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다시피 우리 일상생활에서 화학물질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하루 일과를 반추해볼 때 화학물질이 전혀 없는 공간, 화학물질과 전혀 관련 없는 제품을 몇 번이나 만날 수 있을까?
접착제로 바른 벽지와 페인트칠 된 가구 등에 둘러싸여 자고 일어나 치약, 샴푸, 비누 등 화학제품으로 양치하고 샤워한 후 햄, 소시지 등 첨가제, 보존제 등의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식품을 먹고, 합성섬유 옷을 입고, 합성고무 신발을 신고 출근을 한다. 아침 1시간의 생활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다.
전 세계에서 약 10만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되며 매년 1만종의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적이 있거나 사용하고 있는 물질 수는 약 4만3천여종이며, 매년 400종이 새로이 제조되거나 수입된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물질들이 산업용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제품에 포함되거나, 때로는 물질 그 자체로 우리 주변에 함께 있다. 그러나 일반국민 뿐만 아니라 화학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근로자들도 대다수가 주변에서 사용되거나 배출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모르고 있다.
최근 어린이를 가장 괴롭히는 질환은 아토피이다. 지난 30년간 아토피 유병률은 2~3배 증가하였으며, 초등학생 중 30%가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다. 아토피는 이후 알레르기성 비염과 천식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알레르기성 비염환자 수는 2002년 302만명에서 2006년 495만명으로 64% 증가하였으며, 천식환자 수는 2002년과 2006년을 비교할 때 202만명에서 242만명으로 20% 증가하였다.
아토피,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은 대표적인 환경성 질환(환경오염으로 인한 질병)으로 불리고 있다. 이러한 환경성 질환이 급증한 것은 지난 2006년 대비 2002년의 화학물질 유통량이 44% 급증(약 2억5천만톤 → 약 3억6천만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화학산업이 성장 추세임을 감안하면, 환경성질환은 유통량 증가에 따라 계속 증가할 것이 우려된다.
국내의 화학물질 유통량이 급증하고 있는데 이 중 우리가 그 성질을 알고 있는 화학물질은 어느 정도일까?
환경부는 지난 1991년 2월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제정하여 그 이후 국내로 수입되거나 제조되는 새로운 물질(신규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수입자나 제조자(산업계)에게 제한적이지만 독성 확인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토록 하여(2006년까지 3개 항목, 2007년 6개 항목, 2009년 9개 항목) 그 내용을 확인하여 유독물 등으로 지정하여 관리하여 오고 있다.
하지만 1991년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물질(기존화학물질)에 대해서는 정부 예산으로만 유해성을 확인작업을 해오다 보니, 국내에 유통되는 화학물질 중 15%에 불과한 약 6천5백종에 대해서만 유해성 등 정보가 파악되었다.
왜 유럽이나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화학물질 관리제도를 강화하였을까?
유통되는 화학물질 대부분에 대해 성질을 모르고 사용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보다 화학산업 규모가 훨씬 큰 유럽이나 미국 등도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들기 이전에 유통된 물질의 성질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유럽은 1967년에 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법을 제정하였으며, 일본은 1973년, 미국은 1976년에 관련법을 제정하여 이후 수입·제조된 신규화학물질에 대해 관리하여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을 확인하여 이를 엄격하게 관리하여 오고 있다.
최근, EU(유럽연합)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제품 등에 사용되고 배출되어 결국 자국민 건강과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어 2007년 6월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정보를 파악하여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신(新)화학물질관리제도인 ‘REACH’를 도입, 시행하였다.
REACH는 화학물질의 양과 위해성에 따라 등록(Registration), 평가(Evaluation), 신고(Notification), 허가 및 사용제한(Authorization and Restriction)을 규정하는 제도이다.
REACH 제도 도입은 화학물질 관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으며, 환경이나 경제적 측면의 영향이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화학물질을 제조, 수입하는 모든 자들에게 독성, 용도 등의 정보를 등록하도록 하고 이를 평가하여 위해(危害)가 큰 화학물질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함으로써 화학물질로 인한 건강 및 환경 위해를 사전예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이다.
반면 산업계 입장에서 보면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등의 정보를 제출하지 않으면 EU권역에서 제조할 수 없으며, EU권역으로 수출할 수도 없게 되었다. 즉. “No Data, No Market”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처럼 화학물질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 않은 경우, 화학물질 정보 요구는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REACH와 같은 화학물질 관리 강화 추세는 EU만이 아니다. 2008.1~2009.1월까지 1년간 전 세계에서 총 580여개의 화학물질 관련 정책 및 규제가 발표되었다. 즉, 매달 44개 이상의 정책이나 규제가 강화되었다.
그동안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전세계적 규제 강화와 정책 확산이 화학물질 관리 분야에서 발생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화학물질 교역량이 많은 일본(2010), 중국(2009), 대만(2010) 등에서도 자국 화학물질제도를 강화하여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에 수출할 경우 화학물질 정보(유해성, 용도 등)를 제출하여야만 하는 부담이 늘어났다.
수출할 때는 물질 정보를 제출하여야만 하고, 수입되는 물질에 대해서는 정보 확인에 대한 제재가 없는 교역국과의 제도 격차는 무역 역차별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유해물질 미확인으로 국민들은 더욱 위험한 물질에 노출될 우려가 높아지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화학물질 수입량이 수출량 보다 많은 나라이므로 수입물질 관리에 더욱 역점을 두어야만 하는 국가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화학물질 관리를 개선하여야 할까?
국민들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시급하게 해결을 원하는 환경문제가 깨끗하고 안전한 물 공급이었으나, 약 5년 전 웰빙과 LOHAS 바람이 불면서 환경오염으로부터 국민건강 보호를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환경부 설문조사 결과, 2007.1).
즉, 앞에서 언급한 바와 환경으로 인한 환경성 질환 증가로 인해 국민들은 유해물질이 없는 안전한 제품, 안전한 생활환경을 만들어주길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의 출발은 EU 등 다른나라의 고민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유해성 등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암성 등 유해성이 큰 물질은 사용을 금지시키고, 비록 독성이 적은 물질이라도 어린이와 같이 민감한 계층이나 장기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에는 사용을 제한하여 국민 건강을 사전예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화학물질 관리체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EU에서 REACH 도입을 위해 논의가 진행되는 2005년부터 우리나라 화학물질 안전성평가를 위한 방안 등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여 온 결과, 2010년 말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안)을 마련하여 산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화평법」(안)을 간단히 소개하면 ‘연간 제조·수입되는 양이 0.5톤 이상인 신규화학물질 및 기존화학물질에 대하여 산업계에서 유해성 및 위해성 정보를 등록토록 하고 정부가 이를 평가하여 위해성에 따라 허가 또는 수입·제조·사용을 제한·금지함으로써 화학물질의 위해를 사전 예방하고자 하는 법률’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신규화학물질에 대해서는 0.1톤 이상인 경우 화학물질 정보를 제출하여야 하나 법 적용 대상을 기존화학물질까지 확대하면서 등록 기준량을 0.5톤으로 완화하였다. 국내 유통량 자료로 볼 때 0.5톤 이상 제조·수입되는 물질은 우리나라 전체 유통량의 80%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화평법」의 중요 요소로서 ‘평가대상물질 선정’과 ‘공동등록 및 중복시험금지’, ‘허가 및 제한·금지’, ‘정보전달’을 꼽을 수 있다. 먼저, ‘평가대상물질’은 ‘기존화학물질 중 인체 및 환경에의 위해가 우려되어 평가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물질’로서, 환경부장관이 유통량, 독성정보 등을 토대로 선정하여 고시하는 물질을 말한다.
EU REACH와 같이 모든 기존화학물질에 대해 화학물질정보를 등록토록 하는 것은 산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이미 확보한 자료 등을 분석하여 평가가 필요한 물질만을 선정할 계획이다.
이들에 대해서도 독성 및 유통량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분류하여 단계적으로 등록토록 하여 최장 8년까지 등록유예기간을 설정하고자 한다. 또한, 동일한 물질을 사용하는 업체들끼리 시험자료를 공동제출토록 하여 등록비용 절감은 물론, 자료 생산을 위한 중복시험을 방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등록 시행 전 약 6개월간의 예비등록기간을 설정하여 예비등록을 통해 자신과 동일한 물질을 등록하고자 하는 자들을 확인하고 이들과 등록에 필요한 시험자료 공유 또는 거래(시험자료 사용 승인), 자료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분담토록 유도한다.
정보 거래시 부정당 거래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험자료 소유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 사용 승인을 거부하거나 불필요한 항목까지 함께 구입토록 강요할 경우, 그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는 자가 향후 해당자료를 등록 목적으로 제출하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특히, 동물 보호를 위해 척추동물시험자료의 중복시험은 보다 강력하게 제재할 것이다.
‘허가 및 제한·금지제도’는 과학적 근거(위해성정보 등)에 의해 화학물질 노출 및 위해저감 대책을 수립하고자 고위해물질에 대한 용도별 사용을 허가하거나 제한(금지 또는 함량 제한)하기 위한 제도이다. 인체 및 환경에 대한 위해가 높다고 우려되나, 산업계에 불요불급한 물질로서 대체물질이 없거나 위해도가 확정되지 않은 물질인 경우 ‘허가대상 물질’로 지정하여 사전에 환경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수입·제조·사용하도록 관리한다.
반면, ‘제한·금지물질’로 지정될 경우 일부 또는 모든 용도로의 취급이 금지된다. 마지막으로, 화학물질 취급자들이 사용하는 물질의 독성이나 위해성을 파악하여 안전하게 취급하고, 허가된 용도로만 사용하고, 또는 제한·금지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화학물질 평가 결과를 반드시 하위사용자에게 전달토록 하는 정보전달제도를 규정하였다.
이에 의해 취급자의 건강보호는 물론 제품에 유해물질이 사용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예방적 화학물질 위해관리, 더 이상 미루면 안된다.
화평법 제정에 따른 가장 기대되는 효과는 신규화학물질 외에도 기존화학물질에 대해서도 유해·위해성 정보를 확보하여 안전성 검증을 함으로써 사전예방적인 화학물질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화학물질 생산·사용자들은 해당 화학물질의 정보 및 그에 따른 위해예방대책을 파악함으로써 생산·사용과정에서의 위해로부터 더욱 안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노출될 경우 위해를 미칠 수 있는 물질에 대해서는 사용 용도를 제한하므로 제품 내 유해물질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 화학물질 관리를 통하여 환경과 건강을 보호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화평법 시행을 통해 저독성·무독성 대체물질 개발, 친환경 제품 제조를 유도하는 제도적 환경이 조성됨으로써, 우리나라 산업계가 유해물질 퇴출, 위해 저감을 요구하는 국제적 화학물질관리 추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안전한 물질과 제품이 상품가치를 결정하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가 되리라 판단된다.
그러나 산업계 및 일부 부처에서 화평법 제정에 대해 취지에는 공감하나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야기하며, 이행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시기상조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화평법 제정을 얼마나 더 미루어야 할까?
우리나라 화학산업은 세계 7위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 10위권 국가 중 인도, 브라질 외에는 모두 화학물질관리 제도를 개선하여 엄격한 규제에 따라 안전성이 확인된 화학물질만 수출토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기업 부담만 강조하여 여전히 20년 전에 만들어진 제도를 고수해야 할 것인지, 아직도 건강피해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약방문식 화학물질 관리 방식을 유지해야 할지 중지를 모아야 할 시기이다.
환경부 이지윤 화학물질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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