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 시시닷컴> 오늘은 여러 장

글. 박미산 시인
김한결 기자 | eco@ecomedia.co.kr | 입력 2021-06-02 17: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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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김석종 작가

 

진실 혹은 거짓

- 서형국

남자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시들지 않은 나무

협상을 합시다

내 수중엔 이틀을 버틸 수 있는 술값이 있고 당신은 나와 흥정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나는 오래 살고 싶고 명예를 갖고 싶으며 후손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소 단,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빈틈없는 제안이었다

날이 밝아 탁자엔 퇴고를 마친 원고 뭉치 위로 한 뼘이나 길어진 나무의 그림자가 꼭 두 잔이 모자랐던 술병을 끌어안고 연리지로 뻗어있었다

세월은 흘렀고
남자는 헌책방에서 간간이 펼쳐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완벽한 거래였다


『시골시인-K』, 걷는사람, 2021

시인은 본인의 시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독자가 있으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무슨 일이든 한다.
그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와 협상한다.
술을 좋아하는 시인에겐 뮤즈를 불러오는 술이 중요하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술과 원고를 맞바꾼 남자는
오래 살고 싶고 명예를 갖고 싶으며 후손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단,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남자.
그는 밤을 새워가며 시를 쓴다.
나무는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 모를 남자의 소원을 들어준다.
나무는 제 몸을 바쳐 종이를 만들고
그의 시를 몸에 새긴다.
제안하고 협상을 한 남자와 나무는 과연 완벽한 거래였을까?

세월은 흐르고 남자의 시는 후손들에게 그의 시가 기억되어
헌책방에서 간간이 펼쳐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무가 그림자를 늘여 그의 시를 끌어안고 연리지로 뻗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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