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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법인 이신 김성덕 대표변호사 |
위 판결의 피고 회사는 진해화학 주식회사입니다. 진해화학은 1965. 9. 9. 당시 외자도입촉진법에 의하여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를 대행한 국제개발처 사이에 체결한 차관협정 및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에 따라 충주비료 주식회사와 미합중국의 걸프석유회사의 50:50 비율의 출자로 설립된 한미합작 투자법인이었습니다. 진해화학의 50% 지분을 가진 충주비료는 1973년 호남비료와 합병하여 한국종합화학공업이란 공기업인 화학공업 지주회사로 거듭났습니다. 진해화학은 대한민국 정부의 식량 자급자족 및 중화학 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비료의 제조, 판매 및 이에 부수한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었습니다.
진해화학은 1967. 4. 9. 비료공장을 준공하고, 1967. 7. 9. 암모니아 비료의 생산을 개시하고, 인광석, 유황, 염화칼륨, 나프타 등 화학약품과 물을 주요 원료로 하여 복합비료와 요소비료를 제조하였습니다. 진해화학은 1967년도에는 비료 57,669톤을, 1968년도에는 100% 가동으로 267,600톤을 생산하였고, 1980년대 기준으로 연간 18만 톤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면서 대한민국 중화학 공업 및 농업 발전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해화학은 1982년 정부의 비료산업 합리화정책에 따라 요소 생산을 중단하고, 1987. 5.경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따라 한국종합화학공업 소유 지분이 전부 민간기업인 한일합섬에 매각되었습니다. 한일합섬은 1998. 6. 23. IMF 경제 위기 상황에서 부도가 났고, 이에 따라 진해화학도 1998년 경영난으로 폐업하고, 2001. 1. 30. 창원지방법원 2001하1로 파산선고를 받았습니다. 진해화학은 부지가 약 90만㎡으로,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는 전용부두까지 보유한 거대 시설이 있었던 기업으로, 1967년부터 약 30년간 복합비료 등 화학비료를 생산하였습니다. 진해화학의 사업부지는 폐업 이후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가 노정되었습니다.
부영주택은 2003. 9. 4. 창원지방법원의 임의경매 절차에 따라 진해화학이 소유하던 진해 장천동 175번지 일원의 514,718㎡(공장 터 237,832㎡, 폐석고 터 276,866㎡)를 매수하여, 그 토지에서 아파트를 건축하려고 하였는데, 그 부지에서는 엄청난 분량의 폐기물과 심각한 수준의 오염이 발견되었습니다. 부영주택은 2016년부터 해당 토지에서 폐석고 약 1,800,000톤을 반출하고, 오염된 토양 약 328,000㎥ 중 대부분을 정화하였는데, 최근 2년간 해당 토지에서 폐석고 약 400,000톤을 추가로 반출해야 하였고, 2023년에도 폐석고 약 140,000톤이 또다시 발견되면서 폐기물의 추가 반출 작업을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이와 같이 부영주택은 주택건설 목적으로 진해화학의 사업부지를 매수하였다가 애꿎게 토양오염 정화 작업 책임을 전부 부담하게 된 것입니다. 진해화학 부지의 폐기물에 대한 완전한 처리는 2025. 6월경이면 완료될 수 있다고 하는 듯 합니다.
진해화학은 1970년대에 1일 130,000톤의 물을 사용하면서, 1일 보충수가 약 8,500톤이었고, 약 2,000톤 내지 3,000톤의 물을 배출하였습니다. 진해화학은 비료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등을 석고 냉각장 및 인산공장 등으로 순환시키는 공법을 사용하였는데, 순환되지 않는 물 2,000톤 내지 3,000톤을 공장폐수로 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진해화학은 당시에 자연수, 공장기기 냉각수 및 비료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 등을 합쳐서 배수관을 통하여 진해시 행암동 쪽에서 행암만으로, 또는 진해시 장천동 쪽에서 행암만으로 유출 시켰고, 그 유출된 물이 해수와 섞여서 주변의 어장이 있는 해역으로 유입이 된 것입니다.
문제는 진해화학이 배출하는 폐수는 바다에 들어가면 광활한 바다의 해수와 섞여서 폐수가 희석이 되고 당시 과학기술로는 폐수 농도가 어느 정도여야 해악이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증명이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해화학은 행암동과 장천동 쪽에서 상당한 분량의 폐수를 쏟아 내고 있었고, 주변 해역의 어민들의 김양식장은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그 폐수가 어떻게 김양식장에 피해를 입히게 된 것인지 어민들 측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영남화학 대기오염 사건(대법원 1973. 5. 22. 선고 71다2016 판결)에서 과수원의 피해가 인정이 되었으나, 위 사건 이전에 환경오염 사건에 있어서 입증책임의 완화 법리는 대법원에 의하여 확고하게 채택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법원 1973. 11. 27. 선고 73다919 판결은 동광화학공업이 제조하던 제초제 PCP 및 MCP가 식물의 발아와 생장을 억제하고, 잎과 줄기를 말라 죽게 하는 효능 등을 가지고 있고, 사건 공장에서 PCP와 MCP 분말이 발산된 사실이 인정되었고, 위 공장이 가동하는 기간에 주변의 500 내지 600미터 이내의 나무와 풀에 많은 피해가 발생하였고, 부근의 인삼재배 농가의 인삼밭 주변의 아카시아 잎에서도 피해가 발생하였으며, 인삼밭의 인삼도 말라 죽어서 인삼을 생산하지 못하는 피해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광화학공업의 PCP와 MCP 분말이 부근의 인삼밭의 인삼의 잎과 줄기에 도달한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동광화학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하였습니다. 원고 측은 입증된 사실만으로도 위 오염물질의 인삼밭 도달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공해사건에서의 인과관계 입증에 있어서 “추정에 의한 사실인정” 또는 “개연성 이론”은 받아 들일 수 없으므로, 원고는 공장의 분진이 실제로 인삼포의 인삼에 도달하여 그 분진으로 인하여 인삼포의 인삼이 고사하였는지, 불법행위(오염유발행위)와 손해발생(피해자의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의 1970년대까지의 공해사건에 대한 판례 입장은 (가) 피해자는 비용, 가해자의 기술비공개, 출입거부 등 비협조 등으로 원인사실의 조사가 어렵고, (나) 이미 발생한 공해의 원인을 소급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어려우며, 공적 조사기관의 조사 결과가 없고, (다) 공해원인 탐지기술의 발전이 늦어지고 있으며, (라) 가해자의 공장이 어떠한 오염원을 발산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가 그 무해성을 입증할 사회적 의무가 있다거나 가해자가 따로 반증을 제출하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개연성만으로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개연성’ 이론 또는 환경피해의 입증책임의 전환을 거부한 것입니다.
대법원의 이러한 입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고, 1970년대 중반부터 대법원 판례의 변경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진해화학 폐수배출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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