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세계 주요 육류·유제품 기업들이 수년간 기후 대응과 지속가능성을 약속해 왔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주장이 검증 불가능하거나 실질적 근거가 부족한 ‘그린워싱’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 실행보다 홍보성 메시지가 앞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마이애미대학교의 마야 바흐, 제니퍼 자케 연구팀은 최근 PLOS Climate에 발표한 논문에서 세계 최대 육류·유제품 기업 33곳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와 웹사이트에 담긴 환경 관련 주장 1233건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98%가 그린워싱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육류·유제품 산업은 식품 생산 부문 배출량의 57%,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소 16.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처럼 기후 영향이 큰 산업일수록 기업의 환경 주장이 실제 감축으로 이어지는지 면밀히 따질 필요가 있다고 보고,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발표된 주요 기업 자료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 전체 주장 가운데 841건, 즉 68%는 온실가스 배출이나 기후변화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이는 기후변화 대응이 대형 육류·유제품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내세우는 가장 핵심적인 언어가 됐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상당수는 구체적 행동 계획보다 미래 약속에 머물렀다.
실제로 전체 주장 가운데 467건, 즉 38%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 “2030년까지 물 부족 지역에서 6000억 리터의 물 복원 지원”과 같은 검증하기 어려운 미래 예측형 표현이었다. 연구진은 이런 주장이 실제 이행 경로와 측정 방법, 책임 구조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근거 부족이었다. 1233건의 주장 가운데 기업이 일정한 증거를 제시한 경우는 356건, 약 29%에 그쳤다. 이 가운데 학술적 과학 근거로 직접 뒷받침된 주장은 단 3건뿐이었다. 그중 2건만이 기후 관련 주장에 해당했다. 기후 대응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를 입증할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는 극히 드물었다는 의미다.
연구는 또 기업들의 ‘넷제로’ 약속 역시 실질적 감축보다 상쇄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짚었다. 조사 대상 33개 기업 가운데 17개 기업이 현재 순배출 제로 약속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2020년 4개 기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러한 약속이 직접적인 탈탄소화보다는 탄소 상쇄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연구진은 그린워싱 판별 틀을 적용해 기업들의 환경 주장을 재검토한 결과, 1213건이 그린워싱 성격을 띠는 것으로 평가했다. 예시로는 “2050년까지 순기후 중립 유제품 생산” 같은 구호성 문구가 제시됐다. 장기 목표는 제시하지만,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현재의 투자나 감축 계획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석 저자인 마야 바흐는 “세계 최대 육류·유제품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에는 그린워싱이 만연해 있었고, 이는 실제 기후 행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착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런 주장은 대중을 오도하고 소비자 인식에 영향을 미치며, 정책 입안자들이 강력한 기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압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인 제니퍼 자케 교수도 “육류와 유제품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물성 식품은 다른 식품보다 더 많은 배출과 환경 영향을 일으키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그 말들이 증거나 투자로 뒷받침되지 않는 공허한 약속처럼 보일 때, 그것은 지구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홍보 활동으로 읽히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육류·유제품 업계에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만 동물농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 불균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 산업에서의 그린워싱은 특히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이 기후 리더십을 주장하려면 장기 비전만이 아니라, 현재의 감축 실적과 투자, 검증 가능한 데이터가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이번 연구는 육류·유제품 대기업들이 내세운 기후 행동이 실제 변화의 신호인지, 아니면 소비자와 정책결정자를 겨냥한 이미지 관리인지 되묻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기업 책임은 더 이상 선언만으로 평가되지 않으며, 무엇을 약속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실제로 줄였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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