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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가 바라다보이는 경복궁 전경 |
인류는 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면서 의(衣)·식(食)·주(住) 문화를 발전시켰다.
주어진 자연환경과 그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특정한 지역의 문화적 특징마다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에 필요한 도구나 의복, 주거지 등은 토착민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짓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사를 보면 산업혁명 이후 무분별한 경제개발로 인한 자연훼손은 전 지구적 생태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심각한 환경문제에 대한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이 나오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현대인들은 배고픔을 잊었으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정서적 빈곤까지 겪고 있다. 그야말로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로 내몰린 사회에서 경제적인 풍요가 정서적 허기까지 달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릴 멈춰 세운 이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 한다. 점검이 필요한 즈음에서 우리는 그 지혜를 선조들에게서 배우고자 한다.
의식주에서 그들의 숨은 지혜를 찾아내 되새겨봄으로써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총 3회에 걸쳐 연재할 기획 기사의 주제는 ‘환경적 시각에서 바라본 의식주와 관련한 몇 가지’다. 우선 이번 호에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건축양식(궁궐건축)에서 찾는다.
첫 번째, 경복궁을 탐방하고 환경과 조화롭게 설계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건축의 미학을 개괄적이나마 환경적인 시각으로 훑어본다. 역사의 인물들은 사라졌으나 가장 가까이에 실체 하는 역사물이 경복궁이다. 워낙 규모가 커서 한두 채 언급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으나 그것으로 가치를 둔다. 아울러 최근 일반인에게 개방해 관람이 가능한 경복궁 터 위쪽에 자리한 근현대건축물 청와대도 둘러본다.
_편집자 주 <이 기사는 (사)한국잡지협회의 지원을 받아 작성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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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근정전 처마 야간촬영 |
풍토에 적합한 ‘전통한옥’
우리나라 전통건축은 수천 년 간 한반도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형태로 변화했다.
건물의 배치, 공간 구성, 세부 재료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주변 환경을 활용해 쾌적한 실내환경을 조성했다. 풍수지리를 고려해 남향 배치를 선호하고, 국지 기후에 맞는 겹집 혹은 한 개의 용마루 양편에 방을 내는 양통집 형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겨울철 거주 공간의 난방을 해결하는 데에도 유용했다. 주간의 일사량을 최대로 수혈할 수 있는 벽 재료와 단열에 효과적인 이중문을 설치해 난방효율을 높였다. 건물 외피는 실내 습기나 자연채광 조절기능이 뛰어난 창호를 활용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은 데 비해 기후변화가 크다. 연교차가 크고 상대습도도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일사광도 다양하고 대륙성기후와 아열대기후가 교차하는 등 다양한 조건에 대응하는 건축을 고려해야 한다. 가령, 전통한옥의 처마를 보면 비와 바람, 태양의 일사량에 따른 건축환경 요인을 반영한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태양의 고도가 높은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막아주고 나무 기둥이 비에 썩는 걸 막아준다. 이와 동시에 젖은 나무 기둥이 잘 마르도록 바람이 통할 수 있게 처마 끝을 들어 올려 추녀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고도가 낮은 겨울에는 집안 가득볕이 잘 들게 하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처마는 일조의 영향을 받는데, 보는 각도와 햇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미적 기능도 있다. 처마의 곡선과 화려한 단청의 채색이 어우러져 보는 거리와 위치에 따라 색다른 조형미를 연출한다. 때에 따라서는 육중한 기왓장으로 덮인 궁궐 지붕도 가벼운 치맛자락이나 버선코처럼 날렵해 보이는 건 이 때문이다.

유교건축의 대표작 ‘경복궁’
통상적으로 한국의 전통건축 양식은 크게 유교건축과 불교건축으로 구분한다. 경복궁은 유교건축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이 살던 법궁(法宮)으로 조선왕실의 존엄과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대규모로 조성됐다. 북으로 북악산이 병풍처럼 근정전을 품었고, 흥례문은 인왕산이 품고 있는 형세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경복궁은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고종 때(1867년) 중건됐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중건, 500여 동의 건물이 미로처럼 빼곡하면서도 웅장하게 들어서 있었다.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여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다행히 1990년부터 흥례문 일원의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되고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등이 모습을 되찾았다. 광화문-흥례문-근정문-근정전-사정전-강녕전-교태전을 잇는 중심부가 궁궐의 핵심 공간이다.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건축됐다. 그 외 건축물들은 비대칭적으로 배치해 변화와 통일의 아름다움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염원을 담은 공간 축조
당시의 궁궐건축은 정무공간, 생활공간, 정원공간의 세 영역으로 조성됐다.
정문인 광화문과 정전인 근정전 등 주요 건물과 회랑은 남북축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룬다. 정원공간으로 방지와 경회루, 향원지와 향원정 등이 아주 조화롭게 꾸며져 있다. 세계적으로 화려한 건축물이 있는 성지를 둘러보면 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대성당, 궁전, 탑 등 대부분이 단독, 단일화된 건물로 존재한다.
그러나 경복궁은 조금 다르다. 단일 건물들이 하나의 작은 세계를 이루고 있다. 마을 단위 공동체를 이루듯 아주 조화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각각의 터(대지)가 존재하고,위로는 각각의 하늘이 지붕을 형성하고 있다. 주변으로 잡목과 수변이 잘 조성된 한 덩어리의 집합체다. 오늘날의 아파트에 비유하자면 대규모 단지를 조성해 놓은 것과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주요 건물인 ‘근정전’을 살펴보자.
궐 안으로 들어가려면 흥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을 통과하면 곧바로 위용을 갖춘 근정전과 대면하게 된다. 이곳은 왕의 즉위식이나 세자 책봉식, 조회행사 등 국가 대례(大禮)를 거행하던 건물이다. 근정(勤政)은 ‘정사(政事)에 부지런히 힘쓰라’는 뜻이다. 근정전의 이름을 지은 정도전은 서경의 구절을 인용하며 임금에게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임금의 부지런한 것입니다. 또한, 어진 이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하고 어진 이를 쓰는 데에 빨리 하는 것이 부지런함이니 신은 이로써 이름 짓기를 청하옵니다”라고 고했다고 전한다. 경복궁을 설계한 정도전은 궐 안의 건물마다 이러한 뜻을 새겨 놓았는데, 역사학자들은 이상 국가를 꿈꾸던 그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우주 질서에 부합한 공간 축조
근정문에서 근정전까지는 삼도(三道)가 있다.
길 한가운데로 왕이 다니도록 조금 높은 턱을 두어 따로 낸 ‘어도(御道)’가 있고, 양옆으로는 직급이 다른 신하들이 도열할 수 있도록 품계석을 세워놓았다. 바닥은 표면을 거칠고 얇게 다듬은 넓적한 박석(礡石)을 깔아놓았다. 적당히 우툴두툴해서 가죽신을 신었던 당시, 신하들의 미끄럼 방지와 햇빛을 난반사시켜 땡볕에도 눈부심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비가 올 때 빗물이 흘러들도록 배수 역할도 고려한 것인데, 박석의 자연스러운 형태나 여러 기능 역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던 전통건축에 어울리는 훌륭한 부재였다.
냉난방에 사용된 마루와 온돌처럼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목재나 돌, 흙 등을 재료로 기후와 풍토에 부합한 활용이다. 전통건축의 특징은 이처럼 자연의 일부를 인위적으로 기후 조절이 가능한 일부 공간을 축조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채광이나 환기 등 여전히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교감하고 숨결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에 우주 질서와 분리될 수 없는 건축이다. 오늘날 흙 길에 시멘트를 붓고 콘크리트로 바닥을 덮어 자연과 분리 시키는 것과 결이 다르다.
근정전 처마의 화려한 단청(丹靑)이 맨 먼저 눈길을 끈다. 요철처럼 나무에 홈을 파서 정교하게 끼워 맞추는 식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포(多包)양식’으로 설계됐다. 처마를 받치는 공포(栱包)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처마의 내밀기는 인접 대지로부터 자연스런 이격거리를 발생시켜 일조권 확보에 매우 용이하다. 가령, 깊은 처마의 경우 외벽에 비가 들이치는 것을 방지하고 외벽의 열화를 억제함과 동시에 여름철 햇빛을 막고 실내 온도의 상승을 막아 냉방 에너지를 삭감한다.
근정전 앞에 보이는 두 개의 기단은 월대(月臺)다. 제례(祭禮) 등의 행사를 치를 때 이용된다. 기단은 건물의 하중을 지반에 골고루 전달하고, 빗물과 지하수 등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한다. 월대 계단 구석에는 ‘드므’라는 물을 담아두는 큰 통이 있다. 화재 진압용 물을 담아두는 곳으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긴장감을 늦추지 말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겸허함의 미학 '경회루'
근정전 서북쪽 연못 가운데 보이는 2층 누각이 ‘경회루(慶會樓)’ 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조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만든 공포(栱包)는 출목이 없는 이익공(창방과 직교하여 보 방향으로 새의 날개처럼 뾰족하게 생긴 공포를 말함)의 간결한 법식으로 처리하면서도 화려함을 지니며, 기둥 사이에는 화반을 얹어서 하중을 균등하게 분포시켰다. 외국에서 온 사신을 접견하거나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분합문이 달려 있어서 문을 닫아 공간을 나눌 수도 있고, 문을 들어 올려 전체 공간을 통으로 열어 조망할 수도 있다. 사방으로 펼쳐진 북악산, 인왕산 등 경복궁 주변의 풍광을 바라다볼 수 있어서 마치 바깥 풍경이 액자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태종이 경회루를 짓고 나서 하륜에게 이름을 지어 올리라고 했더니 “바른 정사를 펴는 임금은 올바른 사람을 얻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으니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써 만나야 합니다. 이는 경사스럽게 만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지어 올렸다고 전한다. 전통건축은 풍광의 수려함과 교감하게도 하지만 조용하고 명상적인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심원한 힘도 지니고 있다. 경회루는 인공적인 힘에 기대는 서양식 정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개의 돌도, 나무도 허투루 가져다 쓰지 않고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부여했다.
가령, 경회루로 건너가는 3개의 다리는 해, 달, 별의 삼광(三光)을 뜻하고, 다리를 건너 경회루 기단 양 끝에 있는 2개의 문은 음양(陰陽)을 뜻한다.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이 네모지고 안쪽 기둥이 둥근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나타낸다는 식이다. 주변 산세로부터 지형의 높낮이, 물길의 흐름 등을 면밀하게 살펴 각기 특징적인 요소들을 규명하고 각각의 위치에 알맞게 최소한의 행위로서 원래의 운치를 돋우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에 일체화한 가운데 건축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통건축의 뛰어남이 여기에 있다.

자연스러움의 미학 '향원정'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의 향원정(香遠亭)은 한국 건축물로는 예외적으로 평면이 6각형인 정자 건물이다. 이곳은 왕과 그의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다. 보수 작업 중이던 2019년에는 향원정 바닥에 설치된 온돌 시설이 발견돼 세간을 놀라게 했다. 그동안 향원정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온기가 느껴졌는데 그 수수께끼를 풀게 된 것이다. 온돌은 가장자리에만 설치돼 있다.
더 놀라운 것은 향원지를 채우는 샘물이다. 향원정 서북쪽으로 열상진원(洌上眞源)이란 샘에서 흘러든다. 백악산 기슭에서 흘러나와 향원지에 모이고, 다시 경회루로, 청계천으로 해서 한강을 따라 한반도 중심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물이 맑고 차서 음료수로 이용했다고 한다. 샘에서 솟아나는 차가운 물이 두 번 직각으로 꺾여서 연못으로 잔잔히 흘러들게 만들었다.
이것은 속도를 조절해 넘쳐흐르거나 물길이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고 물의 온도를 높이기 위한 설계다. 못으로 곧바로 들어가면 연못 속 생명체에게도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마철로 접어든 시기라서 탐방하던 날에도 비가 내렸다. 향원정 연못 속으로 내리긋는 빗줄기가 마치 땅에서 하늘로 거꾸로 솟아오르는 폭죽 같아 보였다. 수묵화 같은 잿빛하늘 아래서 영롱한 빛을 뿜는 하얀 물방울 사선이 주파수를 맞추듯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었다. 일정한 박자감을 주면서. 궐 안에 배치된 건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탐방을 와서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리는 곳인 이유가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향원정의 연못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품격의 미학
아쉽게도 경복궁을 설계한 건축 관련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은 정도전이 건축가가 아니기 때문에 설계도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건축사학자인 임석재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로 지은 경복궁』에서 경복궁의 설계는 정신적 가치를 기준으로 ‘예(禮)’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의미하는 미덕으로서의 예는 ‘품격이 있으면서도 검소한 게 특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경복궁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닌 사상적 배경 위에 세워진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즉, 질서나 법도 뿐만 아니라 조화와 어울림으로서의 예를 함께 포용하고 있어서 웅장한 품격을 갖추고 있으나 검소하여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배치가 조화로워서 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실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사상가인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는 합리성을 추구해왔다. 근대건축도 효율성과 기능주의를 표방하며 발전했다. 공간이나 토지의 효율적 사용과 단순화한 기계미학을 지향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파트가 지가가 비싼 도시에서 토지이용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듯이 말이다. 아파트에 비교한다면 전통한옥은 근대건축이 추구한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건축이다.
그럼에도 자연 친화적이고 정서와 전통문화의 체취, 지혜의 숨결을 불어넣은 한옥이 더욱 그리워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합리화가 추구한 것은 기계적인 환경과 가깝다. 그렇게 자연과 유리된 인공의 환경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정서적일 것인가. 삭막한 도시의 기계적인 환경을 선호하는 건 인간의 욕구가 아니다. 자연환경 조절 방법과 원리를 전통건축에서 배워 발전시킨다면 현대건축의 건조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_공공누리>
-참고 도서 및 논문
『예(禮)로 지은 경복궁』/임석재
「한국 전통건축의 자연환경 조절방법과 그 원리의 현대화」/이경희
「한옥의 특성을 고려한 인증제도 도입 방안 연구」/이강민,심경미,박민정,이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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