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지구 온난화로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하면서 강수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반드시 사용 가능한 물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년 동안 내릴 비가 소수의 강한 폭풍에 집중되면 토양과 대수층, 생태계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물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연구에서 198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 강수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연간 강수량이 점점 더 적은 횟수의 강한 비로 집중되고, 비가 오지 않는 건조 기간은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총강수량이 증가하더라도 강우가 폭우 형태로 몰릴 경우 땅에 저장되는 물이 줄어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토양은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물의 양에 한계가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 물은 땅속으로 스며들기보다 지표면에 고이거나 흘러가며, 이 과정에서 증발하거나 홍수로 빠져나가기 쉽다.
연구를 이끈 저스틴 맨킨 다트머스대 지리학 부교수는 “강우량이 많아질수록 토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물이 줄어드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나타났다”며 “이는 앞으로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물리적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제1저자인 코리 레스크 몬트리올 퀘벡대 교수도 “1년에 비가 얼마나 오느냐만큼이나, 그 비가 어떻게 나뉘어 내리느냐가 육지의 습윤 상태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가 내릴 수 있는 날은 제한적이며, 더 많은 물이 대기로 되돌아간다면 그 물을 다시 확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강수의 불균등성을 파악하기 위해 경제학에서 소득·부의 불평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를 활용했다. 강수 지니계수가 0에 가까울수록 비가 연중 고르게 내린다는 뜻이고, 1에 가까울수록 연간 강수량이 하루 또는 소수의 날에 몰린다는 의미다.
분석 결과, 미국에서는 미시시피강 서쪽 지역에서 강우 집중도가 특히 높았다. 로키산맥 일대의 경우 연간 강수량이 이전보다 약 20% 더 강한 폭우 형태로 압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남미 아마존강 유역은 1980년 이후 강수 집중도가 약 30% 증가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지역으로 분석됐다. 이는 더 강한 폭우와 더 긴 건조기가 반복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반면 북극, 북유럽,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는 강수 집중도가 최대 20% 감소했다. 이는 비와 눈이 연중 더 고르게 내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다만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기후변화로 고위도 지역이 따뜻해지면서 연중 강수 발생이 늘어난 결과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 역시 계절성 몬순의 영향을 받는 지역이지만, 이번 분석에서는 연중 강우가 더 고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다. 다만 연구진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향후 기후모델에서는 동남아시아와 북위도 지역에서도 온난화가 심화될 경우 산발적인 폭우와 긴 건조기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2도 상승할 경우, 전 세계 인구의 약 27%가 총강수량 증가에도 불구하고 비정상적으로 건조한 토지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강수량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라, 강수의 시간적 분포를 바꾸면서 물 공급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맨킨 교수는 “수문학에서는 오랫동안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 강수량을 확보하느냐라고 생각해 왔다”며 “하지만 이번 연구는 공급량뿐 아니라 공급 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강우 집중을 “땅에 소방호스로 물을 들이붓는 것”에 비유했다.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면 토양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지표면에 고인 물은 대기 중으로 더 쉽게 증발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변화는 수자원 관리에도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조 지역에서는 폭우와 장기 가뭄이 번갈아 나타나는 ‘붐-부스트’ 형태의 강수 패턴이 저수지 운영과 물 저장 전략을 어렵게 만든다. 장기간 가뭄을 겪은 뒤 대기천 현상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캘리포니아가 대표적 사례다. 물 관리자는 새로 유입된 물을 저장할지, 홍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저수 공간을 확보할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연중 비교적 고른 강수에 의존해 온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북동부처럼 과거에는 대규모 물 저장 시설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지역에서도 앞으로는 홍수와 장기 가뭄을 동시에 고려한 수자원 관리 체계가 요구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 시대의 물 부족 문제가 단순히 ‘비가 적게 오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비가 더 많이 오더라도 그것이 짧은 시간에 집중된다면 토양 수분, 지하수 충전, 생태계 수분 공급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결국 지구 온난화가 심화되는 미래에는 연간 강수량보다 강우의 분포와 저장 능력이 더 중요한 수자원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연구진은 폭우와 긴 건조기가 동시에 늘어나는 상황에 대비해 홍수 관리와 가뭄 대응, 저수지 운영, 지하수 충전 전략을 통합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