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이후 보이지 않는 재난…토양 침식, 수십 년 이어져

황원희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6-01-25 22: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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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산불이 숲을 태우고 주택과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재 이후 내리는 비가 지표 유출과 토양 침식을 크게 키우며 그 영향이 수십 년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공동연구센터(JRC)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산불 피해지역에서 발생하는 토양 손실은 매년 81억 톤에 달하며, 이는 지구 전체 토양 침식의 약 19%를 차지하는 규모다.

연구진은 산불이 매년 평균 약 400만㎢의 토지를 태우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EU 전체 면적에 맞먹는 수준이지만, 산불이 장기간에 걸쳐 토양 침식에 어떤 누적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전 지구적 평가는 그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연구진의 문제의식이다. 이에 JRC와 스위스 바젤대학교 연구진은 2001~2019년까지 20년치 자료를 바탕으로 ‘화재 후 토양 침식’의 전 지구 지도를 구축했다.

연구팀은 토양 손실을 추정하는 대표적 모델인 RUSLE(수정된 보편적 토양 손실 방정식)를 활용하되, 화재 이후 환경에 맞춰 모델을 조정했다. 식생 피복의 변화, 강우 강도 등 토양 이동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반영해 화재 후 토양이 얼마나 유실되는지 계산한 뒤, 2001~2019년 전 세계 산불 위성 관측 자료와 결합했다. 이어 산불 발생 이전의 토지 상태와 비교해 화재가 침식을 얼마나 증폭시키는지 추정했다.

분석 결과, 산불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토양 손실 81억 톤 가운데 아프리카가 6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아시아(12%), 남미(11%), 오세아니아(10%), 북미(4%), 유럽(1%) 순으로 나타났다. 산불 피해가 토양 황폐화로 직결되는 양상이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로, 연구진은 지역별 기후·지형·강우 패턴과 화재 후 회복력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장 주목되는 결론은 피해 지속 기간이다. 화재 후 침식 가운데 새로운 산불로 직접 촉발된 비중은 약 31%에 그쳤다. 나머지 69%는 수년 전에 발생한 산불의 여파가 누적돼 이어진 침식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산불이 지나간 뒤에도 토양이 안정화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강우가 반복되면서 유출과 침식이 장기화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는 “20년이 지난 뒤에도 전 세계적으로 불에 탄 지역의 절반 이상이 화재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산불 이후의 토지 회복이 단기간에 완료된다는 통념과 달리, 상당수 지역에서 장기적인 토양 손실이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폭풍우가 더 강하고 빈번해질 경우, 화재 후 토양 침식 문제가 한층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한 비는 지표 유출을 늘려 토양을 더 많이 씻어내리는 만큼, 산불 피해지의 ‘빗물-침식’ 연결고리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런 조건이 겹칠 경우 화재 후 토양 침식이 2070년까지 최대 28% 증가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자연의 자가 회복에만 기대는 접근은 한계가 분명하다며, 화재 이후 토지 관리와 복원 방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논문에서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전 세계 화재 후 토양 침식의 규모를 보여준다”며 “피해 지역의 완화 및 복원을 위한 화재 후 관리 조치와, 토지 황폐화 중립을 위한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지구 산림의 복원력을 높이는 일은 토지 황폐화를 막고 기후변화 적응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산불 대응이 진화·복구 중심을 넘어, 장기 토양 보전과 생태계 회복까지 포함하는 관리 체계로 확장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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