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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딧불이(수원 칠보산, 2014년6월12일) |
신형원의 ‘개똥벌레’라는 노래를 통해서 모두들 개똥벌레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개똥벌레는 흔히 ‘반딧불이’라고도 불린다. 옛날에는 개똥만큼 흔하게 보이던 벌레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개똥은 보통 천한 것에 붙여지는 이름인데다가 반딧불이를 이용하여 공부를 했다는 ‘형설지공‘이라는 한자성어까지 있는 것을 보면 반딧불이는 귀하게 대접받았던 곤충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쉽게 볼 수 있는 곤충이 아니다. 나에게 반딧불이는 책이나 TV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곤충이었다. 반딧불이는 깨끗한 환경 속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오염이 심해지고 도시지역이 확장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생명체이다. 나는 그 반딧불이를 상상 속의 생명인 줄로만 알았다.
반딧불이는 유충 시절에는 물달팽이나 우렁이를 먹고 살며 성충이 되어서는 이슬만 먹고 산다. 성충이 되면 초록 불빛을 내는데 수컷과 암컷 모두 불빛을 낸다. 수컷이 더 강력한 불빛을 내는데 배의 맨 끝마디에서 루시페린이라는 물질이 루시페라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산소와의 반응을 통해 발광한다.
성충이 되어서는 길어도 2주 정도 살게 되는데 그 동안에 수컷들은 짝을 찾기 위해 불빛을 열심히 낸다. 짝을 찾고 나면 짝짓기를 하고 생을 마친다. 운이 나쁘다면 짝을 찾지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 구애를 하는 도중 거미줄에 걸리는 친구들도 상당히 있다. 수컷 반딧불이는 거미줄에 걸려도 그들은 꿋꿋이 빛을 낸다. 교활한 거미는 이것을 이용하여 암컷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수컷을 바로 잡아먹지 않는다. 반딧불이는 힘이 세지도 날렵하지도 않은, 주변 환경 변화에 매우 민감한 아주 여린 곤충이다. 그들이 살던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면 반딧불이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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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메시지를 나타내는 반딧불이 불빛(수원 칠보산, 2016년6월25일) |
내가 반딧불이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것도 우리 동네에서 말이다. 우리 동네는 안산시와 화성시를 접하고 있는 수원의 서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많은 아파드 단지들이 서있고 현재 아파트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는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산과 산에서 흐르는 깨끗한 물로 농사를 짓는 논들이 펼쳐져있는,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반딧불이가 발견되는 곳은 내가 다녔던 중학교 뒤쪽인 오룡골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예전부터  |
| △거미줄에 걸린 반딧불이(수원 칠보산, 2016년6월25일) |
이 곳에는 반딧불이가 살았다고 한다. 반딧불이 종류에는 흔히 늦반딧불이와 애반딧불이가 있는데 여기에 있는 반딧불이는 애반딧불이였다. 우리 동네에는 칠보산에서 깨끗한 물이 흐르고 논이 많아서 반딧불이가 개체수를 조금씩이나마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매년 애반딧불이가 나올 즈음인, 6월 중순에서 7월 초에 찾아가보면 보이는 불빛의 수가 해마다 줄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 때는 아파트 불빛만큼 많았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아파트 불빛에 가려서 보기 힘든 존재가 되었다. 그 많던 반딧불이들은 어디 갔을까?
반딧불이 개체수가 감소한 제일 큰 원인으로는 도시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감소하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또한, 우리 삶에서 나오는 오염물질과 시멘트 수로 등 농사방법의 변화 등이 반딧불이들의 작은 불빛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도 수년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고등학교를 입학한 뒤에도 반딧불이를 보러 가보았지만 예전에 비해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렸을 때 반딧불이를 보고 설레었던 마음의 불빛 또한 잃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논들이 없어지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면서, 지역 공동체들의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딧불이 같은 여린 생명들이 살 서식지를 잃고 있다. 반딧불이는 그 지역의 청정함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반딧불이의 개체수가 줄고 있다는 것은 우리 환경이 청정함을 잃어가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작은 생명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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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불빛 속에서 힘겹게 빛을 내는 반딧불이(수원 칠보산, 2014년7월4일) |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반딧불이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지금 내 주변 친구들 중에서도 실제 반딧불이를 본 친구를 찾기 힘들다. 아마 대한민국의 학생들 중에서 반딧불이의 반짝이는 불빛을 직접 본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지금도 조그만 반딧불이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디선가 작은 희망의 불빛을 힘겹게 내고 있을 것이다. 그 불빛의 의미는 사랑이다. 이러한 작은 사랑들이 많아질수록 자연은 더욱 자연다워진다.
<그린기자단 정누리/ 익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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