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수도연구회(이후 본회로도 칭함)의 시작이 1990년 8월이었고, 그 후 매달( 단 7월 및 12월 제외)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시간 모임을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어 지난 5월로 제169회를 기록하였다. 필자는 지금도 하수도연구회 회장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햇수로 17년간을 사실상 필자가 이 모임을 주도하였다. 여기서 ‘사실상 주도’란 말에는 사연이 있다. ‘90년 하수도연구회 발족 당시는 공식적인 모임은 아니었고, 정식 조직도 없었으며, 단지 ‘간사’ 이름으로 앞장섰고, 1996년 4월 제58회 모임에서 대한상하수도학회 산하로 공식화한 다음에는 운영내규에 따라 학회장이 본회 회장이었으며, 줄곧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학회장님이셨던 박중현 교수님께서 그간의 본회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운영을 일임하셨던 것이다.
그런 관계로 90년대에는 하수도연구회 회장이 아니었는데도 일상 본회 운영을 주도해 온 탓에 바깥에서는 회장으로 아는 분들도 있었다. 그 후 대한상하수도학회가 초대 박중현 회장님에 이어, 2대 김성순 회장님, 3대 정태학 회장님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본회 운영위원장이었으며, 2003년 봄 필자의 대학동기이고 또 하수도연구회 활동에도 처음부터 뜻을 같이 하였던 현인환 교수가 4대 학회장에 취임하면서 그의 배려로 본회 내규를 고쳐 하수도연구회 회장으로 활동하게 되었던 경위가 있다. 공식적으로는 본회 회장을 맡은 지 이제 만 4년이 지났다.
이러한 필자의 ‘사실상 주도’는 이전에 운영위원장으로 있을 때, 하수도연구회 활동의 공과(功過)를 따져야 하는 자리에서 문제로 드러난 적이 있다. ‘만일 공이 있다면 회장이신 학회장님의 몫이고, 과가 있다면 운영위원장인 내가 그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있다’고 말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일본 유학시절 하수도연구회 활동을 구상하다
일본 유학 얘기를 자주 해서 미안하지만, 동경대학에서 국비유학 중에 있었던 일이라서 도리가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필자는 1982년도 문교부 국비유학생(토목공학) 시험에 합격하고 보니, 위생공학 전공으로는 필자가 첫 번째였었다. 당시는 남북한 간의 긴장이 높았으며, 출국에 앞서 특별소양교육도 받았는데, 주로 애국심 고취 교육이 중심이었던 것 같다.
1983년 초부터 동경대학으로 가서 도시공학과 마쓰오(松尾友矩) 교수님의 지도하에 위생공학 전공 박사과정을 이수하였으며 1986년 9월 하수처리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마쓰오 교수님은 수년전 동경대학은 은퇴하시고 근처에 있는 사립대학인 동양대학의 총장(일본에선 학장 명칭임)으로 계시며, 하수도분야 연구로 일본 국내는 물론 IWA부회장으로 국제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신 분이다. 필자는 30대 초반 홍익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승진한 후 한 학기 강의를 마치고 휴직하고 일본을 갔기 때문에 좀 철이 든 유학생이었다.
유학생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익하였다. 하루 종일 실험 연구를 하는 날이면 저녁 늦은 시간에 유리기구 등을 세척하는데 만도 한 시간 이상이 걸릴 때도 허다하였다. 손으로는 세척을 하면서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다. 젊을 때 외국에 나가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나도 자주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였다. 당시 일본의 하수도분야의 발전상에 비해 우리나라 하수도분야는 중앙정부의 행정체계부터 약하고, 국내 학계와 산업계의 전문성과 기술수준이 많이 부족한 것을 실감하고 걱정하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 우리 정부의 국비유학생이라는 프라이드를 가지고 느낀 것이었지만,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일대일로 놓고 보면 어찌 보면 그들은 우리보다 순진하고 능력 면에서도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개개인 능력으로는 한국이 월등한 것 같은데 어느 분야이던 여럿이 장기간 일을 한 결과는 오히려 일본이 저 멀리 앞서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왜 그런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지내던 유학 2년차의 어느 가을 날 나는 내 지도교수님의 다른 활동을 알게 되면서 그 해답을 단번에 찾은 듯 한 전율을 느꼈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는데 전에 못 보던 여러 사람들이 동경대학에 와서 마쓰오 교수님과 함께 무슨 미팅을 가지고 저녁까지 함께 하는 것을 보았다. 이제 일본말도 그런대로 불편 없이 소통이 될 무렵이었고, 당시 마쓰오 연구실에는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소메노(染野)씨가 사무원(조수)으로 계셨는데 나이든 유학생인 필자에게 따뜻하게 잘 해주어서 연구 관련 부탁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얘기도 자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월요일 대학에 가서 바로 소메노씨에게 지난 토요일 모임 건이 궁금하여 물었다. 그랬더니 아직 몰랐냐며, 마쓰오 교수님이 외부의 학계와 산업계 사람들과 과외로 모여 무슨 연구회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당시 일본 사회에는 각 분야에서 이미 수많은 연구회 활동이 있었으며 바로 그 점이 우리와 다른 선진국 일본의 저력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는 출중해도 여럿이 모여서 지긋하게 성과(데이터)를 축적해 나가는 끈질김이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연구회 활동 같은 그러한 소프트웨어가 당시 우리 주변에는 없었다. 혼자 하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럿이 모여 지혜를 모으고 전문성 있는 데이터를 축적할 때 비로소 큰 힘이 된다는 점이었다.
필자의 하수도연구회 구상은 사실 일본 유학시절에 시작되었으나, 1986년 9월 귀국한 이후 바로 실현하지는 못하였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학계, 연구계, 관계 및 업계 전문가들의 뜻을 모아야 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학회나 무슨 세미나 등 공식행사가 끝난 이후 사석에서 만나는 주변 분들에게 우리나라 하수도분야의 낙후성을 얘기하고 하수도연구회 활동을 통한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이 긴요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이었다.
80년대 말 당시 국내 하수도행정은 2분할되어 있었는데, 원래 건설부에 있던 것을 잇따른 수질사고를 계기로 환경청이 하수처리장 업무를 가져가게 되었고, 하수관거업무는 건설부에 그대로 남아있어 하수도정책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었고, 건설부 공무원들은 상당한 조직 위기감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제의에 학계나 연구계 뿐만 아니라 건설부 하수도공무원이 적극적인 호응을 해 주었다.
당시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환경연구부를 통한 하수도연구가 매우 활발하였던 점은 전번 이야기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1990년 8월 22일 하수도연구회 발족도 KICT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하수도연구회로 통보가 있어서 모인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서울대 한무영 교수가 당시 KICT에서 하수도연구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한무영 선임연구원이 하수도표준도 연구 관련으로 일본 출장을 다녀오면서 일본의 선진 하수도시설을 소개하는 비디오자료를 여러 개 구해 왔으며, 혼자 보기는 너무 아깝다며 학계와 건설부에도 연락하여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함께 모여 일본 선진하수도 비디오 자료를 시청하는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저녁은 중국집에 시켜 먹어가며 보았지만 밤9시 가까이 되어서야 일부를 다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로 모두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시청 후 자연스럽게 회의형태로 진행되었다. 학계의 최고 선배는 고려대학의 최의소 교수님이셨고, 필자를 포함한 외부 전문가가 다수 KICT연구원과 함께 자리하였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러한 귀중한 모임을 ‘하수도연구회’로 정례화하자고 제안하였고, 최 교수님께서도 그것도 좋겠다고 그 자리에서 동의를 해 주셔서 갑자기 하수도연구회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수도연구회는 우연히 시작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은 아니다. 사실은 1989년 여름 하수도업무 관계로 당시 건설부 하수도과의 김돈수 계장, 단국대 현인환 교수, KICT의 한무영 박사 그리고 필자가 양재동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일을 마치고 근처 맥주집에서 저녁시간에 사적인 자리를 가졌고, 이 때 우리나라의 하수도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ㆍ연ㆍ관ㆍ산의 전문가로 구성되는 전문연구모임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기회를 보아 직접 실행에 나서자는 데까지 이야기가 진전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우리 연구회의 발기인 모임이 되었다. 제1회 모임이 비록 우연히 발족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발기멤버 4인중 3인이 자리를 함께 하였던 점을 주목하면 필연적이었다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 후 제3회 연구회 때는 박중현 서울대 교수님 등 학계의 원로분들을 두루 모시고 연구회의 운영 방안을 논의할 정도로 모임이 확대되었다. 자연스럽게 하수도연구회 모임은 필자와 한무영 연구원이 주도하여 가게 되었으며, 몇 번에 걸친 비디오 자료 시청이 끝난 후 필자는 전번에 이야기했던 ‘우리나라 하수도정비 기본방향 정립’ 주제를 발표하였고, 이어 일본하수도 100년사를 정리하여 일본하수도협회가 발간한 ‘일본하수도사’를 분담하여 연구 발표하자고 제안하여 총집편과 기술편을 근 일 년에 걸쳐 심층 연구를 하여 일본하수도의 역사와 현실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자료는 이후 일본하수도협회의 양해 아래 ‘일본은 하수도정비에 어떻게 힘써 왔는가?-일본하수도사’라는 단행본으로 발간하였으나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하수도연구회의 발족을 주도한 사연 이야기는 맺고자 한다. 하수도 연구회에서는 계속해서 격조 높은 주제 발표를 논문으로 축적하여 세계 최고의 하수도 정비모델이 되도록 연구회 활동에 애쓰신 모든분들이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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