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통 방직, 생물 보호하고 생태계 건강하게”

기획 연재 ➋ 환경을 생각하며 입다(衣) _Ⅱ
좋은 것이어서 ‘우리 것’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2-12-08 19: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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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가업 잇는 ‘장수직물’상주함창명주테마파크 안에는 한복진흥원과 함께 전통섬유 관련 문화 시설이 집적되어 있다. 상주는 고대부터 벼와 목화·누에고치를 많이 생산해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불렸다. 산업화로 인해 목화 재배 농가는 사라졌으나 누에고치는 여전히 명맥을 이어나가며 삼백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누에를 길러 비단실을 생산하는 양잠(養蠶)을 빼놓고선 상주의 농업을 이야기할 수 없다. 뽕나무가 잘 자라는 기름진 땅 덕택에 품질 좋은 명주 생산지로 유명해졌다. 국내 가장 오래된 뽕나무도 이곳에 있다. 양잠업은 뽕나무를 이용해 누에(나비목에 속하는 곤충)를 길러 누에고치에서 생사(生絲)를 뽑아내는 것으로 ‘누에치기’라고도 한다. 누에는 실을 토해 몸을 감싸 고치를 만드는데 이 고치가 명주실의 원료다.


한국의 고서 ‘단군세기(檀君世記)’에는 4천300년 전 누에를 쳤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조선 세조 때 간행한 ‘잠서주해’를 보면 1900년대에는 국가에서 누에씨를 생산하여 농가에 보급했다는 기록이 나와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생사와 비단 수출을 위해 한반도에서 누에치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잠업을 적극 장려했는데, 당시 상주는 뽕나무가 잘 자라는 자연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양잠업이 성행한 곳이다. 

 

▲ 남수원 장수직물 대표


양잠업은 1962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1962년 당시 정부에서 ‘잠업증산 5개년 계획’을 15년 동안 추진하며 한국 양잠업은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에서 싼값에 생사가 수입되고, 노동 집약적 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한국 양잠업은 급속히 쇠퇴했다. 상주의 뽕밭 면적도 1970년 2천557㏊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다 1990년대 중반에 건조누에, 수번데기, 동충하초, 오디 등을 생산하는 기능성 양잠업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로써 의약품, 의료용 신체조직, 화장품, 약재, 기능성 식품 등 다양한 시장이 열렸고, 2009년에는 ‘기능성양잠산업육성 및 지원법’이 만들어져 양잠업 지원의 법적 토대도 갖춰졌다.

산업화로 양잠업 쇠퇴 길로
하지만 원단업체는 원단을 찾는 수요가 한정되어 있고, 이마저도 해마다 줄어 현재 상주함창명주테마파크 내에는 단 4곳만 명맥을 잇고 있다. 그중 한 곳인 ‘장수직물’을 견학했다.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아내는 ‘제사(製絲)공장’을 교과서에만 보다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신기했다.


직물이 나오는 제사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난로의 연통 같은 곳에서 연신 물이 분사되어 나왔다. 수분을 공급하는 공정으로 섬유의 잔털을 제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품질을 높여준다.
농가에서는 춘잠(봄누에)과 추잠(가을누에)으로 1년에 2모작 누에고치를 생산한다. 농협이나 양잠조합을 통해 수매한 누에고치는 번데기가 나방으로 우화(羽化)하지 못하도록 바로 건조시킨다. 그렇게 저장한 누에고치가 제사과정에 들어가면 우선 본격적인 실 뽑기에 앞서 80~90℃ 물에 삶는다. 부드럽게 불려 ‘실마리’를 찾기 쉬운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

 

▲ 명주실 감는 모습


다 삶은 고치에서는 실마리를 뽑아내는데, 적어도 5~6개 이상의 실마리를 찾아내 한데 모은 다음 작은 얼레에 감는다. 고치 한 개에서 1천200 미터 정도 길이의 실이 나온다고 하니 놀라웠다. 실은 너무 가늘어서 몇 개를 모아야 일정한 굵기로 만들수가 있다. 작은 얼레에 감긴 실을 그대로 취급하려면 불편하므로 둘레 1.5m의 큰 얼레에 다시 감아주는 되올리기를 한다. 되올리기까지 마친 실타래를 큰 얼레에서 떼어내 15~20개 단위로 묶어 포장하면 모든 과정이 끝난다. 그 실타래가 바로 명주실이고, 이것으로 옷을 만들면 비단옷이 되는 것이다.

명주 장인 남수원 대표
이렇게 재래식으로 생산한 견사는 품질 면에서 일반 견사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나다. 재래식 방직은 생물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또 토양을 지키고 물을 아낀다. 시간과 기술 지식 그리고 비용이 들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

남수원 대표는 전통방식으로 실을 잣고 옷감을 만들면서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된 게 있다고 했다. 한복을 입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변화에서 자신을 찬찬히 돌아다보는 시간을 부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글게 짠 적삼처럼 보이는 명주로 만든 계량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양쪽 팔을 들어 올리며 “한복을 입을 때는 내 몸에 맞춰 옷고름을 여미게 되지 않나요? 끈을 묶고, 여미고, 골을 지을 때도 그렇고. 또 저고리에 있는 팔자 주름을 잡을 때나 내 팔에 맞게 저고리의 소매를 정돈할 때 보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게 돼서 좋은 것 같은데”라며 미소지었다.

달리 생각하면 그냥 빨리, 편하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을 성싶다. 그러나 한편으론 남 대표의 설명대로 천천히 입고, 입으면서 자신의 몸을, 또 나 자신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한복의 매력이 바로 우리 민족 본래의 정체성을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게 되었다.


▲ 실을 고르는 모습


재래식이 명주 질감·내구성 높여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함창명주는 전통 그대로의 습식방식이다. 보통 우리가 가락이라고 하는데 북에다 넣는 가락을 물(수분)을 묻혀서 작업하기 때문에 진주나 다른 지역에서 나오는 명주보다 조직이 더 탄탄하고 밀림이 덜 가고 가공했을 때 윤기가 많이 난다. 직조가 고와서 염색도 당연히 더 잘 되고 고급스런 광택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기준 상주시의 누에고치 생산량은 2천610㎏으로 경북 전체 생산량의 31%를 차지한다. 잠사업은 1980년대 이전까지 전성기를 누리다 이후 침체기를 겪고 있다. 화학섬유의 발
전과 생산자의 고령화 등이 원인이지만 가장 큰 타격은 수요층의 감소다.


▲ 명주 스카프


50여 년간을 일해오면서 애로사항이 무엇인지 묻자,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작업과정 자체가 환경을 개선하기엔 한계가 있어
발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누에고치를 생산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옛날에는 상주시에서 연 100만kg 정도 생산이 됐다. 당시에 시군마다 제사공장이 있어 60~70년대에는 일본으로 수출을 많이 했는데, 이제 일반소재보다 명주 가격이 비싸니까 일반소재로 개발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다만, 그래도 비싼 소재를 가지고 좀 더 다양한 소재 개발을 한복진흥원과 같이 연구하게 되어 희망을 걸고 있다고 귀띔했다.


▲ 고치에서 뽑은 견사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에겐 전통 한복이 있고 계량한복이 있는데 점점 우리의 문화를 잊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만 해도 거리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마주쳤던 기억이 오래 남았는데, 우리도 생활 속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의복으로 거듭나게 하는 게 당면과제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이후 한복은 현대사회의 다양화 추세에 따라 고급화와 기성화로 양분되어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고급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천연염색, 수직기, 손자수 등의 기법을 사용한 공예예술품 수준의 한복과 실용화에 방점을 둔 기성복으로써 한복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볼 때 비관하거나 낙관할 일만도 아니다. 이 흐름을 타서 ‘우리 것’을 지키
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 것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한류 문화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이미디어= 김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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