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끝 단비가 내렸던 지난 6월 8일 자정 비가 그치고, 용인의 한 시골 동네에 위치한 글쓴이의 집 주위에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스산한 옅은 안개가 끼었다. 그때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희미하고 아주 작은 불빛이 잠시 깜빡였다.
그러고 수 초 혹은 수 분이 지났을까. 풀이 무성한 집 뒤 공터에 반딧불이가 일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꼬마전구가 희미한 노란 빛을 내뿜는 것 같다. 반딧불이를 모르는 사람은, 그 빛이 곤충이 내는 빛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무척 황홀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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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관찰한 반딧불이는 인근 지역에서도 서식이 확인된 바가 있다. ©성남시 |
-글쓴이의 촬영 실력으로는 반딧불이 사진을 아름답게 촬영하기 어려워서 자료 사진을 활용한 점 넓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촬영한 반딧불이 영상을 감상하시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에 접속하여 주세요.
-반딧불이 영상 링크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504752022888671&id=1208966205800589
반딧불이는 예로부터 사람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칠 만큼 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곤충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한 수질 오염과 급격한 도시화로 늘어나는 교통수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 오염, 점점 밝아지는 도시로 인해서 그들이 빛을 낼 수 있는 장소가 줄어들고 있다.
반딧불이는 그 지역 환경이 오염되면 절멸하는 특성을 가진 생물인데, 이런 생물을 “지표생물”이라고 한다. 반딧불이가 지표생물에 해당하며 그들이 뿜는 빛이 매우 아름다워서 반딧불이의 대규모 서식지는 전 세계적으로 보호하는 추세이다.
꽃도 없고 덥고 습한 한여름 밤에 아름다운 빛을 내는 모습은, 지친 심신과 감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이 신비로운 빛을 내는 곤충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연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기부여를 가지기에 충분한 장관을 연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남대천 일대 ‘반딧불이와 먹이(다슬기) 서식지’가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322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딧불이의 서식지는, 인류가 나서서 보전할 가치가 있는 생태계로 인식돼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난밤 반딧불이가 황홀한 불빛을 뿜었던 공터를 다시 찾았다. 누군가의 사유지인 그 공터에서, 보호구역도 아닌데다가 평범해 보이는 그 공터에서 무려 반딧불이가 나왔다. 반딧불이가 출현했으니 이곳은 잠재적인 보호 가치가 있다고 해석했다. 국가가 나서서 보호를 해주는 반딧불이의 서식지는 어떤 모습인지 찬찬히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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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딧불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내게는 평범한 풀밭 이었을 공터. |
예상 밖의 모순적인 결과를 찾았다.
그 공터는 기존에 밤나무, 백당나무, 신갈나무, 자귀나무 등의 수목이 숲을 이루던 곳을 벌채하고 누군가 작은 별장 한 채를 지은 곳이며, 몇 년간 내버려 두어 사람의 출입이 적은 공간이다. 벌채함으로써 기존 산림이 훼손되었다. 자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훼손된 산림을 복원하기 위해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형성되는 과정을 밟는다. 이것을 '천이(succession)'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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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이를 쉽게 풀이하면 황무지였던 땅이 숲으로 변천하는 과정이다. 황무지를 지의류와 선태식물(이끼식물)이 개척하고, 초본식물과 키 작은 나무(관목)이 자라고, 햇빛을 좋아하는 나무가 자라서 그늘이 형성되면 그 밑에서 그늘에서도 견디는 나무(음수림)이 자라는 변천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는 식생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숲(극상림)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Google
천이의 초기 과정에서는 다양한 초본식물과 양수림이 자란다. 전날 밤, 반딧불이가 나왔던 공터도 초본식물과 양수림이 자라나는, 천이의 초기 과정이 진행 중인 장소이다. 양수림으로는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버드나무와 찔레가 자라고 있고, 성장하면서 점차 많은 햇빛을 요구하는 잣나무 등이 자란다. 이런 나무 그늘 밑에서는 음수림인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등의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이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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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터 한가운데 풀숲을 뚫고 올라온 양수림인 버드나무. |
공터에서 보인 초본식물로는 쑥, 칡, 소리쟁이, 흰명아주, 달맞이꽃, 미국가막사리, 망초, 개망초, 미국쑥부쟁이, 환삼덩굴,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등등, 나무에 비하면 많은 종이 있다. 식물을 공부한 사람들은 이쯤에서 내가 찾은 '예상 밖의 모순적인 결과'를 눈치챘을 것이다.
위에 언급한 초본식물은 전부 '귀화식물'이라고 불리는 식물이다. 귀화식물이란, 재배를 목적으로 인해서 혹은, 수입 물류나 여행객에 의해서 얘기치 않게 들어오거나 바람과 파도 같은 자연 현상에 의해 유입된 외국 식물 등이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간섭 없이 터전을 잡은 식물을 말한다. 국내에서 알려진 귀화식물은 2014년 기준으로 약 321종이 된다. 이들의 원산지는 대부분 북아메리카나 유럽 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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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공터에서 많이 보이는 단풍 잎돼지풀, 개망초, 환삼덩굴, 흰명아주. |
'귀화식물은 우리나라 식물들의 터전을 빼앗아 자라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물들이 점점 자랄 곳이 없어 밀려나거나 사라질 수도 있으며, 비슷한 식물끼리 번식을 통하여 씨를 만들지 못하거나 잡종 식물이 생겨 고유 식물들의 유전자원이 파괴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이나 가축에게 피해를 주며, 경작지에 잡초로 발생해 농산물의 생산량을 떨어뜨리고, 관광지나 뛰어난 자연경관을 해치는 문제점들이 있다.' <국립수목원: 귀화식물 쉽게 구별하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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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서로 치열하게 다투며 우점하는 단풍잎돼지풀, 쑥, 개 망초. 흰명아주와 환삼덩굴, 미국자리공, 칡도 더러 보인다. 이들 은 모두 귀화식물이다. |
특히 공터에서 발견한 귀화식물 중에서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미국쑥부쟁이는 환경부에서 생태계교란야생동·식물로 지정해, 토종동식물의 생태계를 위협할 우려가 있는 식물로 규정했다. 국내에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필요에 따라 국가나 지방 자치 단체가 방제(防除)할 것을 지시하는 등, 인위적인 관리를 권장하고 있다.
방제(防除), '재앙을 미리 막아 없애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생태계교란 야생동·식물로 규정된 생명들은 없어져야 할 재앙일까.
그들은 한반도에서 토착, 이제는 생태계의 한 축을 구성하고 지탱한다. 그들을 한반도의 생태계에서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생태계교란생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들은 질서정연하다. 그들도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위에서 언급한 천이를 거스르지 못한다. 이들이 우점하는 땅에서 나무가 자라며 그늘이 생기면, 이들의 군락은 햇빛을 못 받게 돼 점차 쇠퇴하고 그 자리는 언젠가 숲이 된다.
공터 옆의 밤나무 숲만 들어가보아도 알 수 있다. 밤나무 숲의 바로 옆까지는 하얀 꽃을 피운 개망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단풍잎돼지풀이 신갈나무 새싹보다 높게 자라고 있지만, 밤나무 숲에 들어가면 국수나무와 둥굴레, 하늘말나리, 양치식물 등 음지에서 서식하는 식물 외에는 다른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특히 단풍잎돼지풀과 같이 햇빛을 좋아하는 대다수의 귀화식물은 자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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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식물과 각종 음지 식물들이 안정적인 식생을 구성한 밤나무 숲의 모습. |
과연 이들을 생태계교란생물, 재앙으로만 보아야 할지 의문이 든다.
생태계교란생물인 단풍잎돼지풀 등이 토종동식물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국가에서 재앙이라고 규정하고 없애려 하는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에서, 국가에서 보호하는 반딧불이가 서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생태계는 건강한 생태계인가, 아니면 건강하지 못한 교란된 생태계인가.
만약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반딧불이 서식지 중 한 곳에서 이처럼 생태계교란동·식물로 등록된 식물이 우점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면, 국가나 지자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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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나무 숲속에서 바라본 공터의 무성한 개망초와 단풍잎돼지풀. |
그 장소를 방치하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법적 근거를 기반으로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맞을지.
결론은 방치이다. 인간의 활동이 제한적인 조건이 전제된다면, 방치는 곧 보존이며 더 안정적인 생태계로 변화한다. 자연은 사람이 원하는 그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반딧불이와 귀화식물은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원치 않는 풀이 자라더라도, 그것이 앞으로 안정적인 숲의 모습으로 변하기 위한 과정임을 안다면, 풀 한 포기조차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우리가 보존하고자 하는 반딧불이가, 우리가 없애고자 하는 귀화식물과 공존하는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생태계는 독립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이 생물다양성을 갈망한다면, 어떠한 생물들이 그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더라도, 인간이 그 모습을 존중해주어야만 생물다양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원하는 모습대로 생태계를 구성시키고 우리가 좋아하는 생물 이외의 생명들을 배척시킨다면, 모든 지역의 생물상은 단순해질 것이고 생물다양성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은 그 지역에 맞는 생태계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만들어나가고 변화시킨다. 위에서 언급한 '천이'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방치가 가져다준 선물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곳이 DMZ이다. 참혹했던 한국전쟁이 중지된 후 60여 년 동안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었던 철책과 철책 사이의 공간은, 생태계 보전이라는 의도는 없었으나 인간의 출입 제한이라는 최고의 보존 방식으로 방치되어 온 곳이다. 그 결과 국토의 1.6%뿐인 작은 땅이지만, 멸종위기야생동식물의 41%가 서식하는 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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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간섭이 없다는 전제하에 방치된 DMZ는, 갈 곳 없는 한반도의 수많은 생명에게 뜻밖의 선물이었다. |
생태계와 관련된 많은 문제는, '반딧불이를 보호하느냐 아니면 교란 생물을 제거하느냐'와 같은 '보존과 관리' 두 단어 사이의 간극이 존재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이 풀기 어려운, 어쩌면 풀 수 없는 모순도 되풀이된다.
그 간극과 모순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교란 생물을 제거'하는 행위 즉, '관리'라는 단어를 택해왔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방치를 했던 사례도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최근 북아메리카 원산인 큰금계국이 들녘을 덮으면서 자국의 자생식물들을 밀어내는 문제가 발생하여서, 속히 제거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금계국과 큰금계국이 들녘을 덮으며 같은 문제점을 일으키고 있지만, 6월경에 피는 꽃이 화려하다는 이유로, 딱히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내버려 두고 있다.
양 국가에서 같은 식물이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대책은 양 국가별로 다 달랐다. 하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천이 때문에 식생이 변천하고 일부는 숲으로 변화하고, 금계국의 군락은 쇠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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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볕 잘 드는 들녘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금계국. |
일본과 우리나라의 금계국이 보여주었듯이, 현재 자연의 모습이 우리가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자연은 끊임없이 변천하고 그 장소에 적합한 생태계를 갖춰나간다. 이런 순리를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래 상생(相生)은 그런 것이다. 생물다양성은 인간이 조절할 수 없다. 인간은 자연에게 자신이 원하는 형태가 될 것을 강요할 수 없다. 반딧불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제법 많은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 기사를 거의 다 쓴 지난 2017년 6월 25일 오전 5시 33분. 엉켜지고 엉켜진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시간이긴 하다. 쉬지 않던 타자를 잠시 멈추니, 반딧불이와 귀화식물이 내게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음을 실감한다.
며칠 전부터 반딧불이는 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빛을 다 내뿜고 짝을 찾아서 교미하고 알을 낳았으니, 더는 빛을 내뿜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삶은 그렇게 끝을 맺었으며, 그들의 삶은 내년 이맘때쯤이면 후손들이 빛을 내어 되풀이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그들 종(species)을 유지하기 위해 존재했었던 것이지, 우리 호모 사피엔스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생존하는 땅에서 어떤 식물이 자라나든 우리는 내버려 둬야 한다. 그 땅과 그 식물들이 그들의 생계이며 서로를 필요로 하여 공생하는 생명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방치는 보존이고, 그것이 상생이며 생물다양성 형성의 전제임을. 이 세상의 모든 반딧불이를 대신해, 이 세상의 모든 교란 생물로 규정된 귀화식물을 대신해, 나를 포함한 인류에게 전하고 싶다.
부디 반딧불이와 귀화식물,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생명을 방치하기를. 보존하기를. 상생하기를.
<그린기자단 권순호,이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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