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원난이 심각해지면서 폐기물의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폐기물을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처리해야 한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폐기물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되었고 재활용기술도 점차 발전함에 따라 폐기물을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닌 제품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자연에 부존되어 있는 천연자원량보다 도시와 우리의 생활공간에 버려져 있는 폐기물 속에 부존되어 있는 자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를 추출해내는 기술이 부족했고 추출하는데 많은 비용이 소요됐기 때문에 폐기물 자원화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 국내외적으로 자원·에너지 고갈,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 심화와 더불어 폐기물 회수 및 재활용 기술의 획기적 발전 등은 폐기물을 재사용(Reuse), 재활용(Recycle), 에너지화(Recovery)하여 폐기물로부터 발생한 순환자원을 최대로 하는 자원순환 사회로의 전환 여건을 성숙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발맞추어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최초가 바로 1991년 분리수거제, 1995년 폐기물 예치금제 등이다. 그리고 2000년대 폐기물예치금제를 확대·발전시킨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시행되게 되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폐기물 예치금제도와 역사적 맥락을 같이 한다. 예치금제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출고량만큼 비용을 예치하고, 재활용한 실적에 따라 예치금을 찾아가는 제도이다.
그러나 본 제도는 기업들이 비용 납부만 이행하고 실질적 재활용 노력이 없는데다 반환되지 않는 예치금은 국고로 환원되는 등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폐제품 재활용에 대한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독일, 일본 등 환경선진국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었던 EPR 제도 도입이 논의되었으며, 2000년 전자제품을 시작으로 2002년까지 총 7개 품목에 대해 정부와 기업간 자발적 협약을 통해 준비기간을 거친 후 2003년 제품 생산부터 사용 후 회수·재활용 단계까지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를 본격 시행하게 됐다.
EPR은 말 그대로 생산자들이 제품을 생산하는 시점부터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설계하고, 폐기되고 난 제품은 책임지고 재활용까지 하는 제도이다.
현재 대상품목은 우리가 흔히 생활폐기물로 배출하는 금속캔, 유리병, 페트병, 플라스틱 등 포장용기와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등 전자제품까지 총 25개 품목이 지정·운영 중이다.
지난 10년간 약 4조 3,000억 원의 경제적 편익 창출 등 성과 달성
2000년에 시작된 자발적 협약부터 어느새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사실 우리나라 재활용시장은 EPR 제도가 형성, 발전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활용업체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이들의 사업규모도 중소기업 수준으로 커졌다.
국민들의 분리배출, 재활용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여 이제는 폐기물을 단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활용 가능한 자원으로 여기게 되었고 재활용제품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많이 사라졌다.
그간의 성과를 수치로 환산해보아도 지난 10년간 총 재활용량은 약 46% 증가하였으며, 이를 통해 약 4조 3,000억 원의 경제적 편익을 창출, 약 2조 6,000억 원의 에너지 절감 효과와 약 1,500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효과도 달성했다.
또한 재활용시설 인프라를 확충하고, 재활용활성화 체계도 마련하는 등 재활용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에 따른 제도운영체계 개선 필요 대두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도입 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당초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EPR 제도도 지금 그 전환점에 서 있다. 우선 생산자의 재활용의무 이행방식이 일부 변칙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EPR 체계에서 생산자는 직접 혹은 위탁하여 재활용하거나 공제조합에 가입하여 의무를 대행시킬 수 있는데 여기에서 공제조합이란 외국에서 생산자기구(PRO)라고 부르며, 생산자들이 판매한 제품을 직접 회수하여 재활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생산자 기구를 만들어서 의무를 대행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생산자들의 의무이행 방식 중 공제조합에 가입한 비율이 거의 90% 가까이 된다.
다만 우리는 외국과 다르게 폐제품별 수거체계 구축 등 제도운영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그간 품목별로 11개의 단수 공제조합을 운영해왔다.
그러다보니 의무생산자나 재활용업체들은 하나의 조합에만 가입해야 하기 때문에 조합의 업무방식에 대한 불만 등 일부 문제를 제기해왔고, 민간에서 편법적 방법으로 서류만 대행해주는 유사공제조합이 생겨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아울러 제도 도입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이 경과되어 대상품목별로 재활용 인프라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단수 조합 운영에 대한 필요성도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동안 재활용 활성화와 제도 정착에만 중점을 두다보니, EPR 제도의 궁극적 목적인 재활용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노력에는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의무생산자의 재활용실적도 단순 ‘재활용량’을 기준으로만 판단하여 의무생산자나 재활용사업자가 고품질 재활용품 생산을 위해 노력하도록 하는 유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울러 영세한 재활용업체 특성상 이제까지 세금계산서를 임의로 발급하거나 정확한 계량을 하지 않는 등 재활용 실적 인정을 둘러싼 이견이 계속 나타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이를 관리하기 위한 선진화된 전산시스템이 없는데다, 재활용업체 관리도 미흡한 측면이 있어 제도 운영의 투명성, 건전성을 확보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EPR 제도는 우리나라에 재활용 활성화의 근본적 토대를 마련해준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으며, 이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제도를 선진화하는 동시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PR 제도 선진화를 위한 노력
사실 앞에서 지적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관련 주체들이 함께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노를 저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향후 정부에서는 EPR 제도가 당초 도입 취지인 생산자가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역할(회수 및 재활용, 재활용성 향상을 위한 사전 재질구조개선 등)을 수행하도록 생산자책임기구(PRO)인 공제조합을 중심으로 제도운영 시스템을 재편할 계획이다.
외국의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 EPR 제도는 생산자책임 대행기구인 공제조합이 적정 역할을 수행하여야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처럼 단수조합 체계가 아닌 복수의 공제조합이 서로 공정한 경쟁을 하여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더불어 생산자의 역할도 제대로 대행함으로써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또한 폐자원의 가치 상향적 관리 강화를 위해 현재 양적 성과 달성 위주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재활용업체가 재활용품 품질개선 등 고부가가치 성과가 있으면 지원금을 차등해서 지급하고, 생산자들이 제품 생산단계에서 재질구조를 개선하여 재활용 가치를 높일 경우 재활용 의무율을 인하하는 등 인센티브도 제공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운영시스템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향상시켜, 재활용실적 인정과 관련된 불신과 불명확성을 제거하고 재활용업체의 허위실적 제출 등 불법적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하여 재활용실적관리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허위실적을 제출하는 재활용업체는 일정기간 EPR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관리를 강화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EPR 제도의 성공은 의무생산자, 재활용사업자, 공제조합 등 제도의 주체들이 각자의 역할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해진다. 사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지금 EPR 제도는 새로운 변화의 선봉에 서 있다. 지난 2000년 EPR 도입을 앞두고 추진했던 자발적 협약부터 지금까지가 제도 정착을 위한 10년이었다면, 다가오는 10년은 제도의 선진적 발전을 위한 시기이다.
아무쪼록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가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고 발생된 폐기물을 최대한 재활용하는 자원순환형 사회를 구축하는 초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관계되는 모든 주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대한다.
류연기 I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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