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탄소시장, 감축실적 확보보다 신뢰가 먼저

몽골·라오스·캄보디아·키르기스스탄, 파리협정 제6조 제도 정비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9-14 18: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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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파리협정 제6조에 따른 국제 탄소시장 참여를 위해 법률과 사업 승인체계, 국가등록부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도 산림과 매립지 메탄, 전기이륜차, 건물 에너지효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감축사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탄소시장을 확대하려면 감축실적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중계산 방지와 검증, 이익공유, 투자위험 관리까지 아우르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교부가 주최하고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국제 탄소시장 협력 컨퍼런스’가 지난 9월 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에서는 국가 간 감축실적 이전과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성 제고 방안이 논의됐으며 각국의 사례가 소개됐다.

몽골은 지난 7월 기후변화법을 제정하고 기후재원과 탄소시장, 온실가스 인벤토리, 배출량 보고체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2.7% 감축하고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한국과는 울란바토르 매립지에서 메탄을 포집·연소해 10년간 약 55만톤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라오스는 산림과 REDD+를 탄소시장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2025년 탄소크레딧 정부령을 채택한 데 이어 사업 승인과 국제 이전을 위한 세부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과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1000만달러 규모의 퐁살리주 REDD+ 협력사업을 진행한다. 다만 장기 예산과 전문인력 부족, 불명확한 이익공유 방식, 취약한 측정·보고·검증(MRV) 체계가 과제로 꼽혔다.

캄보디아는 2035년 온실가스를 조건부 기준 최대 55% 감축한다는 NDC 3.0을 마련했다. 목표 이행에 필요한 기후재원은 322억달러를 넘지만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은 제한적이어서 파리협정 제6조를 해외 투자 유치 수단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과는 전기이륜차 8000대를 보급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감축실적을 국제적으로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도 지난 2월 국가 탄소시장 시스템 구축에 착수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와 MRV, 국가등록부, 정보플랫폼을 연계해 탄소크레딧 발행과 국제 이전을 관리한다. 한국과는 공동위원회를 구성했으며, 비슈케크의 학교와 유치원 건물 단열을 개선해 25년간 약 16만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파리협정 제6.2조를 통해 감축실적을 국제적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그러나 판매한 감축실적을 자국 NDC에도 다시 반영하면 이중계산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정부 승인과 국가등록부 추적, 제3자 검증, 상응조정이 국제 거래의 필수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자국 NDC 달성에 필요한 감축분을 남겨두고 지역사회와 수익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자발적 탄소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도 제시됐다. 대한상의는 탄소감축인증표준(KCS)을 통해 32개 방법론과 31개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약 280만tCO₂e 규모의 탄소크레딧을 인증했다. 싱가포르와 인도, 라오스, 태국 등과 협력하면서 KCS를 아시아 시장으로 확대하고 있지만 파리협정 제6조와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 국제 품질기준과의 호환성 확보가 과제로 남아 있다.

에이미 메릴 자발적탄소시장무결성위원회(ICVCM) 대표는 효과적인 거버넌스와 투명성, 추적 가능성, 추가성, 영속성, 제3자 검증, 이중계산 방지 등을 담은 핵심탄소원칙(CCP)을 소개했다. 그는 기업이 먼저 사업 과정에서 배출량을 직접 감축하고, 고품질 탄소크레딧은 불가피하게 남은 배출이나 추가적인 기후행동을 지원하는 보완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탄소시장에는 공급 과잉도 나타나고 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세계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발행된 크레딧 가운데 실제 사용·소각된 비율은 약 26%에 그쳤다. 앞으로 CORSIA 등 규제시장이 새로운 수요처가 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수요 확대를 위해서는 실시간 데이터 전송과 검증이 가능한 디지털 MRV 등 신뢰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인된 방법론을 사용했다고 해서 모든 크레딧의 품질이 같은 것도 아니다. 비제로카본(BeZero Carbon)은 동일한 산림관리 방법론을 적용한 두 사업이 추가성과 탄소회계, 영속성 위험에 따라 각각 AA와 D라는 상반된 등급을 받은 사례를 제시했다. 방법론 차원의 인증과 함께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개발도상국의 정치·제도적 위험을 낮추기 위한 보증제도도 거론됐다. 세계은행그룹 다자간투자보증기구(MIGA)는 정부의 계약 불이행과 수용, 환전·송금 제한, 전쟁·내란 등을 보증한다. 유치국 정부가 감축실적의 국제 이전이나 상응조정 약속을 지키지 않을 위험도 계약위반 보증을 통해 관리할 수 있다.

국제 탄소시장은 개발도상국의 재생에너지 전환과 산림 보전에 필요한 재원을 공급할 수 있다. 반면 검증과 회계, 이익공유가 부실하면 선진국이 비용이 낮은 감축실적을 사들이는 상쇄시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한국 역시 크레딧 확보에만 집중하기보다 협력국의 MRV와 국가등록부, 전문인력 양성, 지역사회 편익을 함께 지원해야 한다. 탄소시장의 성패는 거래량이 아니라 실제 감축성과와 국제적 신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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