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전 세계 각국이 기후정책을 빠르게 늘려가는 가운데, 어떤 정책이 실제로 탄소배출 감축에 효과적인지 가려내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개별 정책이 단독으로 작동하기보다 이미 시행 중인 여러 정책과 뒤섞여 효과를 내기 때문에, 특정 정책의 순수한 영향을 분리해 평가하기가 갈수록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진은 “정책이 많아질수록 평가도 더 정교해져야 한다”며, 복잡한 정책 혼합 속에서도 일관되게 효과를 내는 이른바 ‘모든 계절에 통하는’ 기후정책을 가려내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스위스 로잔대, 독일 LMU 뮌헨, 노르웨이 오슬로대 연구진에 의해 작성된 는 1990년부터 2022년까지 32년간 40개국에서 시행된 기후정책을 분석했다. 해당 연구는 Climate Policy에 게재됐다. 대상은 건물, 에너지, 산업, 교통 4개 부문이며, 총 1,737개의 개별 정책과 이를 47개 정책 유형으로 묶은 자료가 활용됐다. 연구진은 각 정책의 존재 여부만이 아니라 강도까지 반영하는 OECD 기후정책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배출권거래제(EU ETS)까지 별도로 포함해 평가했다.
분석 결과, 세 가지 모형 중 최소 두 개 이상에서 유의한 감축 효과가 확인된 정책은 28개였다. 연구진은 이를 “보수적으로 추린 효과 정책군”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효과적인 정책은 한 종류에만 몰리지 않았다. 탄소가격제·조세 정책이 8개, 에너지효율·기준 정책이 5개, 재생에너지·연구개발 정책이 11개, 보고·책임성 강화 정책이 3개, 화석연료 보조금 축소 정책이 1개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정책의 정답이 단 하나의 ‘만능 처방’이 아니라, 여러 정책 수단의 조합 속에서 찾아져야 함을 시사한다. 다만 그 가운데서도 탄소가격제와 조세, 재생에너지 확대와 연구개발 투자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효과를 내는 축으로 평가됐다.
구체적으로는 건물 부문의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전력·산업·교통 부문의 탄소세, 전력·교통 부문의 화석연료 소비세, 교통 혼잡통행료, 건물 에너지 코드, 대기배출 기준, 운송 분야 최소에너지성능기준(MEPS), 전기모터 기준, 고속도로 속도제한 등이 효과 정책으로 분류됐다. 여기에 더해 탄소포집저장(CCS), 원자력, 수소, 에너지효율,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공 연구개발 투자, 재생에너지 경매제도,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 에너지·산업·교통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 보고 및 회계 제도도 유효한 수단으로 지목됐다. 특히 화석연료 보조금의 축소 또는 폐지도 교통 부문에서 감축 효과가 확인됐다.
연구진은 탄소세의 효과가 특히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탄소세는 정치적 이유로 세율이 낮게 설정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효과는 다른 보완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분석에서는 다른 정책들의 영향을 동시에 통제한 이후에도 탄소가격제 자체가 여전히 유의미한 감축 효과를 보였다. 이는 탄소세가 단지 상징적 장치가 아니라, 정책 혼합 속에서도 독립적인 감축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에서는 포르투갈 사례를 통해 이런 효과를 보다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연구진은 2000년 이후 포르투갈이 각 부문에서 가장 효과적인 정책을 최고 강도로 도입했을 경우를 가정해 실제 배출경로와 비교했다. 그 결과 건물·에너지·산업·교통 4개 부문에서 누적 5억3800만 톤의 이산화탄소환산량(CO2eq)을 추가로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연구가 비교 대상으로 제시한 한국의 해당 4개 부문 연간 배출량 5억6700만 톤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다만 에너지 부문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실제 배출량과 가상 시나리오의 차이가 줄었는데, 이는 포르투갈이 이미 화석연료 탄소세 등 효과적인 정책을 상당 부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국가별 정책 여지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교통 부문에서 폴란드부터 인도까지 여러 국가가 효과적인 정책을 충분히 채택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반적으로 기후정책 의지가 높은 나라들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했다. 연구진은 독일의 경우 더 엄격한 고속도로 속도제한이 추가 감축 여력을 키울 수 있고, 호주·캐나다·일본은 화석연료 소비세 강화를 통해 교통 부문 감축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처럼 주요 효과 정책을 이미 폭넓게 도입한 국가도 있었는데, 이는 이런 정책 묶음이 정치적으로 쉽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불가능한 조합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연구진은 해석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와의 비교에서도 일정한 설득력을 확보했다. 연구진은 같은 OECD 데이터를 활용해 대규모 배출 감소 시점을 중심으로 효과 정책을 식별한 2024년 선행연구와 결과를 대조한 결과, 전체적으로 63% 수준의 일치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교통 부문은 71%로 가장 높았고, 건물 부문은 56%로 가장 낮았다. 연구진이 추가적인 오탐 방지 장치를 완화하면 두 연구의 일치율은 약 83%까지 올라갔다. 이는 이번 분석이 무리하게 “효과 있는 정책”을 과다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소 보수적으로 유효 정책을 추려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기후정책이 다양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며, 정책 수가 늘수록 어떤 정책이 실제로 통하는지를 가려내는 정밀한 평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모든 나라와 모든 조건에서 똑같이 적용될 단일 해법은 없지만, 적어도 여러 정책 조합 속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배출 감축을 견인하는 ‘핵심 선수’들은 존재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탄소가격제, 에너지효율 기준, 재생에너지 확대와 연구개발, 온실가스 보고·회계 강화가 그 중심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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