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광택이 나는 갑주, 커다랗고 날카로운 큰턱, 예리한 발톱, 강한 힘, 큼직한 크기의 용맹한 자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때 길러 봤거나 기르고 있는, 그 유명한 ‘사슴벌레’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이다. 사슴벌레는 힘이 세고 강인한 곤충이긴 하지만 나무의 수액을 먹고 사는 초식 곤충이고 성격도 크게 난폭하지 않아서 이름인 ‘사슴’과도 어울리는 면이 있다. 그러나 사슴벌레가 의외로 온순하고 초식을 하는 곤충이라고 해도 그 인기가 식을 리 없을 만큼 사슴벌레의 외모는 독특하다.
날카로운 큰턱, 용맹한 자태의 사슴벌레는 애완 곤충으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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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넓적사슴벌레. |
재미있는 것은 이런 외모를 사슴벌레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자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잠자리에 매료되어 잠자리가 많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는데 그 중 하나였던 인천 무의도의 비포장 도로 위에서 사슴벌레를 닮은 곤충을 채집했던 적이 있다. 도로에 있으면 사고를 당할 우려가 큰데다 굶주렸을 것이라 생각해 먹이를 주기로 했다.
당시에는 그 곤충을 사슴벌레 종류로 보고 수액 젤리와 함께 잠자리 채집통에 넣어둔 적이 있다. 그런데 잠시 뒤 통을 확인해 보니, 같이 넣어 둔 잠자리 표본이 반쯤 사라진 것이 아닌가.
주로 초식을 하는 사슴벌레가 맛있는 수액 젤리를 마다하고 곤충을 잡아먹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 조사해보니 그것은 사슴벌레가 아니라 ‘큰조롱박먼지벌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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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의도에서 만난 큰조롱박먼지벌레. 당시에는 사슴벌레인 줄 알았다. <2009년. 무의도> |
먼지벌레는 이름만 보면 보잘것없고 먼지만큼이나 작은 벌레일 것 같지만 의외로 무시무시하고 한 가닥 하는 녀석들이 많다.
나름 방송출연도 많이 한 폭발전문가 폭탄먼지벌레도 먼지벌레의 일종이고 오늘 소개할 큰조롱박먼지벌레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큰조롱박먼지벌레Scarites sulcatus는 한국, 중국, 일본에 분포하는, 조롱박먼지벌레의 일종이다.
조롱박먼지벌레라는 이름은 가슴과 배의 연결 부위가 유달리 얇아 조롱박 같은 체형을 지니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조롱박먼지벌레들은 강가나 해안가의 사구(모래 언덕)에 주로 서식하며, 낮에는 굴을 파고 은신했다가 밤이 되면 돌아다니며 먹이를 사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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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탄’으로 유명한 남방폭탄먼지벌레. 먼지벌레 일족은 매우 다채로운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2012년. 제주도> |
큰조롱박먼지벌레는 한국에 서식하는 5종의 조롱박먼지벌레 중 가장 큰 종으로, 2㎝ 전후인 다른 조롱박먼지벌레보다 두 배 이상 큰 4㎝까지 자라니 도저히 먼지라고 부를 수 없는 크기를 자랑한다.
덩치 뿐 아니라 힘이 아주 세고 성질도 사나워서 자신보다 몇 배 큰 곤충까지 거침없이 잡아먹는 사구 곤충 생태계의 난폭자이다.
이미 유충 시절부터 다른 곤충을 잡아먹으며 생활하니 비슷하게 생겼다지만 유충 때도 주로 균사나 발효체를 먹고 자라는 사슴벌레와는 외모만 닮았을 뿐 정말 떡잎부터 다른 셈이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거침없는 성격답게 식성이 너그러워 여차하면 동물의 시체를 먹기도 한다.
이렇듯 강하고 사나운 곤충이라 인기 만점일 것 같지만, 식성과 서식 환경 이외의 생태에 대해서는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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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록한 허리와 날카로운 큰턱이 돋보인다. 이 큰턱으로 다른 곤충들을 사냥해 잡아먹는다.<2017년 홍천강 개체> |
우선 큰조롱박먼지벌레를 만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다. 강단 있어 보이는 큰조롱박먼지벌레지만 인간의 간섭에 매우 취약해서 인적이 많아지면 곧바로 사라질 뿐 아니라 환경오염에도 약하기 때문에 해안가의 지표종으로 분류된다.
개체수가 적지만 워낙 인지도가 낮다 보니 보호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아서 더욱 환경오염에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곤충사전에도 큰조롱박먼지벌레가 나와 있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으며 사슴벌레와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오해받는 빈도도 높다.
기자 역시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났을 뿐 일부러 보려 해도 쉽지 않은 종이어서 잊고 있다고 얼마 전 홍천강 밤 탐어에서 오랜만에 큰조롱박먼지벌레를 다시 보게 되었다.
특이하게 이번에도 도로위에서 발견하였지만 예전과 달리 보자마자 사슴벌레가 아닌 큰조롱박먼지벌레임을 알 수 있었고 그야말로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이번에는 곤충 젤리가 아닌 제대로 된 육식 정찬을 차려주었다.
만일 여러분들이 숲속이 아닌 해변이나 강가의 모래밭에서 또는 기자처럼 도로의 한복판에서 검은 사슴벌레같이 생긴 곤충을 발견한다면, 그 곤충은 온순한 초식의 사슴이 아니라 밤 해변의 난폭자 큰조롱박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다부진 몸과 강인한 턱을 가지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곤충들이 그렇듯 사람을 만나면 죽은 척을 할 것이다. 그럴 때는 이 개성 넘치는 곤충을 매우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그 이름에도 나와 있듯이 튼튼한 몸에 걸맞지 않은 조롱박 같이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터프가이의 가는 허리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모래밭이나 흙 위에 놓아주면 잠시 후 여러분들에게 특급 땅파기 시범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
큰조롱박먼지벌레는 사슴벌레 못지않게 매력 넘치는 종이지만 점점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곤충이다.
나무가 있으면 나무 구석구석을 살피고 강이 있으면 들어가 돌을 들추고 길을 걸을 때도 땅바닥을 뚫어져라 보고 다니는 기자조차도 몇 년 만에 처음 만났을 만큼 귀한 친구이다. 그런데 이 친구, 정말 매력 있고 근사하다. 여러분들께 꼭 소개하고 싶을 만큼 그리고 내 후배들, 우리의 후손들이 계속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랄만큼 말이다.
그날 밤 이 친구는 홍천강의 깜깜한 도로보다 더 까만색이었지만 기자의 눈에는 흑진주보다 빛나는 보석 같았고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난 듯 설렘을 주었다. 큰조롱박먼지벌레가 ‘귀해서 반가운’ 친구가 아니라 ‘흔해서 정다운’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오늘 여러분들께도 소개드리고자 한다.
“혹시 만나게 되시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좋은 인연 만드세요. 꽤 괜찮은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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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간 무섭게 생겼지만, 괜찮은 친구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
[그린기자단 설성검, 과천중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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