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지속가능성 공시 지연된 한국, 의무화·기준 체계·면책 패키지로 추진

단계적 로드맵·국제정합성·투자자 신뢰 3대 원칙으로 인센티브 유도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3-01 12: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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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지속가능성 공시를 둘러싼 국제 논의가 본격화된 지 5년이 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공시를 권고 수준에서 법정공시 인프라로 끌어올리려는 입법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공급망 리스크 등 비재무 이슈가 기업 가치와 자본시장 안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면서,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정보 체계를 법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5일 한국지속가능성인증포럼(KOSRA)이 제1회 국회포럼을 개최해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된 문제점을 제기하고 향후 활성화를 위한 법제화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투자자가 요구하는 법제화의 필요성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 기준 기반 공시가 이미 시행 단계에 접어든 반면, 한국은 도입 계획부터 늦어졌고 준비 과정도 지연돼 왔다는 평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다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기후·에너지 정책 방향이 비교적 뚜렷해지면서, 정부의 공시 전략과 로드맵 논의도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입법 추진의 출발점은 ‘투자자 신뢰’에 있다. 특히 글로벌 투자자들이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 여부와 신뢰성을 핵심 투자 요소로 보고 있어, 국내 자본시장도 이에 대응할 정보 인프라 정비가 시급하다는 점을 법제화의 근거로 제시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정순섭 교수도 국내 공시 체계의 한계를 “거래소 자율공시 중심”으로 진단하며, 정보의 신뢰성과 비교가능성 저하 및 그린워싱 문제로 인해 투자자 정보비대칭이 커지고 객관적 평가가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지속가능성 정보의 공시·인증·평가 체계를 통해 정보 품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실적인 도입을 위해 적용 대상을 한 번에 넓히지 않고, 자산총액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속가능성 공시대상법인으로 의무를 제한하는 구상도 제시됐다. 즉, 제도 초기에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를 중심으로 시작하되, 향후 확대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이다. 또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사업보고서가 아닌 별도 서류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지도 포함돼, 기업 부담과 공시 효율 사이에서 운용 폭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국제정합성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동등성 논리까지
두 번째 축은 국제정합성이다. 이는 국내 제도가 국제 기준과 ‘기능적으로 동등’하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면, 우리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중복 공시·중복 비용을 떠안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논리다. 세 번째 축은 ‘기준의 명확성’이다. 설명자료는 기준 위반 시 책임을 부인하거나 해석 분쟁이 생길 수 있으므로,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제정의 명시적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적시한다.

일괄 도입은 위험, 기업 부담 완화와 단계적 적용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성 공시제도에 대해 ‘기업 부담 완화’와 ‘단계적 적용’을 우선으로 꼽았다. 지속가능성 공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다. 문제는 제도가 현실을 앞서갈 때 발생하는 부작용이다.
 

제도가 과도하게 빠르게 도입되면 기업에는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공시가 형식화되거나 품질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 특히 중견·중소기업, 그리고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은 준비기간·전문 인력·비용 측면에서 제약이 명확하다. 공시 체계는 단순히 문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데이터 수집·내부통제·지표 산정·검증 대응까지 기업 운영체계를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공시는 ‘일괄 도입’이 아니라 기업 규모와 준비 수준을 고려한 단계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핵심은 예측가능성이다. 기업이 준비할 수 있도록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적용 범위·유예기간·전환 규정 등을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속도보다 안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확한 면책조항으로 인센티브 가져야
따라서 전문가들은 사업보고서 공시를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실하게 기준에 따라 공시하는 경우 명확한 면책조항을 두고, 제도 참여 기업이 불이익이 아니라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결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현행 거래소 공시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자율공시에 가깝지만, 공시 내용에 대한 법적 책임에 대한 면책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자율과 책임이 비대칭이면, 기업은 공시를 꺼리거나 보수적으로 축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입법을 통해 공시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되, 성실 공시에 대해서는 과도한 법적 책임을 제도적으로 완화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설계는 국제 기준이 지향하는 사업보고서 공시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제도의 초기 안착 과정에서 기업이 감내해야 할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한국형 보완’ 접근인 셈이다. 즉, 자본시장의 신뢰성과 국제적 비교가능성은 높이되, 기업이 준비하고 참여할 유인을 제공하는 균형형 입법 모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출발이 늦었다.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가 늦은 출발을 만회하려면, ‘의무화’ 자체보다도 기업이 준비할 수 있는 단계적 로드맵과,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비교가능성 체계가 동시에 구축돼야 한다. 정부 정책 방향이 정리되고 공시 기준과 로드맵, 입법 논의가 구체화되는 지금이 제도 설계를 제대로 다듬을 수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결국 제도는 문서가 아니라 시장의 신뢰로 평가된다. 이제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늦은 만큼 더 정교하게, 그리고 기업이 실제로 따라갈 수 있는 속도로 설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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