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초에 환경미디어 서동숙 발행인과 상하수도학회 행사에 동행하며 우리 나라 하수도분야에서 지나온 일은 물론 현재 선진 외국의 하수도 실정 소개 그리고 향후 발전을 위한 제안 등 학술 논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하수도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에 망설이다가 매월이 아니고 분기별에 한 번정도라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얘기로 시작되었다. 사실 필자도 지금까지 16년 이상 운영해 온 ‘하수도연구회’ 활동 등에서 대시민 홍보를 위해서는 학술 논문이 아니라, 하수도 분야를 이야기로 알려야겠다는 필요성은 누차 느꼈고 집필 생각까지 한 적이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막상 실행으로 옮기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하수도에 대하여 보다 깊고 정확한 내용을 쉽게 알려드리면 시민들이 요구해서라도 제대로 된 선진국형 하수도서비스를 제공받는 기간을 크게 앞당길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자주 했지만, 일단 글이라는 것이 대부분 지나고 나서 보면 허물만 남기는 수가 많다는 점에서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하수도는 선진 외국에 비하면 매우 늦게 그 제도와 시설의 정비를 시작하였다.
이웃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당시 선진 문명국인 유럽과 미국의 하수도를 정식으로 배우고 일류 하수도기술자를 파격적인 대우로 초청하여 공중위생시설로 설치하였다. 일본의 근대하수도 분야의 학술, 기술 및 제도정비는 이미 19세기 말엽부터 시작하였으며, 하수도법이 제정 공포된 연도가 1900년이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1966년 8월 3일 하수도법이 처음 제정되고 외국 기술의 도입없이 독자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일본처럼 그 시작이 본격적인 것은 아니었다. 선진 외국은 처음부터 집주변의 위생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부패조를 없애고) 합류식 하수관거라 하여도 수세분뇨를 일반 가정 잡배수와 함께 바로 하수도로 배출하도록 설계하고 관거시설도 매우 조밀하게 만들었으나,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이전부터 빗물배제용 수준의 조악한 하수배수 시설에다가 생활오수도 버리게 되면서 합류식 하수도로 발달하여 집집마다 분뇨정화조(부패조에 해당함)를 그대로 존치하고 따로 분리수거하는 정말 세계적으로도 매우 특이한 형태의 하수도정비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은 아직까지 이런 기형적인 하수도를 누구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본 칼럼의 주요시대 배경은 하수도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부터 21세기 초반인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자 한다.
이 기간은 우리나라가 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시기이나, 그 그늘로서 전국의 도시하천은 넘쳐흐른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로 물고기가 살수 없는 죽은 하천으로 변해 사철 지독한 악취를 내어 모두 기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천 원수의 오염으로 수돗물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고, 또 경제력을 바탕으로 박람회, 올림픽 등 크고 작은 국제행사를 유치하여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도시하천으로의 하수유입에 기인하는 수질오염과 악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정부에서는 대도시 하수처리장과 차집관거 시설을 급속히 정비하는 하수도사업에 대단한 집중력을 보였다.
사실 2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전국 도시의 하수처리장을 일거에 설치한 나라도 세계적으로 그 유례가 없을 정도이다. 또 90년대 이후 빗물과 오수를 각각 별도의 관거로 배출하는 소위 분류식하수도가 지방소도시를 중심으로 많이 보급되고 있으며, 특히 2002년 ‘하수관거특별정비 원년’ 선언이후 중앙정부의 획기적인 재정투자와 민간투자 유치의 하수관거 BTL사업 등 전국 규모로 하수관거정비에 근래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분류식 하수도로 정비된 지역의 오수관거로는 비가 오더라도 한방울의 우수도 오수관으로 유입되어서는 안된다는 하수도 문외한의 주장에 환경운동 경력의 장관도 동조하고,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위원마저 이에 가세하여 정부의 하수관거정비사업이 크게 잘못된 것으로 질타받고 있어 안타깝다.
이 소동을 보면 하수도시설의 큰 기능과 방대한 하수관거시스템의 운영상의 융통성에 대한 이해가 없고 선진 외국의 하수도사정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이 시대 대단한 일을 하였고 현재도 하고 있는 하수도종사자들을 이만 저만 폄하하고 있지 않는 현실을 볼 때 솔직히 분노를 느낀다.
미리 말하지만 음지에서 하수도분야의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리나라가 이만큼 깨끗한 수돗물을 마시고, 공공 하천의 수질이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으며, 고소득 경제대국이면서도 깨끗한 수생생태계도 보전하고 있음에 우리 하수도인들은 크게 자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 칼럼을 통해서 필자는 그간의 우리나라 하수도분야의 전반적인 과정을 망라하고 우리나라 하수도의 강점과 약점은 물론 일반인의 오해 부분도 과감히 제기할 생각이며, 국내외 하수도 제도와 정책, 설계 및 시공, 연구 및 기술개발, 시민단체 활동 등 그간 우리나라 하수도가 당면하였던 전 범위에서 대표적인 하수도 화제 거리를 찾아서 차례로 써 나갈 생각이나, 외람되지만 필자 개인과의 연관성과 필자의 시각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그 첫번째 이야기는 ‘하천 등 공공수역수질 개선의 주역이 누구인가’이다.
도시하천 안양천을 누가 살렸는가?
작년인가 조선일보에 ‘안양천살리기 시민환경 감시단’ 활동을 소개하는 4단기사가 실렸는데 그 주요내용은 이렇다. 안양천의 수질이 많이 개선되어 깨끗한 물에 서식하는 다슬기와 물고기들을 중심으로 건강한 하천생태계가 복원되었으며 철따라 안양천에 철새가 많이 찾아 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런데 필자를 화나게 만든 것은 이 모든 공로를 ‘시민환경운동’의 밤낮없는 순찰과 계몽 덕분인 것인양, 그 시민단체의 활동상만을 적극 홍보하고 있을 뿐, 정작 안양천 전역에 걸친 하수도정비 노력은 단 한줄도 소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안양천 주변엔 아직까지도 산업폐수를 배출하는 업소도 다수 있으며, 이러한 자발적인 시민환경단체의 헌신적인 수질감시 노력을 조금도 과소 평가할 생각은 없다.
정말 일반인은 하기 어려운 보람있는 활동을 하고 있고 이러한 활동이 안양천의 수질을 지키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화가 난 부분은 이러한 기사를 쓰면서 한편으로는 안양천 전역에서 그간 기울인 하수도정비 실적을 조사하고 차집관거는 물론 하수처리시설의 설치와 운전 및 유지관리 현황 등에 대해서도 약간은 소개하여, 이러한 민간환경단체 활동과 어울려 안양천의 수질을 이만큼 끌어 올렸다고 했다면 그동안 하수도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서 지자체 관계자는 물론 실제 매일 차집관거 내를 들락이며 유지관리를 음지에서 하고 있는 하수도 작업자들도 얼마나 보람을 가졌겠는가 하는 점에서다.
사실 내 인생의 진로를 하수도분야로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건도 바로 안양천에서 오래전인 1980년대 초에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 자료를 바로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자료철 어디에는 당시의 신문 사회면의 작은 1단 기사 하나와 홍익대학 학보에 기고하였던 도시하천 정비 제안 관련 기사 내용에 자세한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1980년대 초에는 서울 목동 신시가지 개발사업이 한창이여서, 안양천에 지금의 목동교를 신설하여 통행을 개시하고 있었으나, 그 이전의 구목동교는 철거하지 못한체 방치되어 있었다.
당시 안양천 제방 인근지대에는 저소득층 밀집지역이 있었는데, 이 구목동교는 차량통행도 없고 해서 근처 아이들의 놀이터로 되어 동네에서 위험하다고 철거 요청을 구청에다 수차례 한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6살 여자아이(필자는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지만)가 구목동교 중간쯤 다리위에서 놀다가 부주의로 안양천으로 추락한 사고가 발생하였다. 지금은 없는 구목동교는 다리 높이가 지금의 목동교에 비해 매우 낮았으며, 추락당시 하천 수위는 30센티미터 내외로 매우 얕게 흐르고 있었고, 제방에 있던 어른들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 바로 달려 들어가 구조해 내었으나, 아이는 바로 죽고 말았다는 짧은 기사였다.
그 사망 원인이 익사가 아니라 독성물질을 흡입하여 질식사하였던 것이다. 구목동교를 오래 방치하지만 않았더라도 그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당시 내가 충격을 크게 받았던 것은 그 안양천에 깨끗한 물이라도 흘렀다면 결코 이 불행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만해도 전국의 도시하천 상황도 마찬가지였지만 안양천 변에는 변변한 하수(차집) 관거시설은 물론 하수처리장도 없던 시기였기에 생활하수 뿐아니라 온갖 공장폐수도 마구 방류되어 안양천은 독수가 흐르고 있던 시기였다. 하천 고수부지도 개발되어 있지 않았고 심한 악취로 누구나 접근을 기피하던 때였던 것이다.
당시 나는 홍익대학교에서 상수도공학 뿐아니라 하수도공학도 강의하고 있을 때였으며, 문교부 82년도 국비유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하여 위생공학 분야로는 처음으로 국비유학을 준비중에 있었기에 동경대학 박사과정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를 추천해 주신 은사 박중현 교수님께서는 동 대학에서 20여년전 상수도공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기에 나는 하수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나, 이 안양천에서의 비극을 알리는 작은 기사가 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유학가서부터는 하수도공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지금의 안양천변은 다른 전국의 도시하천변과 마찬가지로 숱한 사람들이 연중 하천 고수부지의 각종 편의시설에서 여가를 즐기고, 하천 가운데로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면서 물새들도 자주 보이는 낙원으로 만들어 졌지 않는가. 환경운동 시민단체의 활동도 값지지만, 기본적으로는 하천 양안에 설치된 하수관거와 안양하수처리장, 서남환경(주) 등의 하수처리시설의 설치와 관리 노력 덕분임을 이제는 시민들도 알아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필자가 본 바로는 하수도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한결같이 너무나 중요한 일을 아무 소리내지 않고 일만하고 있으며, 국가 및 지방 공무원들도 하수도업무를 수행하면서 대시민 홍보활동은 너무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한 것은 최근 대구시 금호강 수질개선 성과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등 이제 하수도정비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천수질과 생태복원에 성공한 수많은 국내 도시하천 유역에서 하수도시설에 대한 연차적 투자 상황과 하천 수질과 생태 회복의 개선상황을 간단히 도표로 만들어 홍보하기만 해도 시민들의 하수도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자! 미련할 정도로 일만해 온 하수도인들이여! 이제 쑥스러워말고 당당히 외치세요. “우리가 전국 도시하천을 깨끗하게 되살린 주역들”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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