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한탄江을 가다

정부도 주민도 한숨내쉰 '탄식의 강'
이상복 | eco@ecomedia.co.kr | 입력 2006-01-24 10: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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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한탄江을 가다

정부도 주민도 한숨내쉰 '탄식의 강'


한탄강댐 7년째 ‘표류’ … “한탄강에 더 이상 합의는 없다”
지난달 6일 경기도 연천군 고문 2리 한 농가.
황량한 들판을 내달리던 영하의 바람이 상가집 대문에 내걸린 조등(弔燈)을 흔들었다.
유족의 곡소리가 간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문차 모여든 마을 주민들이 낮은 목소리로 삼삼오오 웅성거렸다. 100가구 남짓한 조그만 마을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주민이 작년에 이어 벌써 두 명 째다.
“이러다 여럿 죽지…죽어” “댐이 생기든지 말든지 무슨 해결이 나야지 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7년을 끌어, X새끼들!”
댐 얘기가 불거나오자 조문객들 사이에 간간히 욕설이 튀어나왔다. 전날 고인이 된 박모(47)씨는 채무압박에 시달리다 못해 농약을 마셨다. 불과 1년 전 같은 방법으로 한 마을의 장모(70)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평소 우애 좋던 자식들이 집행되지도 않은 보상을 두고 멱살잡이가 이어지자, 이를 지켜볼 수 없었던 촌로는 ‘일생의 터전’ 한탄강을 등지고 목숨을 끊었다.
7년째 표류해 온 ‘한탄강댐’ 건설을 두고 원주민들의 응어리진 탄식은 늘어가고 있다.

@P1@02@PE@

‘사람 잡는 한탄강댐’… 한 마을서 2명째 자살
한탄강댐이 ‘사람을 잡고’ 있다. 아직 건설의 가부도 결정 안 된 이 무형의 댐이 평화롭던 한 마을을 송두리째 수장(水葬)시키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땅을 담보로 빚을 냈거나 이자를 감당 못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는 상태다. 특별한 묘책도 없다. 주민들은 “땅을 보러 왔던 사람도 수몰예정지란 귀띔에 뒤도 안보고 줄행랑친다”고 말했다.
물론 댐 건설 여부는 결정된 사안이 아니다. 누구도 이곳에 댐이 들어선다, 아니다 장담하지 못한다. 댐이 들어서면 보상금을 받아 당장 고향을 떠나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당장 논밭을 팔아 빚부터 청산하고 봐야 한다. 그들은 수십 년을 그래왔듯 지금도 한탄강에서 매운탕거리를 잡아 올리거나, 논밭을 일구거나, 가축을 기르며 산다.
댐 건설 예정지로 알려진 고문2리는 연천군의 관광명소인 재인폭포를 품고 있다. 휴가철 한때 들고나는 관광객들은 현금이 궁한 시골마을의 귀한 수입원이다. 하지만 댐이 들어선다는 생각에 주민들은 더 이상 손님맞이가 달갑지 않다.
한탄강 사람들은 요즘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고문리의 한 주민은 “장맛비에 비가 새도 언제 물속에 잠길지 모르는 집에 돈 들이기가 주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보겠다고 뭐든 시작하려고 하면 ‘보상금 노려 연기 한다’며 안 좋게 본다” 며 “이렇게 수년을 끌어왔고, 언제 결정될지도 모르는 데 우리에게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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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수해방지종합대책‘댐 건설이 유일한 대책’
지난 ’96년과 ’99년, 두 차례에 걸쳐 임진강 유역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하류유역인 파주, 문산 일대를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었다. 100여명의 사상자와 9천억 대의 재산피해를 낸 수마(水魔)는 비만 오면 상습 침수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게 했다. 정부가 근본적인 수해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여론도 이 때 형성됐다.
이런 연유로 등장한 것이 임진강수해방지종합대책. 정부는 임진강 상류 한탄강에 1조원의 예산을 들여 3억톤 규모의 댐을 건설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상류에 물막이 댐을 건설하면 기습적인 폭우에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7년의 소모적 논쟁은 그렇게 첫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 댐 건설에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선 것은 수몰이 예상되는 철원, 포천 지역주민들과 경기북부 지역 환경단체였다.
이들은 댐건설 백지화를 주장하며 “강폭이 좁은 한탄강에 댐을 지어봤자 홍수저감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데 정부가 댐 건설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상반되게 정작 당사자였던 연천군민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물로 의한 재앙과 갈증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지금은 철거돼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한탄강에는 전곡면과 청산면을 가로지르는 높이 24m의 연천댐이 있었다. 댐이라고 하기엔 무색한 이 소수력발전댐은 폭우에 대책 없이 월류하며 ’96년과 ’99년 두 차례나 붕괴 위기를 맞았다. 연천군민은 흙탕물이 댐을 집어삼키는 섬뜩한 장면을 바라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때 댐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며 연천군 일대에만 약 2천5백여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침수피해는 현재 유적지로 조성되고 있는 한탄강 유원지와, 한탄강 지천중의 하나인 신천 상류 동두천시 일대에 집중됐다.
건설당시 홍수저감,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장밋빛 공언이 난무했던 연천댐, 이렇다 할 해명도 없이 수해의 주범으로 지목돼 ’00년 완전 철거된 댐은 지역주민들 사이에 정부에 대한 불신만 남긴 채 한탄강댐 건설을 예고하며 그렇게 종적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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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의 현안 갈등으로 부상 … ‘바통’은 지속가능발전위원회로
한탄강댐 건설계획은 침수피해가 예상되는 철원, 포천, 연천일부 지역주민의 거센 반발을 샀다. 당장 맘이 급해진 것은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의해 ’95년부터 댐 건설을 준비해 왔던 개발부처 측이었다.
’99년부터 한탄강댐 기본설계에 착수한 건교부는 이듬해 댐건설 장기계획에 한탄강댐을 반영했다. 연이어 ’03년에는 환경부로부터 환경영향평가를 받아냈다. 그러나 1조원을 들여 3억톤 규모로 지어지는 한탄강댐은 ‘350일 수문을 개방하고 우기시 15일만 물을 가둬야 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댐 건설의 명목도 바뀌었다. 임진강 수계 수해방지 대책에 적시된 댐의 용도는 ‘다목적 댐’이었으나 추진과정에 난항이 발생하자 ‘홍수조절용 댐’으로 변경된 것이다. 고시만을 앞둔 채 당국의 댐 건설의지가 구체화되자 ’01년을 기점으로 댐 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조직화되고 더욱 거세졌다.
댐 상류 주민들은 환경단체와 연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저효율, 고비용 댐 건설을 철회하지 않으면 대통령 불신임까지 불사하겠다”며 연일 천막농성과 항의집회를 열었다. 이런 과정 속에 한탄강댐 문제는 자연스레 참여정부의 사회갈등으로 부상했다.
갈등의 불꽃이 점차 확대되자 결국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03년 12월, 당선 1주기를 맞아 강원도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한탄강댐이 사회갈등에 대한 새로운 조정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에 한번 맡겨보는 것이 어떠냐?”는 요지의 발언을 꺼냈다.
사회적 갈등 해결과 관련해 대통령 직속 자문기관이었던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3기 고철환위원장 체재로 정비한 직후 한탄강댐 문제 해결의 바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야 했다. 지속위는 ‘갈등당사자가 합의를 통해 납득 가능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전제아래 찬·반 주민대표 각 4인, 정부·환경단체 대표 각 3인, 조정위원 4인 등 총 18명이 참여하는 ‘한탄강댐문제조정을위한관련당사자회’를 구성했다.
이미 새만금개발등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이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속위의 갈등중재 능력이 최초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물거품으로 돌아간‘갈등중재’… 반대측 “지속위 조정과정 편향적”
이들은 궁극적 합의를 목적으로 20여 차례의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찬성주민-반대주민, 정부-환경단체간의 주장이 엇갈리며 회의는 시종일관 고성이 오가거나 정회가 반복됐다. 진통 끝에 결국 조정위는 ‘지속위가 전문가 검토를 거쳐 최종결정을 내리면 전원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최종 합의문(결정문)을 ’04년 8월 전격 발표했다.
국책사업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절, 한탄강댐 문제는 갈등해결에 대한 새 모델을 제시하며 극적인 합의점을 도출하는 듯 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은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극심한 대립을 불러온 한탄강댐 문제가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새로운 사회갈등 해결의 본보기로 자리매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반겼다.
결정문은 “첫째, 임진강 유역의 홍수조절수단은 필요하며 그 수단은 홍수조절용 한탄강댐과 천변저류에 국한된다. 둘째, 그간 건교부가 추진해온 홍수조절용댐은 절차상의 문제와 신뢰성 부족문제로 백지화한다. 셋째, 개발사업자의 자료 꿰맞추기와 전문가들의 영합이 한탄강댐에도 존재되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지속위의 중재안도 얼마가지 않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한탄강댐건설반대대책위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해 11월 성명서를 내고 ‘지속위의 조정과정이 편향적이고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어 승복할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반대측 관계자는 “조정소위가 새로 제시한 홍수조절용댐과 2개의 천변저류안은 백지화를 선언한 기존 계획과 다를 것이 없다” 며 “임진강 홍수조절을 위한 타당성 검토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그 과정에 철원군 등 당사자들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단체 측의 반발도 이어졌다. 조정위에 참여했던 환경단체는 “지속위가 한탄강댐 계획을 무효화 한다며 1년 내에 홍수조절용 댐 건설을 협의하라는 이중적 결정을 내렸다” 며 “정부는 댐 계획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불만이 극대화된 측은 또 있었다.
당시 찬성 측 입장을 대변해 조정위에 참여한 김문준 수몰민대책위원장은 “결과에 승복한다는 조건으로 2박 3일 동안 합숙하며 어렵게 내린 결론을 번복하는 게 민주주의냐” 며 “당장 고통 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외면한 처사는 어떤 이유든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찬반 중재에 나섰던 지속위가 오히려 갈등 당사자와 또 다른 마찰을 빚자 탈출구가 보일 듯 했던 한탄강댐은 또다시 무기한 표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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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에 사회적 합의는 없었다 … 국무조정실 “원점서 재검토”
지난달 6일, 본지는 한탄강 상류에 위치한 댐건설 예정부지 ‘고문2리’를 찾았다. “한탄강댐은 연천군민 죽이는 댐, 결사반대 한다” “노무현대통령님 국민노릇 더 이상 못해먹겠다” “지속위는 전면 재검토를 즉각 수용하라” 전곡읍에서 고문리로 향하는 도로 곳곳에 찬반측이 걸어놓은 플랭카드가 을씨년스럽게 나부꼈다. 흡사 방폐장 사태가 극에 달했던 부안군을 보는 듯 했다.
농한기를 맞은 농촌마을에 낮게 내려앉은 어둠은 고문2리를 적막 속에 가둬놓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조우한 한 노인은 길가 전신주를 가리키며 “댐 생기문(생기면) 물이 이만큼까지 찬다”며 씁쓸하게 외지인에게 웃어보였다. 한탄강댐 예정부지는 곳곳이 군사보호지역에 묶여 출입이나 사진촬영이 제한됐다. 군 당국의 허가를 득한 후 뷰파인더로 바라본 한탄강은 매서운 날씨에도 수려한 풍광을 간직한 채 유유히 강물을 끌어안고 있었다.
고문2리 김문준(51) 이장을 만난 건 이미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진 오후 7시경이었다. 강가에서 20년째 민물매운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씨는 수몰민을 대표해 한탄강댐당사자회의에 참석해 왔다. 바로 전날 발생한 주민의 자살사고로 이장집은 연이어 장례진행을 상의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가뜩이나 흉흉했던 동네분위기는 더 침체되고 어수선해진 듯 했다. 어렵게 댐 얘기를 꺼내기 무섭게 김 이장은 “우리가 잘못한 게 뭐냐, 와서 협의를 하라면 했고 어떤 결정이든 따르겠다고도 했다. 이제 댐 얘기라면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결정이 7년이나 미뤄지면서 화목하고 평화롭던 마을이 만신창이가 됐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진 건 합의를 볼모로 최고결정자(대통령)의 결단이 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상가집을 동행하기 위해 밤늦게 이장집을 찾은 최옥분(44)씨도 “(댐이)생기든지 말든지 빚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며 “찬성도 좋고 반대도 좋지만 실제 고통 받는 이 마을 사람들의 말 못할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냐”고 되물었다.
현재 한탄강댐 문제는 지속위의 중재가 수포로 돌아가자 국무조정실로 이관된 상태다. 국무조정실은 임진강홍수량 산정의 적정성 여부와 댐 건설을 배제한 상태에서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등을 면밀히 검토, 2월초까지 ‘댐 건설의 타당성’을 밝힌다는 입장이다.
갈등 당사자가 참여한 가운데 대통령 직속 기구도 풀지 못한 숙제가 결국 하급기관의 손에 넘겨진 채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국무조정실 사회문화조정관실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 트럭 반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원점에서 재검토 하고 있다” 며 “댐 없이 가능하냐는 검증으로 시작해 필요하다면 위치와 규모를 결정하는 일까지 맡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한탄강댐 문제가 종결될지는 미지수다.
찬반으로 엇갈려 불신과 대립을 반복해 온 한탄강,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원주민들의 응어리진 ‘한탄’과 환경갈등에 대한 골 깊은 ‘불신’뿐이었다.

취재 /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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