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목소리 - 신달자
이른 아침 풀을 뽑는다
내 손바닥보다 조금 큰 꽃밭에는 풀이 더 많다
풀은 등을 더 좋아하는지 돌아서는 순간 쑥 자라는
풀은
사납다 안면몰수다
땅의 힘이 풀의 힘인가
“히 볼테믄 히 봐!”
그 당찬 목소리 내 머리채를 잡아끄는데
풀 뽑는 내 두 손을 뽑아 버리려 덤비는데
한눈파는 사이 하늘 한 번 바라보는 사이
풀은 더 크게 쑥 자란다
나에게 저런 끈질긴 옹고집이 있었더라면
그렇지…… 이렇게 살진 않았을지 몰라
으악스럽게 풀독처럼
내 두 팔을 기어이 기어오르는
저 목소리에 풀의 혈흔이 묻어 있다
내 온몸을 넘어뜨리며 덤벼드는
내 운명 같은 사나운 목소리
뒤에서 앞에서
두 발목을 잡고 통사정을 해도 놓아주지 않던
그 끈질긴 운명 같은 천명 같은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민음사, 2023)

시골집 마당에서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건초더미를 걷어냈다.
풀은 건초더미 밑에서 야생화와 머위, 곰취를 누르며 기세등등 자라고 있었다.
이들을 밀어제치며 뻗어나가는 사나운 풀의 힘이라니.
지금, 이 풀들을 뽑지 않으면 손바닥만 한 화단은 온통 풀로 뒤덮인다.
그나마 봄철은 풀이 땅을 뚫고 천천히 올라오지만,
한여름 장마철엔 풀을 뽑다가 잠깐 한눈 한 번 파는 사이에도,
하늘 한 번 바라보는 사이에도 풀은 자란다.
그때부터 나와 풀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단단하게 땅을 붙잡고 있는 우악스러운 풀은
풀을 뽑는 내 두 손을 뽑아버리려고 덤벼들며
울긋불긋한 풀독도 안겨준다.
등 뒤에서 앞에서 통사정해도 쑥쑥 자라는 풀.
뽑아도 뽑아도 자라나는 풀.
내 온몸을 넘어뜨리며 덤벼드는 사나운 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옹고집인 풀처럼 끈질긴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평화가 찾아왔다.
뽑힌 풀들과 핏물 밴 팔뚝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그와 나의 운명을 생각한다.
천명 같은,
글. 박미산 시인/ 그림. 원은희 작가
[저작권자ⓒ 이미디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