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월분의 전기요금 15만 원을 납부하지 못해 촛불을 켜고 자다가 화재로 사망한 전남 고흥 할머니 사건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자칭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허술한 정부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에너지 빈곤층 대책과 전반적인 에너지 복지제도의 부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전의 생색내기… 220W로는 전기요 한 장도 못 켜
‘에너지빈곤층’은 일반적으로 전체 소득의 10% 이상을 광열비(전기·연료비)로 지출하는 가구로 정의된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한 에너지 빈곤 가구는 전체의 12.4%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빈곤층은 약 150만 가구로 추정되지만, 이 중 에너지 복지사업의 혜택을 받는 인구는 8.3%(10만 가구)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미약한 에너지 복지 지원과 한전의 허술한 대처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전은 그동안 주거용 고객이 전기요금을 3개월간 미납하면 전기 공급을 정지하지 않는 대신 220W로 사용을 제한해 왔다.
그러나 220W는 보통 전등 32W(1개), 21인치 TV 85W(1대), 150ℓ 냉장고 50W(1대), 선풍기 50W(1대) 등을 돌릴 수 있는 최소한의 전기량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다수 에너지 빈곤층의 경우 TV와 냉장고 1대만 사용해도 겨울철에 150W 가량의 전기가 소모되는 전기담요 한 장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한전은 사용한 만큼 전기요금을 부과하고, 6개월 이상 체납된 가구에는 ‘전류제한기(소전율제한기)’를 설치해 전력을 통제해왔다. 전류제한기가 이미 설치된 가정은 체납된 전기요금을 낼 때까지 전기 사용량이 제한되고 심한 경우 단전된다.
한편 한전은 작년 11월 28일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전기요금 미납가구에 대해서도 전력공급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며 “이번 동절기는 220W 전류제한을 ‘660W’로 3배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남 고흥 할머니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 후였다. 660W는 전등 하나에 200W 전기장판 2개까지 더 쓸 수 있는 용량이다.
한전에 따르면 “추위가 끝나는 4월부터 10월까지는 다시 기존처럼 220W가 제공된다. 우선 11월부터 3월까지 한시적으로 전류제한기를 부설하지 않고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현재 설치된 전류제한기를 모두 철거한 상태다. 한시적으로 전류제한기를 달지 않을 예정이지만 4월부터 체납가구가 있으면 다시 전류제한기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올해 정부와 협의를 통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제도에 대해 개선할 계획”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속전속결로 이뤄진 대처인 만큼 국민들의 눈을 의식했다고 보여지는 처사다. 또 한시적인 지원이라고 밝힌 만큼 추후에도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에너지는 복지보다 ‘기본권’에 가까워
그동안 지식경제부와 보건복지부는 “현행 복지제도가 수급자 중심으로 시행됨에 따라 에너지는 개별 복지(선택 복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보편복지로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이었다.
즉 개별적으로 에너지 복지기금을 지원할 만큼의 재원도 부족하며 선택적인 에너지 복지가 아닌 사회보장제와 같은 보편복지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송유나 정책연구실장(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겸임)은 “에너지는 복지가 아닌 기본권 문제”라고 설명한다.
송 실장은 “전기는 수돗물처럼 국민들이 기본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에너지다. 적어도 너무 춥고 더워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기본체계는 갖춰져야 한다”며 “통계상 에너지 빈곤층이 150만 가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에너지 빈곤의 수치는 일반적 빈곤의 수치보다 더 많다. 혹서기, 혹한기에 체감하는 빈곤층의 비율은 훨씬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정부차원에서 에너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책임 방기”라며 “에너지 빈곤 문제는 대부분 연중 혹서기 또는 혹한기에 국한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긴급하게 특수한 시기라도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한전 등 에너지 공기업이 전력에 대한 공공적인 전달체계가 있으면 전기를 지급하면 된다. 빈곤층에게 전기요금을 더 감면해주거나 3개월 정도는 일정의 무상지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겨울만 해도 참기 힘든 한파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지원 제도마저 실효성이 없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한전은 빈곤층에게 20%의 전기요금 감면율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빈곤 가구의 한 달 평균요금이 1~2만 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2,000원에서 최대 4,000원 정도다. 결국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데 정부는 20%나 지원한다고 떵떵거리고 있는 셈이다.
한전에 감시자 없어, 감독자인 정부도 ‘모르쇠’
송유나 실장은 “재정이나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라며 정부의 무책임함을 질책한다. 일례로 한전의 전력 기반기금은 1999년에 만들어져 모든 가구의 전기료의 3.7%를 의무적으로 부과해왔다. 이 기금은 일 년에 평균 2조 원 가까이로 추측된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기금을 관리하는 한전 자체에 감시자가 없기 때문에 공익적인 부분에 쓰인다는 이 막대한 기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모를 뿐 아니라 매년 2,000억 원 가까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빈곤층을 150만 가구로 계산 시 한 달에 5만 원씩 쓴다고 해도 3개월3개월로 계산하면 한 가정 당 15만 원이다. 즉 빈곤층 150만 가구에 이를 무상으로 지급해도 2,000억 원이 안 된다.
송 실장은 “정부가 의지가 있으면 현 조건에서도 한국전력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 및 관련 기업이 사회적 역할을 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엄청난 수익을 얻은 전국의 정유사들이 석유나 등유를 쓰는 전국의 몇 십만 가구에 혹한기에만 지원해도 타격은 거의 없다.
정부에서 제대로 규제만 해도 정유사들이 일정한 사회적 환원을 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낸다”며, 복지 정책을 만들고 나서 에너지 빈곤층을 수렴하겠다고 하는 것은 당장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빈곤층, 기본적인 지원 제도도 몰라 지자체가 발 벗고 나서야
정부의 에너지 복지 대책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효성 있는 긴급지원 대책 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긴급복지지원제도의 경우 구청에 신청하면 한 달에 9만 원을 받을 수 있으며 3개월까지 추가 지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빈곤층의 대부분이 이 제도의 유무조차 모르며 기초수급자에 해당이 안 돼 선정되기조차 힘들다. 설사 안다 하더라도 빈민층 대부분이 일 때문에 여유 시간이 없을 뿐더러 신청절차도 복잡해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다.
송 실장은 “제도가 있어도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며 “가장 쉽게 에너지 빈곤층을 돕는 것은 결국 한전 직원 및 관할 구청 등의 지자체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이 빈곤층가정을 정기적으로 직접 방문해 기초수급자를 발굴 및 선정하고 혜택을 주며 제도에 대한 교육도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아직까지 지자체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이 너무 적어 빈곤층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송 실장은 “한전하고 지자체를 연결하면 쉬워진다. 인력을 많이 보유한 한전이 긴급한 경우에만 지원해도 도움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촛불 화재사고를 겪은 가구만 해도 전류제한기 작동법만 알았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존재 자체도 몰라 20여 일이나 전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실제 경찰 조사에 의하면 한전으로부터 전류제한기 사용법을 안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전은 전류제한기를 설치하면 관할 지자체에 통지하고 지자체에서 전류제한기 교육을 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아직도 사용법을 잘 모르는 빈곤층 및 노인들이 많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교육 및 지원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 공급제한 가구에 전류제한기에 대한 교육을 더 확대하고 정부와 협의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지원제도를 개선해나갈 계획”이라며 앞으로 빈곤층 지원에 더 힘쓰겠다고 전했다.
‘기후 변화’ 에너지 빈곤을 해결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
사계절이 뚜렷했던 한반도는 5개월에 가까운 여름과 겨울을 맞고 있다. 비단 한반도의 문제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국민 83명 동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가히 ‘살인’이라 불릴만한 혹한과 혹서의 반복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저기서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대체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특히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가격은 내려가기 힘들 뿐만아니라 대체에너지를 구축하는 투자비라는 난관이 남아 있다.
투자비는 결국 전기요금 등 사회적 비용으로 국민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에너지 가격은 더 올라가고 빈곤 문제는 더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송 실장은 “에너지 고갈과 극심한 기후변화에 따른 투자를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부분이라면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한다. 대체에너지를 만들기 전에 먼저 에너지 빈곤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 놓고 그 틀에서 바뀌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에너지 빈곤층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선행되야 함을 강조했다.
올해 우리는 차기 정부를 맞이하게 된다. 에너지 빈곤이 화두인 만큼 차기정부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그동안 내세운 공약 중 복지의 전체적인 맥락은 단연 경제 민주화다.
공약에 의하면 시기는 미정이지만 누진제를 완화하고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서 나오는 추가요금(약 7조 원 예상)으로 신재생에너지 투자 및 빈곤층을 돕는 데 쓰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고 이런 공약이 현실화되길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혹한기에만 반짝하는 에너지 복지론을 펼칠 게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해결을 위한 공론화를 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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