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도시의 형태가 교통 에너지 수요와 온실가스 배출, 나아가 물 접근성까지 좌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도시가 얼마나 크냐뿐 아니라 얼마나 둥글거나 길쭉한지, 건물 높이가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에 따라 시민들의 평균 이동거리가 달라지고, 이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2050년까지 전 세계 인구 10명 중 7명이 도시 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도시의 에너지 소비와 배출 문제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 사용량의 약 75%,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특히 도시 내 이동과 교통은 에너지 수요와 배출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오스트리아 소재 복잡계과학허브(CSH)의 라파엘 프리에토-쿠리엘 연구팀은 최근 국제학술지 Environment and Planning B: Urban Analytics and City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 도시 형태가 사람들의 이동거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시뮬레이션했다. 연구진은 도시가 둥근지, 길쭉한지, 중심부에 인구와 건물이 밀집돼 있는지, 넓게 퍼져 있는지 등 다양한 도시 형태 매개변수를 설정하고, 가상의 도시에서 출발지와 목적지 간 이동을 반복적으로 계산했다.
연구는 도시의 건물 높이 분포를 중요한 요소로 봤다. 연구진은 도시 프로필을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했다. 높은 건물이 중심부에 집중된 ‘피라미드 도시’, 중심부에 매우 높은 건물 몇 개만 솟은 ‘바늘 도시’, 건물 높이가 비교적 균일한 ‘팬케이크 도시’, 높은 건물이 외곽으로 갈수록 많아지는 ‘그릇 도시’, 고층 건물이 주변부에만 집중된 ‘반지 도시’ 등이다.
분석 결과 가장 효율적인 형태는 작고 둥글며 중심부가 고밀도로 형성된 도시였다. 이런 형태에서는 출발지와 목적지가 상대적으로 가까워져 평균 이동거리가 줄어든다. 반면 도시가 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질수록 이동거리는 비선형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도시 면적이 같더라도 형태가 길쭉할수록 통근과 이동에 더 많은 거리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 드레스덴의 사례도 비교했다. 기준 도시로 사용된 빈은 비교적 완만한 타원형 구조를 보이며 평균 이동거리가 10km 미만으로 나타났다. 반면 드레스덴은 더 길쭉한 형태를 띠고 있어 평균 이동거리가 약 13km로 분석됐다. 프리에토-쿠리엘 연구원은 “드레스덴은 빈보다 상대적으로 더 타원형에 가깝다”며 “이러한 형태 차이와 인구 규모 차이에도 불구하고 드레스덴의 평균 이동거리는 빈보다 약 30% 더 길다”고 설명했다.
중심부에 밀도가 집중된 피라미드형 도시도 이동거리 절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중간 정도의 피라미드형 도시 프로필만으로도 평평한 도시 구조와 비교해 평균 이동거리를 20~25%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심의 고밀도 건물 배치가 잠재적인 출발지와 목적지를 더 가깝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되는 지역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도시 형태는 지형, 행정구역, 역사적 개발 과정 등 다양한 제약을 받지만, 새로운 도시 개발이나 확장 과정에서는 형태에 대한 계획적 판단이 장기적인 에너지 수요와 배출량을 좌우할 수 있다. 유엔 전망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2100년까지 전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상당수 인구 증가는 대규모 도시권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도시계획 결정이 향후 수억 명의 이동, 에너지 사용, 생활 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도시 형태가 교통뿐 아니라 물 접근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프리에토-쿠리엘의 이전 연구에서는 도시 형태가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 접근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됐다. 2050년까지 일부 거대도시는 약 2억2천만 명에게 깨끗한 물과 위생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연구팀은 도시계획자와 정책 입안자, 일반 시민이 도시 형태와 이동거리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시각화 도구와 계산기도 함께 공개했다. 사용자는 도시의 크기, 형태, 밀도 분포 등 주요 매개변수를 조정하면서 평균 이동거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지속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단순히 친환경 교통수단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시가 어떤 모양으로 성장하느냐, 어디에 밀도를 집중하느냐, 주거와 일자리·서비스가 얼마나 가깝게 배치되느냐가 에너지 절약과 온실가스 감축, 물 인프라 접근성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의 미래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라 형태와 구조의 효율성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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