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박병상 | eco@ecomedia.co.kr | 입력 2005-01-10 11: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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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서관에서 과학자를 만나다’라는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도서관에서 과학기술을 만난다고? 아무래도 이질적으로 들린다. 도서관은 인문사회 영역으로 느끼고 과학기술 영역은 아무래도 실험실이 어울려 보였는데, 좀 특이하게 느낀다.
김대중 정권 때, 잠시 과학기술부장관 자리를 지켰던 김영환 전 국회의원은 정치인답게 장관 재직 초기부터 ‘북 퍼스트’ 운동을 인기용으로 전개하며 국민들이 과학관련 책을 읽도록 운동을 정책적으로 추진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그 일환인가? 다소 알쏭달쏭한 가운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 과학기술의 속내를 들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었다. 과학기술은 과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야겠다.
과학기술! 소득 ‘2만불 시대’를 앞두고 과학기술을 진흥시키는 것은 국민적 과제라고 현 정권에서 틈나는 대로 부르짖는다. 분배에 대한 목소리를 자제하는 가운데, 국민소득 2만불이 왜 그토록 중요하고 시급한 것인지 시민사회에 충분한 검토와 합의도 생략한 채, 과학기술의 진흥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자는 데 공감을 시민들에게 강요한다. 그러기 위해 머리 좋은 학생들이 이공계를 많이 지원해주어야 할 텐데, 과외다 학원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공부와 뒷바라지에 진절머리가 나는 영악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현실적 돈벌이가 신통한 의사나 약사 아닌 이공계를 외면하고 만다. 현 정부는 그 점을 고민하는 듯한데, 시민들이 과학기술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와 같은 신조어들이 자신과 무관해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똑똑한 이공계 학생들이 과학기술을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돈벌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인데.
과학기술은 우리를 부자로 안내할까. 과학자는 그 선구자일까. 그럴지 모른다. 사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이끌어주며 수많은 직업을 창출해왔다. 과거나 현재에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순기능만 담당해왔을까. 수많은 질병과 환경오염을 불렀고, 대규모 개발은 기상이변을 초래하게 했고, 과학기술이 거대할수록 개개인을 소외하지 않았던가. 특히 의학과 정보통신에서 보듯, 자본에서 개발하는 과학기술은 지불능력이 모자라는 개인을 철저히 외면하지 않던가.
과학기술이 첨단으로 갈수록 미처 따라갈 수 없는 노인층을 위한 배려는 상대적으로 미약하지 않았던가. 여성보다 남성, 제3세계보다 서방의 부자나라에 맞게 추진되는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해 생태계의 오랜 질서를 교란하고, 그로 인한 부메랑이 최근 들어 더욱 거세지지 않던가. 그런데 과학기술은 어렵다. 복잡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흰 가운 입은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다. 드라마에 비친 가운 입은 과학자들은 알 수 없는 실험도구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지고, 영어로 된 두툼한 책을 펼쳐놓고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데, 보통 사람들과 달라도 한참 다른 것 같다. 한 마디로 그들은 똑똑하고, 과학기술은 그처럼 똑똑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고착하고 만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복잡하기만 할까. 쉽게 풀어 설명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일까. 어려우므로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시민들은 그저 주어지는 떡이나 먹으며 소득 2만불 시대만 막연히 기다리면 될까.
최근의 과학기술은 단순한 호기심 영역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이 주도하는 까닭에 이익과 패권을 노린다. 과학기술은 그렇게 거대화되었고, 과학자들은 자신들에게 거대한 액수의 연구비를 지급하는 자본과 권력의 편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최종 소비자는 시민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과학기술을 모른다면 어떻게 될까. 돈벌이, 또는 권력 쟁탈의 도구와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래서 시민들이 과학기술을 알아야 한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게만 느끼는 과학기술에 접근해야 소외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려운 용어가 난무하고 정교한 기계장비로 어지러운 과학기술을 감히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자이다.
북 퍼스트 운동은 복잡하고 어려울 것만 같았던 과학기술에 관한 책을 쉽게 펼쳐내게 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과학기술을 쉬운 용어로 풀어쓰는 출판사가 등장했고 과학기술의 정책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했다.
이른바 ‘시민을 위한 과학기술’이다. 투명하지 않은 과학기술이 빚은 사고는 과학기술은 거대할수록 그 피해도 거대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체르노빌핵발전소 폭발이겠지만, 의약품 피해에서 아토피 증가와 같이 사례는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친다. 또한 고질적이다. 그런 피해로부터 능동적으로 피하려면 시민들도 과학기술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우리는 주권자이므로, 과학기술 관련 담당자들에게 현재 진행하는 과학기술이 무엇인지, 누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왜 추진하려는지, 쉬운 용어로 밝히고, 그에 관련한 시민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존중하라고, 최종 소비자이자 납세자인 시민들은 과학기술자와 그 정책 결정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책읽는 시민들의 자세는 역시 진지했다. 거의 맹목적이듯, 과학기술의 눈부신 가능성을 일방적으로 홍보하기보다, 참여로 안전하게 여는 접근방식을 이야기하자, 듣는 이들에게 과학기술이 새롭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었다.
과학기술은 큰 도시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알아서 해주는 것으로 이해했던 작은 도시의 시민들도 참여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 사회에서 논란되는 과학기술의 문제를 놓고 논의할 수 있다면 시민들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과학기술에서 더는 소외되지 않겠다 싶다.
도서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관련 과학기술 서적을 열린 과학자와 함께 선정하고, 그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과학기술을 이해하고 책도 읽는 분위기가 더불어 성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를 위한 후속 프로그램을 ‘도서관에서 과학자를 만나다’ 기획과 과정과 평가에 참여한 시민, 과학자, 도서관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고민해주었으면 좋겠다.
과학기술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문제, 우리 후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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