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엽이 지니 보이는 것들

글_이창석 교수_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김명화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0-12-21 14: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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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석 교수_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온대지방에서 숲을 이루는 낙엽활엽수들은 가을이 되면 에틸렌이나 아브시스산 같은 생장 억제 호르몬을 합성하여 잎자루에 떨켜를 형성하며 두께가 얇아 추위에 얼기 쉬운 잎을 덜어낸다. 잎은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합성하여 자신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는 물론 함께 생태계를 이루어 살아가는 다른 생물들의 에너지까지 도맡아 생성해내는 태양광발전소이다.  


그처럼 중요하고 자기 몸의 일부이지만 겨울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 그것을 제 몸으로부터 나무들은 떼어낸다. 추위에 살아 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물론 다른 의미도 있다. 나무 밑에서 그 에너지를 기다리는 흙 속 동물과 미생물에 대한 배려다. 바닥에 떨어진 잎들을 그곳에 사는 작은 동물들이 나눠 먹으며 잘게 잘라 놓으면 표면이 넓어진 그 공간에 미생물들이 달라 붙으며 또 한번의 만찬이 벌어진다.


이런 미생물들의 식사가 끝나고 나면 그 잎은 식물들이 뿌리를 통해 빨아들일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화학 원소로 바뀌어 식물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나무가 제 몸을 덜어내는 통 큰 투자를 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의 이맘때쯤 온대낙엽활엽수들은 잎들을 덜어내 온몸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있다. 금년 한해 우리 모두가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몇몇 사람들이 주는 공포에 떨며 몸을 잔뜩 움츠리고 살아왔지만, 조금도 움츠림 없이 꿋꿋하게 탄소 중립 정책에 기여하고 미세먼지 저감 정책에도 동참해온 나무들이 이 엄동설한에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 사진 1. 충분한 깊이를 확보해주지 않아 뿌리가 많이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다. 그럴 경우 뿌리가 충분한 양으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지 못해 나무의 몸에 상처를 내게 된다. 줄기에 난 상처도 깊어 치유하려고 애쓴 모습이 드러나 있지만 미처 마무리가 되지 못해 목질부가 드러나 있다.

 

드러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나무를 키우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큰 나무를 가까이에 두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상처다. 충분한 깊이를 확보해주지 않아 땅속에 묻혀 있어야 할 뿌리가 겉으로 드러나 있다(사진1).  

 

▲ 사진 2. 안정된 활엽수림에서 중간 키 나무 층을 이루어 살아가는 당단풍나무를 토양의 질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도심 한복판에 옮겨 심어 이런 상처를 만들어 냈다. 상처를 덮기 위해 심피를 키우고 수피까지 동원해 보았지만 미처 치료를 마무리하지 못해 우림 몸의 뼈에 해당하는 목질부가 썩어가고 있다.

 

줄기에 난 상처는 열심히 속껍질과 겉껍질을 모두 동원해가며 치료해 보려고 몸부림쳤지만 우리 몸의 뼈에 해당하는 목질부가 여전히 드러나 있다(사진2).  

 

▲ 사진 3. 큰 나무를 옮겨 심으면 옮겨진 과정에서 뿌리가 손상되어 지상부에서 필요로 하는 양만큼의 물과 양분을 공급해 주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무는 이와 같이 나무의 중심부가 일찍 썩어 가며 수명이 단축되게 된다.

 

일부 가지에는 몸부림치며 뿌리가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광합성을 하는 잎과 함께 에너지를 공급하며 살려보려 애썼지만 요구하는 양만큼의 물과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해 제살을 깎아 먹다가 끝내 죽어버린 상처를 달고 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가지의 중심부가 썩은 모습이 그런 고통의 과정을 대변해주고 있다(사진3). 


▲ 그림 1.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 (ecosystem service).

 

나무는 살아서는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공기를 정화하며 맑은 물을 주어 가며 온갖 봉사 (ecosystem service)를 도맡아 한다(그림1). 죽어서도 온몸을 태워가며(자연에서 태운다는 것은 분해를 의미) 땅속 생물들을 먹여 살리고 토양을 살찌우며 우리 모두를 보듬고 있지만 자연의 막내둥이 우리 인간은 그들에게 이런 상처를 남기고 있다. 이제라도 나무로부터 비우는 것을 배우고 기다리는 것을 배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는 나무에게 고마움은 표시 못해도 상처만은 주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나무를 묘목으로 심으면 이런 상처가 없다. 묘목은 크기는 작지만 성목으로 도입한 나무들보다 생장속도가 빠르다. 생장속도가 빠르니 정화 기능은 더 크게 발휘한다. 무엇보다도 키워가며 드는 정이 우리와 나무를 더 가까워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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