만의 성과로 분리해 측정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에코 변조(eco-modulation)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 에코 변조는 제품이나 포장의 환경 성능에 따라 생산자가 부담하는 수수료를 차등화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재활용 원료를 많이 사용하거나 재활용이 쉬운 포장을 설계한 기업은 낮은 수수료를 내고, 재활용을 어렵게 만드는 복합재질이나 문제성 디자인을 사용하는 기업은 더 높은 비용을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는 EPR이 단순한 비용 회수 장치를 넘어 제품 설계 개선을 유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리프셋 연구자가 구축한 EPR 참고문헌 데이터베이스는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자료 기반이다.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학술논문, 보고서, 책, 학위논문, 컨퍼런스 논문, 사전 인쇄물뿐 아니라 정부, 싱크탱크, 산업협회, 컨설팅회사, 시민단체가 발간한 비학술 자료도 포함된다. 정책 입안자와 기업, 시민단체, 연구자들이 EPR의 설계와 성과, 한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목적이다.

EPR은 폐기물 문제의 책임을 소비자와 지방정부에만 맡겨왔던 기존 구조를 바꾸는 제도다. 하지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생산자 비용 부담, 재활용 목표, 제품 설계 인센티브, 투명한 데이터 관리, 강력한 집행 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결국 EPR의 성패는 생산자가 폐기물 처리 비용을 부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부터 재활용 가능성과 자원순환성을 고려하도록 산업 구조를 바꾸는 데 달려 있다. 폐기물 문제를 사후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과 설계 단계의 책임으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EPR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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