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연강수량의 약 70%가 여름철에 집중되어 홍수가 자주 발생하고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가뭄이 발생하는 재해를 겪고 있다. 이런 재해를 경감시키기 위해 홍수 때에는 물을 저장하고 가뭄 때에는 물을 공급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댐’이다. 댐은 비가 많이 오면 이를 일시적으로 가둠으로써 하류 지역의 홍수사태를 방지하고 평상시에는 생활, 공업, 농업용수 등을 공급하며 수력발전을 통해 전력을 생산한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집중호우가 증가하고 하천 주변에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홍수피해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16개의 다목적댐과 13개의 용수댐을 건설·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름철 집중호우로 우리나라 강수량의 3/4이 유출되어 홍수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댐이 축조된 때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 편집자 주 -
세계 4대 문명인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인더스문명, 황하문명은 각각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나일강, 인더스강, 황화강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세계의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 이유는 강과 그 주변은 서식 환경이 다양해 동물, 식물이 번성하고 토양이 비옥하여 물과 식량을 찾던 인류가 강 주변에 터를 잡게 된 것이다. 강과 그 주변에서 나는 것을 취하고 배로 물건과 사람을 나르면서 도도한 물의 흐름과 함께 역사가 발전해온 것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강을 중심으로 생활을 하며 강을 이용하여 삶을 영위해 나갔다. 하지만 사회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강에서 얻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없게 되었고 농업의 발달로 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하였으며 이로 인해 ‘댐’이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벼농사에 사용될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소류지(小流地)나 저수지를 하천계곡에 건설할 때 취수보(取水洑)나 제방의 이름으로 소규모 흙댐을 축조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330년 신라 흘해왕 21년에 축조된 벽골제이다. ‘세종실록지리지 김제군편’에도 기술되어 있는 벽골제는 토가를 다져서 만든 흙댐으로 평탄한 지형에 축조되었다. 우리나라는 계절풍의 영향으로 다우지역에 속하며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미작농업을 일찍부터 발달되었기 때문에 물관리의 중점은 농업용수의 개발이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저수지로는 김제의 벽골제를 비롯하여 눌제, 황둥제, 시제, 제천의 의림지, 대제지, 밀양의 수산제, 공검지, 영천의 청제 등이 있다.
삼국시대 이래의 수리시설은 골짜기 물이 평지로 흘러나오는 산곡의 입구에 제방을 쌓거나 못이나 늪에 제방을 쌓는 형태, 즉 제언이 주종을 이루었다. 좁은 개울물을 끌어들여 관개수로 활용 했겠지만 후대의 방천 혹은 보(천방)와 같이 하천을 다스려서 관개수로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일반화되지 않았다. 하천의 수면과 경지의 높이에 차이가 있어 물을 끌어 쓰는데 기술적인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신라멸망의 원인이 토지국유제가 무너지고 지방토호가 대지주 형태로 강성해짐에 따라서 중앙집권제가 무너졌음을 거울삼아, 초기에는 토지국유제의 확립을 추진하고 동시에 벽골제의 중수등 치수와 이수 및 개간에 힘썼다. 후반기에는 왜구 및 북방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내습과 안으로는 쉴 사이 없는 정치적 변란 등으로 국운은 기울기 시작하였으니 치수나 수리사업이 활발치 못하였다.
이 시기의 새로운 현상은 간척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된 점을 들 수 있다. 14세기 몽고족의 침입에 맞서 싸우던 고려는 군·민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하여 해안지대나 도서연안에 방조제를 축조하고 경지를 개간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수리사업 역사상 새로운 진전이었다. 간척사업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서해안 일대에서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조선시대는 농업이 국가의 전 산업이었으므로 관개를 중심으로 하는 수리행정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조선 초기에 설치한 제언부가 조선시대 수리행정에 적지 않은 공적을 남긴 것은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조선조에 공포한 ‘제언사목’에서는 「진흙만으로 물을 가로질러 막으면 빗물에 무너져 버린다. 따라서 큰 나무를 이어서 가로막은 다음 기둥으로 그 뒤를 버티어서 움직이지 않게 하고 밑바닥에 많은 돌을 쌓아서 파괴되는 것을 방지한다」라고 댐 공법을 소개하였다. 또한, 1395년(태조 4년)에 정분이 제안하고 제언절목에서 권장한 수통공법과 1798년(정조 22년)에 정시원이 창안한 도수잠관공법이 정조실록에 소개되기도 하여 그 당시의 댐 관련 기술을 설명해주고 있다.
일제에 의한 우리나라 치수사업은 산미증식계획과 철도·도로 등 공공시설방호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우리나라에 근대적 댐이 들어선 것이 바로 이 시기로 일본이 북한지역에 대규모의 수력발전용 댐을 건설하였고, 남한지역에는 소규모의 관개(灌漑)용 댐을 축조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래 일제는 한반도의 식량생산기지화와 북한지역의 중공업기지화를 위하여 관개 및 수력개발을 위한 조사를 국가사업으로 실시하였다. 1915년부터 1939년 사이 2회에 걸친 전국 25개 주요하천 조사사업과 1911년부터 1945년 사이 3회에 걸친 전국포장수력 조사사업을 실시하였다. 이시기에 축조된 댐은 수풍댐과 같은 세계적 기술수준에 접근한 대규모의 중력식 콘크리트댐이 수력발전용으로 건설되었다는 사실이다. 1941년 압록강 본류에 건설된 수풍댐은 Hoover Dam 기술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댐 기술 개발에 혁신을 가져왔다. 두 번째 특징으로는 500m 내외의 고낙차를 견딜 수 있는 수리구조물의 설계시공이 가능하였단 사실이다. 그리고 수풍댐과 같은 대댐이 이 시기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수리조합 및 수리조합연합회 외에 농지개발공영단이 가세하여 많은 관개용댐이 전국에 건설되었으나, 대부분 높이 20m 미만이고 댐형식 또한 대부분 흙댐이었다. 그러나 관개용댐에서 1922년 준공한 대아댐과 1928년 완공한 운암댐은 중력식 콘크리트댐이었다.
6·25동란이후 UNKRA, FAO 및 ICA 등 국제원조기관의 활발한 지원으로 전재복구, 동란으로 중단된 사업이 재착공 되거나 신규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관개용댐 분야에서 1950년대에 괄목할 만한 양적 팽창을 이룩하였으나, 수력발전용으로는 괴산댐 건설과 화천, 청평댐 등 기설댐의 복구 개수공사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세계적으로 근대적인 댐의 건설은 16세기 말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2개의 관개용 댐이 최초의 것이다. 당시의 댐은 정교하지 않고 돌을 쌓아 올리면서 그 사이에 모르타르를 집어넣어 굳힌 것이었다. 19세기 말부터 콘크리트가 댐의 축조재료로서 사용되었고 설계이론도 정비되어, 본격적인 중력댐이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전·홍수조절·운송 등을 위해 건설되었다. 그 뒤 콘크리트를 절약하기 위해 중력댐 속에 빈 공간을 둔 중공중력댐이 고안되었다. 미국에서는 중서부 개척시 교통조건이 나쁜 곳에 댐을 건설함에 있어 콘크리트를 절약할 수 있는 아치댐의 건설이 추진되었다. 한편 근대적인 필댐도 19세기 말 무렵부터 건설되었다. 겉 틀을 나무로 짜서 세우고 그 속에 암석을 채워 넣은 형식으로부터 시작하여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을 중심으로 개량되어 갔다.
댐건설의 흐름을 보면 20세기 전반에는 콘크리트댐이 득세한 반면 흙댐은 소규모댐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 이전에는 높이 20m 내외의 소규모댐은 대부분 흙댐으로 건설되었다.
그러나 1930년대 이래 토질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시공기술의 개발, 대형 건설장비의 출현, 수문통계학의 발달에 의한 안전한 홍수처리시설의 설계가 가능해짐에 따라 195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많은 필댐이 건설되었다. 캐나다의 Mica댐 및 러시아(구소련)의 Nurek 댐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건설하게 된 배경은 댐이 건설되기 전 우리나라의 3대 곡창지대 중 하나인 호남평야의 젖줄인 동진강이었지만 이 동진강은 평소 하천유량이 절대 부족하여 약간의 한발시에도 국가의 식량 생산에 커다란 차질을 빚어왔다. 따라서 동진강과 이웃해 있는 수원이 풍부한 섬진강 물을 유역 변경에 의하여 동진강에 공급하기 위하여 60백만㎥의 아치형 관개용댐으로 1925~1929년 운암제를 건설하였으며 지금의 다목적댐은 1940년 전력생산에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고 관개용수 공급능력을 개선하기 위하여 기존 운암제 하류 2.4km지점에 대규모댐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1965년 완공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다목적댐중 규모로는 단연 소앙강댐이 최대이다. 1960년도에 접어들면서 산업화가 급속이 이루어지면서 개발의 필요성이 고조되어 왔고, 서울을 포함한 한강하류부 지역의 용수수요 급증에 다라 개발의 타당성이 제고되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립과 함께 국토건설 종합계획이 수립되었다. 소양강댐은 서울, 인천, 수원 등 대도시와 평촌가지 포함된 수도권 지역에 공급하는 수원으로서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7~9월의 집중강우로 한강지역에 트고 작은 홍수가 매년 반복되어 인명, 재산피해를 입어 왔으며, 경제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소양강댐은 500백만㎥의 홍수를 저류하여 홍수로 인한 피해를 크게 경감시켜주고 있다.
지구상에는 총 13억8천6백만㎢의 물이 부존(賦存)한다. 이중 96.5%는 바닷물이고 담수는 3.5%에 불과하며 존재형태로 보면 빙하형태가 69.56%, 지하수 30.10%, 기타 하천 및 호소 0.34%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산업의 발달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되어 감에 따라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고 전 세계에 걸쳐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물부족이 현실화 되면서 수자원 확보에 각국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토해양부(前건설교통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물 부족이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70년대 급수차를 기다리던 과거의 기억이 다시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열대사막지대의 르완다나 케냐, 소말리아와 같은 나라들과 함께 물부족 국가로 분류된지 12년째이며, 2011년에 가면 한국의 물부족량이 18억톤에 이르러 세수할 물조차도 없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렇듯 수자원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 전체 강수량의 70% 이상이 여름철에 집중되어 있는 우리나라는 이 시기의 강수량을 잘 확보하여 미래에 발생할 물부족 문제에 대해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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