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실용성에 방점을 둔 한옥을 접목한 현대건축

문화유적지로 재탄생할 가치‘충분’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2-07-07 17: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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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김한결 기자] 
▲청와대 본관 모습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궁궐 청와대(靑瓦臺).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자 근현대사가 공존하는 문화재다. 지난 5월 10일 74년 만에 국민에게 개방한 이후 관람객들이 줄지어 찾는 관광지로 변했다. 

청와대는 집무 공간인 본관, 공식행사 공간인 영빈관, 주거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 장소인 상춘재, 비서 부속기구인 대통령 비서실, 경호 부속기구인 대통령 경호처, 대언론 창구인 춘추관, 조선시대의 사당인 칠궁, 회의 전용공간 서별관, 120여 종의 나무와 정원이 있는 녹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253,505m²에 달하는 대지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르던 터다. 

일제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복궁을 완전히 누르고자 더 높은 지대를 택해 조선총독부 관저를 세웠다. 이는 풍수상 용맥(龍脈)에 해당하는 자리를 끊어보려는 속셈과 과거 조선의 관리를 뽑던 과거장을 차지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정기를 끊으려고 품은 야욕이었다.  해방 이후까지 철거되지 않은 채 중앙청으로, 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70년 동안 사용됐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옛 건물명을 살려 경무대로 부르게 했다.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관람객들이 꽤 많았다.  본관 외에 내부는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외부에서만 건물을 살펴보는 정도로 탐방했다.

 

궁궐보다 양반주택과 비슷
청와대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윤보선 대통령이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이미지 쇄신을 위해 이름을 바꾼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 이후, 노태우 대통령 때 새로 지은 것이다.  전통미를 살리기보다는 실용성에 방점을 두고 상춘재를 제외한 본관과 춘추관, 영빈관, 여민관을 모두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다만 건축양식과 문양 등에 한국의 전통미를 자연스럽게 가미한 흔적이 보인다.  청와대 본관은 지하 1층에 지상 2층의 청색 기와지붕 건물이다. 

지금의 청와대 본관은 조선총독부 관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1991년에 새로 지었다.  2층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단층의 별채를 배치했다.  지붕으로 얹은 약 15만 장에 달하는 청기와는 도자기를 굽는 방식으로 한 장 한 장 구워낸 것으로 100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니고 있다.  건물의 형식은 조선 중기의 화려한 팔작지붕과 다포(多包) 양식을 원용하고 있으나, 배치 양식은 궁궐보다는 양반주택과 비슷하다.  지붕 선과 처마 선의 곡선미가 강조됐으나 현대건축 양식에 더 가깝다. 

처음 본관에 들어서서 내부 관람 전에 신발에 덧신을 장착한 후에 이동했다.  정중앙으로 서구식 대저택처럼 탁 트인 공간 위로 높은 계단이 펼쳐졌다. 계단을 올라 왼쪽으로 향한 영빈관 역시 축구장만큼 넓은 공간에 놀랐다.  대규모 회의나 국빈들을 위한 공식행사를 열던 곳이다.  18개의 돌기둥이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형태로 앞쪽의 돌기둥 4개는 화강암을 이음새 없이 통째로 깎은 원형 모양이 2층까지 뻗어 있다. 웅장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한국 전통건축 방식 ‘차경’ 적용
본관에서 소정원을 통해 관저로 향할 수 있다. 정원 사이로 숲길이 아기자기하게 조성되어 있다.  숲은 사방으로 연결되어 청와대 부속 건물 곳곳을 드나드는 통로가 되어준다.  이는 자연을 통해 막힘없이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전통건축 방식인데, 차경(借景)이라고 한다.  ‘자연을 빌려 정원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관저로 가기 전에 수궁(守宮)터가 있다.  경복궁을 지키던 병사들이 머물던 곳으로 이 일대를 경무대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740년 동안 산 것으로 여겨지는 ‘주목’이 있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하는 나무다. 청와대의 자연유산이다. 수궁터에서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면 관저가 나온다.

관저는 본관과 마찬가지로 팔작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전통한옥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생활공간인 본채와 외빈을 접견하는 별채가 ‘ㄱ’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으로 너른 잔디로 덮인 마당이 있다.  마당 한쪽에는 사랑채인 청안당이 있고, 관저 바로 앞에는 의무실이 있다.  청안당은 사랑채로 ‘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이 있다.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는 의전행사나 비공식 회의 장소로 사용된 한옥이다. 청와대 내에 한옥의 아름다움을 외국 손님에게 소개할 장소가 없어 1983년에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해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놓아 전통가옥으로 꾸몄다.  상춘재 앞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 식수를 비롯한 120여 종의 울창한 나무들이 녹지원과 연결되어 있다.  또 수령이 170년넘는 한국산 반송(盤松)도 볼 수 있다.  한옥과 숲을 동시에 감상하기 좋은 공간으로 외국에서 국빈이 오면 상춘재에서 만찬을 진행했었다.  상춘재 위로는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침류각이 있다. 침류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돼 있으며,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왔다고 한다.

 


청와대 권역 과거 실상 발굴 조사 필요
녹지원을 돌아서 나오면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이자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던 춘추관이 있다.  고려와 조선의 역사기록 기관이던 춘추관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언론의 자유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청와대 건물마다 특성에 맞는 이름이 붙긴 했으나 일정한 규칙이나 원칙이 없는 점은 아쉬움이었다.  경복궁 건물만 보더라도 용도나 사용하는 주인의 신분에 따라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격조 있는 이름을 부여한 것과 비교가 된다.  앞서 경복궁에서 살펴봤듯이 전통건축에서의 기본은 인간적 친근미와 지형, 자연과의 조화다.  그러나 청와대 건물은 이러한 특징을 반영한 전통건축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이 때문에 목조건축이 아닌데도 재료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의 전통적인 목조건축을 흉내만 냈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많다.  한복에 비유한다면 계량한복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1000년을 거슬러 오르는 우리 역사의 중심지요, 우리 선조의 맥이 살아 숨 쉬던 정사의 현장이다.  이제라도 청와대 권역의 과거 실상을 발굴 조사하고 정비를 통해 새로운 문화유적지로 재 탄생할 가치는 충분하다.
<글/사: 김명화>
-참고 도서: 『우리 시대의 궁궐 청와대』/백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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