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DMZ와 우리의 자화상

김명화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19-02-08 14: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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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우 전 국회의원
20세기 인류는 두 개의 큰 전쟁을 치루었다. 1,2차 세계대전이라 명명된 큰 싸움이었다. 세계는 이 전쟁의 결과로 지금의 체제를 만들어 유지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인류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전쟁이라는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전쟁’과 동전의 앞뒤 면인 ‘평화’도 똑같은 질과 양으로 우리의 일상을 만드는 언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화를 많이 외치는 사회일수록 전쟁의 위험이 많은 사회임은 분명할 것이다.

2차 대전의 두 전선은 연합군과 독일, 연합군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중국, 한국, 동남아 일대가 일본의 침략으로 각국의 주권과 평화가 유린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각국은 항일전쟁을 통해 스스로의 주권을 세우려 노력했고, 결정적으로는 미국과의 확전으로 일본은 그 침략의 한 시대를 마감한다. 2차 대전이 이렇게 막을 내리지만 한반도에서는 아직 꺼지지 않은 전쟁의 불씨가 다시 불타올랐다. 미‧중간의 새로운 힘겨루기의 시작이었으며 2차 대전의 에필로그였다. 한반도는 전쟁으로도 청산되지 않은 일제강점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채 분단의 슬픈 운명에 놓인 것이다.

지난 70년의 분단사는 곧 세계사의 단면이었다. 미‧중간의 휴전으로 그어진 휴전선이 국경이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그 국경 아닌 국경을 DMZ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동서로 248Km, 남북으로 4Km, 한반도 면적의 1/250 면적을 우리는 국경으로 만들었다. 날아다니는 새들을 빼고는 아무도 이 경계를 넘을 수 없었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설치물 DMZ, 고대 피라미드, 만리장성이 만들어진 사연과 오버랩되는 설치물이다.

▲ 철원의 두루미 가족
이 DMZ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비극의 현장’, ‘생태환경의 보고’, ‘평화의 상징’, ‘비무장지대’. 국경이요 힘의 완충지대인 DMZ를 우리는 시대적 환경이 변화하는 만큼 다양하게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DMZ는 그 말뜻과는 반대로 ‘완전 무장지대’인 것이다. 엄청난 병력과 무기가 대치하고 있고 이루 셀 수 없는 지뢰가 묻혀있다. DMZ를 바라보는 시각들은 참 제각각이다. 한반도 면적의 1/250의 면적을 눈 가리고 코끼리 만지듯 제 편한 대로 대하고 있다.

얼마 전 철원 DMZ 안에서 남북의 군인들이 GP 초소를 폭파하는 평화의 퍼포먼스를 했다. 평화를 향한 간절함을 알리기 위해 한번은 그렇게 할 수 있다지만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만리장성의 망루를 폭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절대 왕정의 상징인 베르사이유 궁전의 현대적 가치는 프랑스인들의 자랑이요 주 수입원이라는 데 있다. 피라미드, 앙코르와트, 만리장성 이들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설치미술’, DMZ는 어리석은 이념, 탐욕, 잔인한 동족간의 전쟁으로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계속되는 미‧중간의 각축,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는 한반도의 현실이 바로 DMZ라는 작은 철조망 가시 하나를 바라보는 안목조차도 더욱 세계사적이고 인류사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DMZ 남쪽으로 5~20Km의 민통선이 존재한다. 이 구역까지 합치면 그 면적은 수 십 배로 증가한다. 강화도로부터 고성까지 남북의 평화분위기가 좀 무르익는다 싶으면 온갖 탐욕들이 몰려든다. 철원평야가 사라진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쩌면 DMZ라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설치미술을 지키기 위해 민통선이 존재했을 거라는 귀납적 사고를 해 본다. 평화와 통일 사이에 우리는 미래지향적 연사인식과 환경의식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고 염원한 지 70년, 철마는 달렸다. DMZ 내 대결과 증오의 눈동자 같은 GP를 양쪽 초병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폭파했다. 접경지역의 땅값이 들썩인다고? 우리 경제의 유일한 돌파구가 북방이라고?

DMZ는 단순하지 않다. DMZ를 바라보는 수준이 한반도와 인류를 바라보는 수준이라 잘라 말하고 싶다. 한국전쟁으로 300만의 사상자가 있었고, 일제 침략으로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 흘렸고, 분단 70년 동안 우리 민족이 지불한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로 우리는 ‘20세기 인류 최대의 설치 미술’을 얻었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으로 짧은 글을 접는다.

[글 I 이철우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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