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 주요 원인은 바로 폐기물을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닌 제품의 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폐기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제도들이 도입되기 시작해 지난 1991년에 분리수거제를 비롯해 1995년 폐기물 예치금제가 실시됐다.
그리고 이러한 폐기물예치금제를 확대·발전시킨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가 지난 2000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제품 생산부터 사용 후 회수·재활용 단계까지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이 제도의 대상품목으로는 금속 캔, 유리·페트병, 플라스틱 등 포장용기와 컴퓨터,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총 25개 품목이 지정돼 있다.
이 제도에 의해 현재 국내 굴지의 가전 3사를 포함해 다수의 가전업체들이 소속된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를 중심으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대형 가전이 회수돼 재활용처리 되고 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중소형가전까지 폐가전 제품의 회수가 확대될 전망이다.
전자산업환경협회, 권역별 RC 운영
이러한 폐가전의 회수와 재활용이 생산자인 대형가전업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볼 때는 바람직하게 보인다. 하지만 폐가전들을 회수·재활용 처리하는 중소업체들은 이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EPR제도가 시행되기 전부터 이미 폐가전수거와 처리를 해오던 중소형업체들은 대형 가전생산업체들이 폐가전 회수와 처리시장에 뛰어듦으로써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내 굴지의 가전업체인 A사는 2010년 4월 폐가전 처리업체 검증, 프로그램 개발, 유해물질 발생여부 감사 등을 전문으로 하는 북미 지역 비영리기구인 ‘반(BAN·Basel Action Network)’과 협약을 맺고 폐가전 회수에 나섰다.
또 다른 경쟁사인 B사도 작년 7월 역시 반과 협약을 맺고 전자제품 폐기물의 글로벌 관리 프로그램을 공동 개발·운영하고 있다. 이들 대형 가전생산업체들은 해외에까지 재활용센터를 두고 폐가전 제품들을 회수하고 있다.
전자산업환경협회는 회원사들간의 공동출자로 전국에 권역별로 폐가전 수집소 즉 리사이클링센터(RC)를 세웠다. 현재 권역별 RC는 수도권에 3곳을 비롯해 9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물량은 협력사(15곳)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기존의 폐가전 회수 재활용처리 업체들 가운데 일부가 협력사로 가입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연히 기존의 중소업체들은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한국전자산업환경협회는 많다국내 대형가전 3사 등 5개 굴지의 업체가 중심이 돼 움직이고 있다.
물론 동 협회에는 이들 5개 대형기업 외에 128개의 기업들을 포함해 총 133개의 해당기업들이 정회원으로 등록돼 있지만 5개 업체의 영향력은 막강하며 협회 홈페이지 하단의 배너에도 5개사의 마크만 있을 정도다.
중소업체 영업활동·협회 가입 제약 심해
따라서 EPR시행 이전부터 폐가전 회수 및 재활용 처리를 해오던 중소형업체들은 이들 대기업들이 폐가전회수 시장에 뛰어듦으로 인해 파쇄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폐가전 회수에 관한 모든 사업을 전자산업환경협회가 관장하게 됐기 때문에 기존 중소형업체들은 협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환경부와 전자산업환경협회는 폐기되는 가전제품 회수가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처리되고 있는지와 회수 실적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때문에 기존 업체들은 이러한 기준에 미흡한 곳이 많아 도태될 수밖에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전판매처업체들은 시설기준을 포함해 권역별로 물량수집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RC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작년 4월 5일에 개정된 자원순환법 제20조 4항에 있는 ‘전기·전자제품 판매업자는 회수의무비율에 따라 회수한 폐전기·폐전자제품을 전기·전자제품 제조·수입업자나 공제조합이 지역별로 설치한 수집소까지 운반하여 인계한다’라는 조항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중소업체들이 친환경적으로 폐가전들을 처리하기에 시설이 미비하고 또 고비용 처리시설에서도 뒤처지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또 다른 문제는 예전부터 사업을 해오던 기존 중소업체들이 전자산업환경협회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협회가 기존 중소업체들을 쉽게 협력사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업체 관계자들은 협회가 외부업체를 계속 협력사로 가입시킬 경우 폐가전 물량이 분산되고 결국 마진감소 등 협회와 회원사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쉽게 협력사를 늘리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동반상생·성장은 남의 집 얘기일 뿐
자원순환법 제20조에 의해 전자제품 판매자도 폐기되는 전자제품의 회수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에 따라 하이마트와 전자랜드 같은 전자제품 판매업체도 폐가전을 회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전생산업체는 EPR분담금을 지불하지만 판매업체는 분담금 지불의 해당업체가 아니다. 때문에 회수한 폐가전물량을 재활용처리업체가 회수해야 하는데 이를 법령에서는 전자산업환경협회가 정하는 처리업체에 물량을 주도록 규정해놓고 있다.
즉 현재 지정된 9곳의 협회 지정 RC를 상대로만 거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중소RC업체의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 법 20조 5항은 ‘전기·전자제품 제조·수입업자나 공제조합은 제4항에 따른 수집소를 지정하고 이를 전기·전자제품 판매업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즉 4항에서 말하는 수집소가 현 9곳의 지정 RC센터를 말하며 판매업자인 하이마트, 전자랜드 같은 업체들은 다른 RC업체와는 폐가전 물품을 거래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 중소업체들은 폐가전 회수에서 판매업체라는 예전의 협력업체가 이제는 경쟁상대가 됐고, 이들로 인해 확보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게 된 것이다.
물론 판매업체 또한 공제조합이 지정하는 수집소로만 폐가전을 보내게 될 때 이에 소요되는 비용과 인력추가 발생 등을 이유로 현재의 거래실태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법조항의 신설로 인해 발생하는 타격과 손실은 고스란히 중소RC업체의 몫이 되고 있다.
이제 기존 중소업체들은 협회가 인정하는 수집소로 지정되지 못해 물량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중소업체들은 생산지에서 폐가전 회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판매업체들의 물량까지 전자산업환경협회의 지정 RC에서 회수해간다면 자신들의 생존권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중소RC업체인 S사 관계자는 “한국페트병자원순환협회는 생산자와 재활용업자 사이의 협력관계가 긴밀하지만 전자산업환경협회는 생산자인 회원과 협력사는 주종관계나 마찬가지”라면서 “생산자들이 직접 수익이 되는 리사이클링센터를 운영하면서 생산자와는 관련 안 된 업체에 배타적이며 일부 힘 있는 업체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현재 대형가전은 물론 핸드폰 같은 소형가전까지도 대기업이 중심이 된 협회가 관여하기 때문에 중소업체들의 피해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며, 이에 따라 처리업을 포기한 업체도 발생했다”며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대기업이 골목상권의 대표적으로 꼽히고 있는 ‘빵집사업’에서 철수한 사례를 거론하며 “정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상생을 통한 성장을 강조하는데 대형 전자업체와 전자산업환경협회의 행태는 동반성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중소RC업체 위한 동반상생 필요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관계자는 전자산업환경협회가 회원가입과 관련해 중소업체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협회 내부 규정에 있는 시설이 구비돼야 하는 만큼 적법처리를 거쳐 검증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 시설이 갖춰진 업체들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내하고 있다”면서 “(냉매 포집기 등) 적합한 시설이 없이 영업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는 업체 등은 협회에서 거르고 있는 것이며 협회 차원에서는 문제가 되는 업체들이 있으니 기준을 만들어 업체들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기존에 중소업체들은 작년에 개정된 자원순환법의 경우 3개월간의 입법예고기간을 거쳐야 하는데도 환경부의 입법예고가 없었다고 항의해 왔다.
환경부관계자는 이에 대해 “수집소 지정과 관계된 법령은 원래 입법예고 대상이 아니며, 환경부장관의 고시도 필요하지 않는 제조업자와 공제조합의 지정에 대한 것”이라며 환경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편 전자산업환경협회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개정된 자원순환법에 따라 판매업자는 공제조합이 지정하는 환경적으로 잘 처리하는 수집소로 폐가전을 가져가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영세업자라도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나 제대로 회수해 처리한다면 모르지만 대부분의 중소업체들은 폐냉장고 처리를 위한 냉매 포집기 등이 없다. 포집기가 워낙 고가품이라서 이를 협회가 업체에게 구입하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의무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권역별 RC외에 제대로 시설을 갖춘 업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협회가입을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중소업체들 가운데는 협회가입을 꺼리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올해도 탈퇴한 업체가 생겼는데 그 원인은 무엇보다 가입 대상 업체에 대한 실적조사 때문이다.
이 조사는 과히 세무조사에 버금갈 정도로 꼼꼼해 이를 꺼려하는 중소업체들이 많다고 그는 정 반대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실상 자원순환법 20조로 인해 판매업체까지 폐가전 회수시장에 뛰어들고 대기업 중심의 협회가 수집소를 지정함으로써 오히려 일부 부실업체를 제외한 오래전부터 건실하게 운영돼오던 중소기업들의 발목을 묶은 것은 동반상생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만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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