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만성적 지하수 고갈과 물의 과잉 배분, 토지·토양 황폐화, 산림전용, 수질오염, 기후변화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세계가 ‘글로벌 물 파산(Global Water Bankruptcy)’ 단계에 진입했다는 유엔대학교(UNU) 산하 연구기관의 보고서가 발간됐다. 보고서는 물 부족을 스트레스나 위기로만 부르는 기존 언어가 더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며, 이미 많은 지역에서 과거의 수문학적 기준선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위기 이후(post-crisis) 실패 상태’가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보고서가 제시한 핵심 개념은 ‘물 파산’이다. 이는 (1) 재생 가능한 유입량과 안전한 고갈 한계를 넘어서는 지표수·지하수의 지속적 과잉 인출(및 오염)과 (2) 대수층·습지·토양·하천·빙하 등 ‘물 관련 자연자본’의 돌이킬 수 없는(혹은 복구 비용이 과도한) 손실이 결합된 상태를 뜻한다. 즉, 압박은 크지만 되돌릴 수 있는 스트레스나 일시적 충격으로서의 위기와 달리, 물 파산은 누적 손상이 시스템의 회복력을 무너뜨려 “정상 복귀” 자체가 목표가 되기 어려운 단계라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유엔대학교 물환경보건연구소(UNU-INWEH) 카베 마다니(Kaveh Madani) 소장은 이를 재정에 비유해, 많은 사회가 강·토양·눈·적설 등 매년 돌아오는 물의 ‘수입’을 초과 지출했을 뿐 아니라, 대수층·빙하·습지 등 장기 ‘저축’까지 깎아 쓰면서 구조적 적자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물 파산이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재형 위기라고 강조하며, 전 세계적 규모의 지표를 제시했다. 대표적으로 약 22억 명은 안전하게 관리되는 식수에 접근하지 못하고, 35억 명은 안전한 위생 서비스가 부족하며, 거의 40억 명이 매년 최소 1개월 이상 심각한 물 부족을 겪는다고 밝혔다.
생태·저장 기반의 붕괴도 가시화되고 있다. 1990년대 초 이후 전 세계 대형 호수의 절반 이상이 수량을 잃었고, 지난 50년간 자연 습지 약 4억1,000만 헥타르가 사라졌으며, 이로 인한 생태계 서비스 손실 가치는 연간 5조1,000억 달러로 추정된다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물 파산은 특히 농업과 직결된다. 보고서는 전 세계 담수 인출의 약 70%가 농업에 쓰이며, 가정용 물의 약 절반과 관개용수의 40% 이상이 지하수에 의존한다고 짚었다. 그 결과 “줄어들거나 오염되거나 사라지는 수원에서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해야 하는 압력이 커지고, 물 관리 실패가 곧 식량·가격·무역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보고서는 물 파산이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무역·이주·기후 피드백·지정학적 의존성으로 연결된 “충분히 많은 핵심 시스템”이 문턱을 넘으며 글로벌 리스크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다고 강조한다. 물 파산은 한 지역의 가뭄이나 단일 유역 문제로 끝나지 않고, 농산물 공급과 가격, 사회 안정, 갈등 위험을 통해 파급된다는 취지다.
핫스팟으로는 ▲중동·북아프리카(높은 물 스트레스와 기후 취약성, 에너지 집약적 담수화 등) ▲남아시아 일부 지역(지하수 의존 농업·도시화로 인한 상수도 감소와 지반 침하) ▲미국 남서부(콜로라도강의 ‘과잉 배분’ 상징화)가 거론된다.
보고서가 요구하는 전환은 명확하다. 물 파산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WASH(식수·위생)와 점진적 효율 개선에 치우친 기존 의제를 넘어 ‘파산 관리(bankruptcy management)’로 정책 프레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습지 손실·파괴적 지하수 고갈·통제 불능 오염 등 추가적인 비가역 손실 차단 ▲저하된 ‘운반능력’(carrying capacity)에 맞춘 권리·청구권·기대치의 재조정 ▲생계 전환이 불가피한 지역사회를 위한 정의로운 전환 지원 ▲농업·산업·도시 시스템의 구조 전환(작물 전환, 관개 개혁, 도시 효율 개선) ▲지구관측·AI·통합모델을 활용한 모니터링·임계값 기반 관리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는 2026년 유엔 물 회의(UN Water Conference)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2026년 1월 26~27일 세네갈 다카르에서 열리는 고위급 준비회의를 앞두고 공개됐다. 관련 준비회의는 세네갈 정부가 개최하며, 아랍에미리트(UAE)와 유엔 DESA 등과 함께 회의 준비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내돼 있다.
보고서는 2026년과 2028년 유엔 물 회의, 2028년 ‘물 행동 10년’ 종료, 2030년 SDG 시한 등 다가오는 이정표를 “글로벌 물 의제 리셋”의 창으로 제시하면서, 늦출수록 적자가 깊어진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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