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제4차 산업혁명, 그 다음

"본능공학시대, 우리가 선점하자"
김혜태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8-12-07 12: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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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개념 정리가 쉽지 않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들어온 터이다. 정보는 홍수를 이루다 못해 바다처럼 넘실대고 있으며,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다. 마치 ‘미친 황소의 등짝에 올라탄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는데 동의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일은 또 어떤 깜짝 놀랄만한 기술이 선보일까 하는 기대도 일상이 되었다. 인류가 경작을 시작하고도 17~18세기가 되어서야 제1차 산업혁명인 농업혁명이 일어났지만 증기기관으로 상징되는 제2차 산업혁명은 그로부터 채 100년도 되지 않아 일어났다. 그런데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전기·전자산업의 발전에 따른 제3차 산업혁명도 이제 급속히 밀려오는 제4차 산업혁명에 자리를 양보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그 다음’을 예측하여 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단순한 흥미를 넘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초파리에 탑재된 스텔스 기능
본능은 바로 태어난 아기가 스스로 엄마의 젓을 빨아먹는 것처럼 매우 단순한 행위나 반응이다. 이는 학습이나 훈련에 의해서 생기는 경험적(經驗的) 요소가 아니라 철저히 선험적(先驗的) 요소이다. 본능은 그야말로 우리 주변에 상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본능이 가진 무진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시기가 자의반 타의반 다가오고 있다. 그럼 본능의 위력 또는 효용성에 대한 사례를 우선 세 가지만 열거하여 보자. 

 

첫 번째는 초파리(vinegar fly)에 관한 것이다. 집안에서 음식물을 먹고 남은 것들을 밀폐하지 않고 두면 용하게도 초파리들이 꼬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층 아파트의 현관문은 물론 창문까지 잘 닫아 두어도 초파리들은 냄새를 맡고 하수관거를 타고 올라오는지 음식물 쓰레기 곁에 자리 잡고 번식까지 하는 것이다. 더 신기한 것은 신문지를 말아 종이 몽둥이로 만들어 벽에 붙었거나 날아다니는 놈들을 향해 가격하면 급격히 방향을 바꾸어 잘도 피해 나간다. 아주 작고 하찮은 미물이 마치 수백억 원짜리 전폭기인 F32 이상의 스텔스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로 사우나 샤워기 밸브 조작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열수와 냉수를 적절하게 맞추어 샤워하기에 적합한 온수를 맞출 때, 객관적으로 감지하고 과학적으로 계산하고 자동으로 급수를 하지는 않는다. 즉, 컴퓨터 시스템을 활용하려고 많은 인자들을 측정하고 입력하지 않는다. 만약 굳이 하려고 한다면 그 입력 인자들은 대강 헤아려 보아도 실내·외 온도, 열수의 온도와 수압, 냉수의 온도와 수압, 각 파이프의 직경, 그리고 샤워하는 사람의 체온과 샤워장의 보온성 등이 될 것이다. 그 조건들을 다 알아내었다면 열수와 냉수의 밸브 개방 정도를 맞추는 것도 가능은 하지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들은 그냥 본능적으로 단 몇 번의 밸브 조작에 의해서 아주 쉽게 최적의 온수 온도와 유량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쩌면 본능에 의해서 평상의 일들은 물론 어렵게 꼬인 문제들까지 쉽게 풀 수가 있다.  

 

세 번째 것은 철새들은 물론 강해성(降海性)·소하성(溯河性) 어류들이다. 이들이 자신이 태어났거나 자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역시 본능의 힘이다. 이 본능의 작용은 우리 몸으로도 바로, 그리고 쉽게 체험할 수 있다. 팔을 활짝 편 후, 눈을 감고 한 손가락으로 코를 만져 보도록 하면 바로 실감할 것이다. 우리의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을 활용하지 않았는데 정확히 코를 만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본능이다.  

 

이러한 본능의 힘을 공학과 접목하여 우리가 순간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사안에 활용하면 산업이나 일상생활에서 평상적 행위는 물론 재난이나 전쟁 같은 각종 위급 상황에서도 효과가 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거대하게 전개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과 바로 붙어서 다가오고 있는, 그래서 우리 눈에는 잘 인식되지 않는 ‘제4차 산업혁명, 그 다음의 물결’이 있음을 감지하는 것부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이 본능공학(Visceral Engineering)의 물결은 여태까지의 산업혁명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앞의 혁명들과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심지어 이들을 붕괴시키면서 다가오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짐짓 모른 체하기에는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그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성공 요인
얼마 전 우리나라 주요 일간신문에서도 비교적 크게 실린 것인데 ‘생각만으로 사지 마비 환자가 인터넷 쇼핑과 채팅이 가능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미국의 BrainGate 컨소시엄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것인데, 이는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의식만으로 장치의 조작이 가능하여지는 세상에 우리가 진입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머지않아 인간의 무의식 또는 본능에 의해 행위가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示唆)한다고도 하겠다.

 

문제는 본능의 정의성(正義性)에 있을 수 있다. 어차피 빅 데이터(big data) 시대를 넘어 ‘에브리 데이터(every data)’의 시대에 순식간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시간보다 훨씬 짧은 순간에 검색하고 결정하고 행위를 하는 것에 부응하기 위하여 사건들을 어떻게 선의적(善意的)으로 제어 또는 대처할 수 있느냐가 본능공학을 맞이하는 우리 인류의 공통적이면서 기본적 과제가 될 것이다. 

 

‘최후통첩의 게임’이라는 심리놀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10억 원 같은 매우 큰 돈을 길 위에서 횡재한다면, 우선 가위바위보로 분배할 비율을 결정할 사람을 선정하고, 나머지 한 사람이 이 분배율을 수긍하면 그대로 나누어 갖고, 반대하면 모두가 한 푼도 갖지 못하는 일종의 치킨 게임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율을 매우 불공평하게, 예를 들어 9억 원 : 1억 원 또는 그 이상으로 정하여도 나머지 사람이 1억 원 또는 그 이하라도 챙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분노에는 휩싸이겠지만 결국 수용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이런 본능 속의 모순과 인간의 이기심이 아무런 견제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넘어 인간은 무엇인가까지 다시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본능공학의 시대가 열리면 정의(正義)의 정의(定意)부터 새롭게 정립하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율주행 자동차의 정착과 성공에 본능공학이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그리고 반대로 본능공학의 전개에 자동주행 자동차가 어떻게 공헌할 것인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자율주행 자동차와 주변 모든 사물과의 소통능력과 눈에는 드러나지 않는 결정적 문제를 인지하고 결국은 핵심인 정의감(예를 들어 브레이크 고장의 경우 대처 등)을 현실적으로 체크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한 자동차는 없다. 사람이 몰아도 주지하다시피 사고가 제법 많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율주행 자동차가 작은 사고라도 내면 매우 불안해하는데, 이는 본능적으로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기술적 신뢰감과 정의로운 판단에 대한 기대감이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능공학을 채택한 자율주행 자동차의 완벽한 성공 여부가 본능공학의 실용화에 시금석일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한층 더 진화된 인류가 현재의 인류에게 보내는 예언이라고 본다.  

 

한편, 최근 KT의 서울 아현동 지사의 지하통신구 화재로 인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보는데, 한편으로는 나름 얻은 것도 있다고 본다. 본능공학을 의식하거나 인지하여서 한 말은 아니겠지만, 서울대 이정동 교수의 지적, “우리 사회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과 카이스트 오준호 교수의 정의, “인공지능이든, 소프트웨어든 이미 너무 복잡한 단계에 접어들어 인간이 오류를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다”는 것은 본능공학을 보다 긍정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전에 준비하고 풀어야 할 많은 현실적 난제들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본능공학 시대, 우리가 선점하자
사실 본능공학은 ‘난파된 배에는 쥐들도 타지 않았다’는 소문들처럼 언제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여 온 것이겠지만 주류산업(主流産業)으로 성숙하고 성공까지 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의 성공에 힘입어야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AI 그 자체나 발전된 단계가 본능공학은 아니다. 확실하게 구별하여야 한다.
물론 ‘본능공학’이라는 용어도 아마 본고(本稿)에서 처음 선을 보이는 용어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능공학은 고급 계산기의 진보된 것과는 다르다.  당연히 연산(computing) 기능만으로 대처할 수는 없고 본능적 기능에 의해서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  문제는 누구의 본능인가?  지금까지의 판단은 다양성과 창의성까지 담보하는 모든(every) 본능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일본 경단련(經團連)이 교육계에 대학의 문과·이과 구분을 없애고, 이들을 넘나드는 기준을 새로 도입하여 빅 데이터 및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요청한 것은 시대의 상황을 제대로 읽었다고 판단된다.  문과에서도 수학이, 이과에서도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대학교육은, 특히 이공계 학과에서는 졸업 후 현장에서의 미스매칭 기간을 단축한다는 이유로 획일화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에 내몰리거나 심지어는 교육의 질적 풍부성 보다는 당장 교수 개인의 계량적 성과에만 급급하여 자격시험 대비 사지선택 문제집을 교재로 쓰기도 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다양성도, 독창성도 함양하지 못하고 마치 붕어빵 같은 인재를 계속 배출하면 지금도 우리 경제가 위기라지만 10년 후가 더 무섭다. 

 

아무튼 본능공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어떻게 쌓아 올릴 것인지는 지금은 솔직히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제4차 산업혁명에만 매달리지 말고 그 무등을 타고 거의 동시에 도착하는 제5차 산업혁명에도 주목하자.  그래서 본능공학의 시대가 도래하면 우리가 선점하자.  그러기 위해 바다처럼 넘실대는 모든 데이터를 잘 정리하고 모두 연결하여 두자.  본능공학을 통해서 무한에 가까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결정, 즉 인류의 탐욕은 물론 정의와 배려까지 반영된 결정을 찰나에 하여야 하고, 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라 믿는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런 시기가 수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시기를 향하여 능동적으로 다가가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본능에의 의지 또는 귀의가 원초적 본능에 매몰되는 것은 극히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에브리 데이터에는, 좀 시니컬한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예를 들면 주자학의 본질과 예법도 아울러 녹아들기 때문에 본능공학 시대가 항상 낙관적으로만 흐르지는 않더라도 그렇다고 비극적인 것만도 아닐 것이다.  기대를 하여도 좋을 것 같다.
[김혜태 상임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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