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손맛의 정수 ‘옥김치’ 명인을 찾아서

대통령상 받은 김치명인의 손맛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2-12-08 18:2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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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➌ 환경을 생각하며 먹다(食)_Ⅱ

대통령상 받은 '옥김치' 김치 명인의 손맛을 찾아서


한식에서 손맛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재료마다 각각의 계량화된 배합 차이라면 과학적으로 정량화할 수는 없는 걸까? 요리사 본연의 손맛에 기댈 수밖에 없는 걸까? 50년 경력으로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김치명인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 무등산옥김치 김호옥 김치 명인

그래서 김치명인을 만나기 위해 광주까지 찾아갔다. 무등산을 오르는 시작점에서 김호옥 김치명인을 만났다. 그가 운영하는 ‘전북식당’ 초입에는 ‘광주 무등산 옥김치명인 대통령상 수상’이라는 커다란 간판이 걸려 있었다.


무등산 옥김치는 남도의 맛과 전통을 소중하게 이어온 반가의 김치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 이곳에 터를 잡고 식당을 운영하는 명인은 때마침 손님들에게 내놓을 전을 부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탁자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금세 푸짐한 한 상을 뚝딱 차려내 모두가 탄성을 지르자,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라며 재촉한다. 그러는 사이에도 무등산을 찾은 산악인들의 발길이 식당 안으로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무등산은 인구 100만 명 이상이 광주와 근접한 거리에서 호흡하고 있어 자연 친화적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산도 산이려니와 김치명인의 밥상을 잊지 못해 찾으리란 짐작이 갔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는 어머니 때부터 50년이 훌쩍 넘었어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김치로 인연을 맺었으니까 칠십 평생이 김치 인생인 셈이죠”라며 웃는다.


어릴 적부터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가 담근 김치를 먹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소문난 어머니 김치맛을 보려고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며 먹고 얻어가고 했단다. 그런 환경 속에서 쫑알거리며 어머니를 거들던 눈썰미가 일찌감치 김치를 담그는 계기가 됐다. “친정어머니가 유난히 김치를 잘하시고 자주 담그셨어요. 동네 사람들 김치를 대주다시피 했죠. 너도나도 김치를 퍼가는 모습을 봐왔어요. 그러다가 열다섯 살 무렵부터는 어머니와 함께 본격적으로 김치를 담갔죠.”

 


무등산에는 증심사(證心寺)를 중심으로 서석대(瑞石臺)와 입석대(立石臺)가 수직 절리의 암석 형태로 치솟아 있다. 웅장한 석책이 병풍을 둘러 그 사이로 청정한 햇살과 바람이 드나드는 공기 맑은 산 아래서 김치를 담근 지 반백 년. 명인이 담그는 김치는 친정어머니에게 전수 받고 시어머니 김치도 배워서 터득한 노하우가 버무려져 있다.


“잠깐 미용실을 운영했을 때도 손님들이 김치를 맛보면 얻어가고 그 답례로 선물을 해서, 김치 봉사를 많이 했어요. 쌍둥이를 임신해서 미용실을 접었는데 내가 잘 할 수 있는 김치로 식당을 열어야겠다고 결심한 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손맛을 완성하는 최적의 레시피
그러나 김치만큼 지방색을 많이 담고 있는 음식도 없다. 한 가지 김치를 두고도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음에도 다양한 입맛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맛의 합의점을 어떻게 찾아냈을까? “짭짤한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먹으면 ‘좀 싱겁다 싶으면서도 맛있네’라고 말할 수 있는 맛, 싱거운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대로 ‘좀 짠 듯하지만 그래도 괜찮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맛을 하루도 빠짐없이 김치를 담그고 맛을 보며 최적의 레시피를 찾아간 거죠.”


재료를 깐깐하게 고르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손맛을 완성하기까지 명인만의 비법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중에 옥김치는 깊은 맛이 배어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비결을 젓갈에서 찾았다. “젓갈을 공수해서 담그는데 새우젓도 종류가 다 달라요. 북새우가 있고, 잔새우, 육젓을 만드는 새우가 따로 있어요. 4월에 나오는 눈알만 한 새우도 있죠. 계절마다 달리 나오는 젓갈을 갈아서 적당한 비율로 배합을 합니다. 매실 액기스나 무 액기스를 직접 담가서 첨가하고 있어요. 몸으로 체득한 나만의 배합비율은 연구를 많이 해서 계량화가 가능해요. 그렇지만 손맛이 추가되어야 하죠. 그건 아직 숙제예요. 호호!”

 

▲ 재료를 손질중인 김호옥 명인


젓갈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발효에 따라 김치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젓갈이 발효되면서 김치맛을 숙성시킨다. 명인은 자신이 터득한 노하우를 주위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주고 싶어서 대회도 많이 참가했다. 그때마다 상을 받으면서 김치만큼은 자신 있다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2005년에 받은 대통령상은 일반인에게 처음 수여된 상이에요. 유래 없이 처음 제정되었다 해서 반드시 내가 타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죠. 잠을 설치면서 연구했으니까요. 그러다 꽃을 활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올랐고 근사한 데코레이션으로 완성도를 높인 게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자연환경 품은 발효음식
명인이 담그는 옥김치는 재료를 고르는 것부터가 달랐다. 배추면 배추, 양념으로 쓰이는 마늘이나 고추 등 재료마다 고르는 기준이 있다. 배추만 해도 종자도 달라야 하고, 배추의 포기에 따라서도 소금 간을 달리한다. “속이 꽉 찬 배추로 너무 캉캉하다 싶으면 소금 1컵 기준이어도 2컵을 넣어야 해요. 반대로 속이 덜 찬 것 같으면 금세 먹어야 할 배추니까 소금 간을 덜 해야 하죠. 또 저장해서 묵힌 배추라면 수분이 빠졌을 테니 묵은지로 담그는 게 적당합니다.”
그러면서 김장하는 시기도 12월이 적당하다고 덧붙인다. 그래야 배추가 속이 차서 무르지 않고 보관에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배추도 나이를 먹어야 해요. 예전에는 12월 초나 20일이나 해야 하는 이유가 그런 건데,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에 얼음물에 손이 고부라져서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언젠가 TV 드라마 ‘대장금’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궁 안의 장고에 보관된 장맛이 변해 난리가 났다. 장금이가 한 상궁과 장맛이 변한 이유를 백방으로 찾다가 성황당 나무 아래 늘어선 장독에 제를 지내는 장제를 보고 힌트를 얻는다. 다름 아닌 소나무다. 주변의 밤나무와 소나무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장맛을 훌륭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꽃가루가 효소 역할을 하는데, 장을 충분히 숙성시켜 훌륭한 장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을 보관하던 궁궐 마당의 나무를 다 베어냈던 것이 장맛이 변한 까닭이었던 것. 그만큼 발효음식은 계절이나 주변의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만의 독특한 발효음식의 제조비법을 발굴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에 정부와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김치
최근 배추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자칫 김치 대란으로 번지지 않을까 주부들의 걱정이 많은 요즘이다. 그렇다고 배추김치 담그기를 포기하고 포장 김치를 사 먹는다고 해결이 될까.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까닭에 제조업체들 역시 김치 생산에도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김치명인은 꼭 배추김치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제철에 나는 채소와 나물, 산야초가 모두 훌륭한 김치 재료라는 것이다.


“봄에 나는 쑥, 씀바귀, 쑥갓, 달래는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주고 여름에는 열무와 오이, 양배추만 있으면 매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어요. 김치 재료가 풍성한 가을이나 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매일 먹는 김치 맛이 물린다, 싶으면 조금만 아이디어를 내면 전혀 색다른 김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1800년대 말에 편찬된 음식 관련 고서인 <시의전서 是宜全書>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김치를 재해석해 만든 ‘백년김치’는 낙지와 소라ㆍ생새우 등의 해물과 잣, 밤, 청각 등의 고급 재료를 넣은 말 그대로 명품 김치다. 슴슴하면서도 감칠맛이 돌아 김장철에 꼭 한번 만들어 봄 직한 김치다.

[이미디어= 문광주, 김명화, 김한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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