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유럽연합(EU)이 수입품에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전면 적용하면서, 유럽으로 향하는 글로벌 무역 규칙과 소비자 가격 구조가 동시에 흔들릴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시모나 사고네 룬드대학교 박사는 더컨버세이션을 통해 제도의 핵심에 대해서 알리고 있다. 그에 따르면 EU 역외에서 생산된 탄소집약 제품이라도 EU 시장에 들어올 때는 EU 기준의 탄소가격을 반영하도록 해 ‘탄소누출(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생산 이전)’을 막고, 역내·역외 기업 간 경쟁 조건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CBAM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향후 전기 등 확대 가능)처럼 제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큰 품목을 중심으로, 제품에 ‘내재된 배출량(embedded emissions)’을 기준으로 비용을 부과한다. EU 기반 수입업체는 해당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도록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하며, 생산국의 기후 규제가 약하거나 탄소가격 제도가 미흡할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시험 단계를 거쳐 2026년 1월 1일부터 수입업체의 인증서 구매(전액 결제) 의무가 시작되면서, 기업들은 EU 수출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제품이 탄소집약적이지 않다”는 점을 데이터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CBAM은 EU만의 정책이지만, 영향은 국경 밖으로 확산되고 있다. EU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기업은 더 깨끗한 공정 투자와 함께 배출량 측정·검증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시장 점유율을 잃을 위험이 있다. 이 때문에 공급망 전반에서 신뢰할 수 있는 탄소 데이터 수요가 급증하고, 배출량 산정·보고 시스템 구축과 환경제품성적표(EPD) 등 문서화 역량이 사실상 ‘수출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대응도 확산 추세다. EU와의 교역을 유지하고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체 탄소가격제 도입을 검토·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모로코는 2025년 금융법을 통해 2026년 1월부터 단계적 탄소세 도입에 나서, 국내에서 탄소가격을 부담함으로써 EU 국경에서 추가 CBAM 비용을 일부 회피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편 영국도 2027년 자체 CBAM 도입 계획을 밝힌 상태지만, EU 제도와의 연계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산업계에서는 CBAM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행정 부담이 크다”는 불만이 나온다. 기업들은 제품별 내재배출량 산정, 협력사 데이터 수집, 보고서 작성, 필요 시 재생에너지 계약(전력구매계약 등) 확대까지 요구받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는 인도·중국 등에서 CBAM을 개도국에 불공정한 압력을 가하는 ‘녹색 보호주의’로 본다는 반발이 제기된다. EU가 저소득 국가 수출기업의 전환 비용을 돕기 위한 전용 재원을 아직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원 체계가 부재하면 제도 목적(글로벌 탈탄소 촉진)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CBAM은 산업용 제도이지만, 비용이 최종 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수입업체가 추가 비용을 모두 흡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품목군에서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 영향권으로는 자동차, 가전·전자제품, 건축자재가 대표적으로 거론되며, 비료 비용을 매개로 식품 생산비에도 간접 파급이 가능하다.
다만 제도가 가져올 ‘부수 효과’도 있다. 수입업체가 내재배출량을 보고해야 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소비자가 구매 제품의 기후 영향을 더 명확히 인지할 수 있는 투명성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CBAM 인증서 판매는 EU 재정에도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 이 재원을 취약계층 지원, 청정기술 투자, 에너지 효율 개선 등에 활용하겠다는 구상이 거론되며, 실제로 수익 사용 방식이 제도 수용성을 좌우할 ‘정치적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CBAM은 시행 전부터 이미 공급망을 재편하고 각국 정책을 자극하고 있다. 무역 분쟁 가능성을 키우는 동시에, 수출국의 탄소가격 도입을 촉진하며, 녹색 산업 전환을 추진하는 개도국을 위한 기후금융 확대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키는 촉매가 되고 있다.
결국 유럽 소비자에게 CBAM은 ‘점진적 가격 인상’과 ‘탄소에 민감한 구매 결정’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탄소를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이 글로벌 무역 질서를 바꾸고, 기후정책이 일상 소비까지 직접 연결되는 구조적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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