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경쟁이 글로벌 녹색전환 늦출 수도 있다?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8-19 22: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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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태양광과 배터리, 전기자동차 등 핵심 녹색기술에서 중국의 높은 시장 지배력이 세계적인 탈탄소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새로운 무역·산업 갈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산 친환경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과 유럽 등이 경쟁적으로 자국 산업을 지원하고 무역장벽을 높일 경우 오히려 저탄소 기술의 가격을 끌어올려 글로벌 기후목표 달성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지속가능소비연구소(Sustainable Consumption Institute)에서 작성한 정책보고서 ‘Subsidising Global Decarbonisation: China-UK Relations’는 중국의 녹색산업 정책이 세계 탈탄소화와 국제 무역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맨체스터대학교가 발간했다.

보고서가 주목한 것은 중국의 이른바 신3종(New Three) 산업인 태양광·전기자동차·배터리다. 중국은 막대한 국가 지원과 제조업 공급망 구축을 통해 이 분야의 생산능력을 확대했고, 이는 세계 시장에서 관련 기술 가격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보고서는 이를 중국이 사실상 세계의 녹색전환 비용을 보조(subsidise)하고 있는 구조로 해석했다.

중국의 영향력은 이들 3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태양광과 풍력, 리튬이온 배터리, 수소, 전기자동차뿐 아니라 관련 핵심광물의 정제·가공 등 녹색기술 공급망 전반에서 중국의 비중이 높은 상황이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의 재정 지원뿐 아니라 금융정책, 세제혜택, 소비자 보조, 토지·에너지 정책 등이 결합되면서 대규모 생산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각국이 온실가스를 빠르게 줄이기 위해서는 태양광 패널과 전기차, 배터리 같은 저탄소 기술을 대규모로 보급해야 한다. 가격이 낮을수록 보급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의 대규모 생산은 세계적인 탈탄소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반면 중국 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저가 수입제품 확대가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저렴한 친환경 기술을 이용해 기후목표를 빠르게 달성할 것인지, 아니면 추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국내 녹색산업을 육성할 것인지라는 딜레마에 직면한다. 보고서는 미국과 EU 등이 중국과 정면으로 생산비용 경쟁을 벌이는 방식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며, 그 과정에서 친환경 기술 보급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을 경고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녹색기술 지배력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선택을 크게 경쟁(Compete), 협력(Cooperate), 중국의 지배적 공급을 수용하는 선택, 녹색전환 자체를 후퇴시키는 선택으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경쟁을 선택할 경우 자국기업 지원을 위한 대규모 보조금과 금융지원, 관세, 현지조달 요건, 수출통제 등이 필요해질 수 있다.

이는 공급망 안정성과 경제안보를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정부 재정 부담과 녹색기술 가격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중국 제품을 대규모로 수입하면 단기적으로 기후정책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자국 제조업 약화와 공급망 의존이라는 또 다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연구진이 특히 우려하는 부분은 중국과의 산업경쟁이 단순한 무역분쟁을 넘어 기후정책 자체의 후퇴(retrenchment)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보고서는 중국 기업과 가격 경쟁이 어려워지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녹색산업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산 친환경 제품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자국 내에서 비슷한 가격과 규모의 생산체제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등 저탄소 기술의 보급 속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경쟁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소비자와 정부가 부담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기후정책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약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따라서 ‘중국 의존 탈피’와 ‘탈탄소화’를 항상 동일한 목표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공급망 다변화나 경제안보가 중요한 정책목표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녹색기술 비용이 얼마나 상승하며 기후목표 달성 속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특히 영국의 대응전략으로 중국과의 녹색기술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 미국이나 EU처럼 대규모 제조업 기반을 갖추기 위해 중국과 직접적인 보조금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중국의 녹색 제조 역량과 영국의 금융·서비스 산업 경쟁력을 결합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중국 전기자동차 기업들이 영국에 생산시설을 설립하도록 유도하고, 영국 금융산업을 활용해 녹색기술 투자를 지원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중국산 녹색기술에 대한 관세 부과를 자제하고 중국의 공급망에 영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확대할 필요성도 제안했다.

또한 영란은행이 중국 인민은행이 녹색산업 육성을 위해 활용해온 금융정책을 참고해 국내 녹색산업 투자를 촉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보고서는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더라도 인권이나 안보 등 다른 외교 현안에서 영국이 독자적인 입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영국이 금융서비스 등 자국의 강점을 활용하는 동시에 중국의 녹색 제조업 역량을 이용한다면 탈탄소화와 녹색경제 육성을 함께 추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향후 국제 녹색산업 정책의 핵심은 중국 의존도를 무조건 낮추느냐 아니면 유지하느냐의 선택보다 공급망 안정성과 자국 산업 육성, 저렴한 녹색기술 보급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에는 빠른 기술 보급이 필요한 만큼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이 탈탄소화 비용을 지나치게 높이지 않도록 하는 국제적인 조정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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