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앞에서 - 김기택
아직 제가 태어나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몸이 생겼는지 모르는 것 같은 눈으로
유아차에 앉아 있던 아기가
내 눈과 마주친다, 순간
아기가 다칠 것 같다
내 눈빛에서 튀어 나가는 이빨과 발톱을
어떻게 눈알에 붙들어 매야 하나 난감하다
자신을 방어할 어떤 몸짓도 하지 않고
아기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내 두려움도
아기 앞에서 다 들켜버린다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내 안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것이 있다
혀에 가득한 말들은 발음을 잃고
표정은 뭘 해야 할지 몰라 입 벌리고 멍해진다
-『낫이라는 칼』 (문학과 지성사, 2022)

며칠 전에 지하철을 탔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날씨도 우중충하고 기분도 꿉꿉한 평일 오후였다,
동남아시아 여인이 동대문역에서 유모차를 밀며 올라탔다.
유모차에 앉아 있는 아가는 눈이 크고 살이 토실토실했다.
아가는 토실한 두 손을 번갈아 빨며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일순, 앉아 있던 사람이나 서 있던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나 연세 지긋한 사람들이 아기를 바라봤다.
아기 손을 잡는 사람, 까꿍 하며 웃는 사람들.
표정 없이 두리번대던 아기 엄마도 밝아지고 나도 덩달아 미소가 흘러나왔다.
아가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에
사람들 눈빛에서 튀어 나가는 이빨과 발톱은 사라지고
꽉 쥐고 있던 주먹이 풀리고 관절이 연약해지며
끊임없이 뭔가를 방어하고 있던 것들이 어느 사이에 사라졌다.
천진난만한 아가의 웃음이 꿉꿉하고 살벌했던 전철 안 사람들을 무심으로 이끌어 주었다.
[글. 박미산 시인/ 그림. 원은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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