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6년 9월말에 동경대학에서 하수도분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바로 귀국하여, 다음날 홍익대학교에 복직되어 상하수도공학 강의를 들어갔었다. 귀국하는 해에는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2년 후의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있었다.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대도시 하수처리장의 건설을 서둘러 도시하천 수질을 정화하여 악취를 내지 않게 해야 할 다급한 실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하수도정비의 기본방향 정립과 같은 원론적인 부분에는 정부의 관심이 미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하수도 행정은 건설부에서 맡고 있었다. ’79년에 상하수도국을 신설하고 ’80년에는 대한토목학회에 의뢰하여 ‘하수도시설기준’을 제정하는 등 분발하였으나, ’84년에는 국이 폐지되어 다른 건설 분야에 견주어 특히 하수도분야의 행정은 매우 버거운 상황에 있었다(’89년에 다시 설치함). 그런 가운데서도 아시안게임, 올림픽 유치 등 잇따른 대형 국제행사 준비를 해야 하였는데, 우선 서울의 한강 등 도시하천에 유입하고 있던 대도시 생활하수를 처리하는 대용량 하수처리장시설부터 급속도로 설치하였던 것이다.
그 때 서울시에서 땜질처방으로 한강 양안의 하천부지내에 대형 하수차집관거를 설치하였는데 이를 모델로 여겨 이후 전국 도시에서 따라하는 후유증을 낳기도 하였다. 원래 하수관거는 하천(고수)부지에 설치되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홍수시 하수도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87년에는 그동안 추진하여온 대도시 대용량 하수처리장 건설 일변도 행정의 한계를 인식하고 우리나라 전역을 대상으로 한 하수도정비 정책 전반을 다루는 ‘하수도 정책 방향 연구’를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에 의뢰하여 수행하였던 점은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이는 오늘날의 ‘국가하수도정비론’의 원형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본국제협력사업단(JICA) 활동으로 한국의 하수도(정비)정책 방향 연구를 돕기 위해 浦山 齊(우라야마)씨(동경도 하수도국 소속)가 ’87년 10월부터 1년간 KICT에 파견되었던 일이 있었다. 그는 일 년이 지나 귀국하면서 ‘대한민국 하수도정책 방향 연구에 관한 조언보고서’(본보고서 92쪽, 별책 40쪽)를 한일 양국에 제출하였다.
그의 이 보고서는 필자도 개인적인 친분으로 한권 소장하고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 하수도 현실을 소상히 파악하고 일본의 시행착오까지 인정하면서 우리나라 최적의 하수도정비 방안을 진심으로 조언하였던 매우 가치 있는 보고서로 필자는 지금도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필자는 하수도관련 일로 당시 KICT를 자주 드나들었으며, 우라야마씨와는 우리나라 하수도정비 방안을 놓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었다. 당시 KICT에는 김갑수 박사님 외에는 일본말이 잘 통하지 않아 우라야마씨는 필자가 오면 하수도정비와 관련한 토의 외에도 이런 저런 내용을 놓고 장시간 많은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다.
처음 왔던 일본인 하수도전문가이고 또 필자가 일본 사정을 잘 알기도 하고 해서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쌓여 집에까지 초대하여 문화교류를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하수도 현실에 밝은 그가 훌륭한 조언보고서를 내고 ’88년 10월 귀국하게 되면서 나는 마음이 착잡하였다. 우리 학계에는 아직 국가하수도정비론에 대한 자료가 전무한 실정인데, 만일 그가 일본에 돌아가 ‘대한민국 하수도정비의 기본방향 정립’ 관련의 글이라도 일본 저널에 싣는 날이면 앞으로 우리나라 하수도 정비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하수도분야의 학계에서는 학술 논문만 학회지에 게재하였지, 정책 방향과 관련한 주장을 담은 글을 학회지에 발표하는 일은 사례가 없었기에 필자도 투고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었다. 그렇지만 우라야마씨의 일을 생각하면 아주 불안해서 견디기가 어려워 우리나라 하수도정비 정책 관련 글을 학회에 투고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던 것이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1988년 12월 대한상하수도학회지에 ‘우리나라 下水道整備의 基本方向 정립에 관한 考察’이라는 논설을 게재하였다. 이 원고는 논문과는 형식과 내용이 사뭇 달라서 당시 학회장이신 박중현 교수님께 공동저자로 해서 게재해 주십사하고 말씀을 드렸던 것이나 후에 보니 ‘논설’로 해서 필자 단독 명의로 게재되어 있었다.
그 글을 근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읽어보면 미숙한 부분도 여러군데 눈에 띄지만, 당시에는 오직 우리 학회지에 우리나라 하수도정비론 연구 기록을 먼저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그 내용을 되돌아보면, 우리나라 하수도정비 분야의 발전 상황과 큰 줄거리에서 상당 부분 합치되고 있어 안심이다. 그때까지 하수도는 도시문제의 해결방안으로만 치부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소규모 하수도시설과 관련한 ‘마을하수도’와 ‘개별하수도’ 용어를 사용하고, 농어촌지역의 주민이라 하여도 하수도서비스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던 것이다.
또 하수도의 세대론적 구별을 시도하면서 우리나라는 하수도시설의 기본인 하수관거(‘제 1세대’)시설의 부실은 제쳐두고 바로 ‘제 2세대’시설인 하수처리장 확충에 진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향후 수세분뇨의 직접배제가 가능한 수준의 ‘정비된 하수관거’를 새로 정비하여야 함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정부에서 2002년 ‘하수관거 특별정비 원년’ 선언과 함께 ‘정비관거’의 모습이 전국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부분에서 보람을 느낀다.
또한 논설에서는 기왕의 ‘하수도보급률’ 지표가 향후 우리나라 하수도정책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을 일찍이 지적하였다. 부실한 하수관거를 그대로 인정한 ‘하수관거보급률’ 지표는 실제 우리나라 하수도분야 발전을 지금도 자승자박하고 있다. 그 논설에서 합류식, 분류식 하수관거를 불문하고 수세분뇨를 직배출할 수 있는 수준의 관거이면 ‘정비관거’로 볼 수 있으며, 바로 이 ‘정비관거’와 ‘하수처리장’ 정비를 동시에 고려한 ‘하수도정비율’ 지표의 도입을 통해 자승자박을 풀 수 있을 것임을 주장한 바 있다. ‘하수도보급률’ 지표 문제는 지금도 미결상태로 그대로 남아 21세기 우리나라 하수도정책 수행상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여담이지만, 서울대 한무영 교수가 ’80년대말 당시에는 KICT에서 하수도분야 연구에 열심이었는데, 나의 논설 내용 중 ‘제3세대 자원개발형 하수도’에 대해서 개념을 문의한 적이 있고,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김영란 박사도 나의 졸고를 주의 깊게 읽었다고 말해 준 적이 있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하수도를 연구한 여러 후학들이 그래도 필자의 글을 많이 읽어 주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그 논설을 발표한 후에 느낀 점이지만 학계에서 개인적인 논문 발표도 중요하지만 세간에 미치는 영향은 오히려 이러한 정책관련 논설류의 글이 더 크지 않은가 생각된다. 환경미디어의 청탁이 있기도 하였지만 이 ‘하수도이야기’를 쓰는 연유도 거기에 있다.
글 김응호/홍익대교수, 하수도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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