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청 최초계획은 환경보전장기종합계획
제1단계 한강유역환경보전종합계획 수립
’80년 1월 15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중앙환경행정 전담기구로서 환경청이 발족되고 그 업무의 체계화와 효율화, 그리고 장기전망에 기초한 대책 추진을 위하여 처음으로 마련한 계획은 환경보전장기종합계획(1985~2001)의 수립이다.
그리고 이 장기종합계획은 한강유역권, 낙동강유역권, 영산강유역권(제주도 포함)으로 나누어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종합하여 전국의 환경보전장기종합계획을 완성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왜냐하면 장기종합계획을 수립함에 있어서는 그에 필요한 자료가 있어야 함은 물론 부족한 부분은 실사 등을 거쳐서 보완해야 할 텐데, 그 당시 우리나라 사정은 다른 행정 분야에 비해 환경부분의 자료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가 60년대 이후 계속 경제성장 일변도였으며 환경대책은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으로 치부하여 경원하거나 무시한데서 연유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제1단계로서 한강유역권을 정한 이유는 지역적 중요성, 자료 확보의 상대적 용이성, 그리고 전문인력 확보의 상대적 편의성 때문이었다. 서술한 바를 골자로 한 내부문서를 확정하고 환경청은 곧 바로 약 27,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한강유역환경보전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한강유역환경보전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 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준비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준비계획은 환경청 발족의 초기에 추진되는 관계로 일과 중에는 주로 어수선한 내부업무 정착에 전념하고, 일과 후에야 비로소 과거부터 환경행정이나 공해 행정을 담당해온 중견 이상의 공무원이 참여하여 구체화해 나갔다.
이 계획은 재원확보단계와 한강유역환경보전종합계획의 수립단계, 향후대책인 낙동강, 영산강권, 그리고 종합계획 확정단계로 구분되지만 주안점은 한강유역에 있었고, 그 핵심은 소요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와 1단계 지역의 계획을 추진할 전문 인력의 동원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었다.
보사부 전입직원 저녁 걸러 가며 토론과 문서화
행정부 분위기 국보위 감독하에 살벌하고 어수선
주로 보건사회부 환경관리실로부터 전입한 직원이 주축이 된 준비계획팀(지금 생각하면 팀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합동작업반이나 마찬가지임)은 저녁을 걸러 가면서 토론과 문서화를 진행하였다. 또한 당시의 환경청 형편은 약 20개 부처로부터 전입된 공무원이 각 관장업무의 정형화에 주력해야 할 입장이었고 행정부 전체의 분위기는 국보위의 막강한 감독 하에 공무원의 청렴도 평가, 감독관의 수시파견, 공무원 숙정으로 살벌하면서도 어수선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업반(준비계획팀)은 밤늦게까지 수고했지만 막상 미니 차트를 만들기까지는 요원한데 청장의 관심은 커서 “왜 일이 이렇게 더디냐?”고 여러 번 개인적으로 걱정을 듣기도 했지만 작업반 전체에는 4월초에 딱 한 번 꾸중을 한 참을성 있는 박승규 초대 환경청장이었다. 2월 중순부터 시작한 준비계획 작성은 4월 중순에야 마무리 되었으며, Mini-chart에 의한 결재를 받고서부터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여기에서는 그 중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첫째는 계획 수립을 위한 준비계획팀의 노력이다. 사실, 계획 준비팀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환경 분야 장기게획을 구상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생각도 구구각각이고 그 구구각각의 생각은 주로 각자가 접해본 외국의 유사계획이 작용하여 형성된 것인데 그 유사계획은 장기계획(국지적이지만) 자체이고 장기계획을 위한 준비계획은 아니다. 준비계획은 거의 발간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준비계획팀은 잘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준비계획을 작성하기 위해서 그 격론 가운데에서도 분위기를 깨트리지 않고자 노력했다.
과거의 오염방지 실무행정, 마약관리실무행정의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곁들여서 분위기도 살리고 준비계획 수립에도 유익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방흔 국장, 싸늘한 밤 난방도 되지 않는 방 안에서 작업하는 직원들에게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면서 밤참을 제공한 이흥주 과장 등등 정말 지금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눈물겨운 추억이다.
다음으로 한강유역환경보전종합계획 수립의 재원마련에 관련된 것이다. 준비계획은 한강권 계획을 위해서는 약 200만 달러, 전체로서는 약 400만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였으나 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이러한 예산은 없는 상태였고, 정부도 이를 위한 예산 편성에 냉담했다. 우리 청으로서는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실무적으로 예산 당국자와 접촉한 결과는 환경청이 재원확보 방안을 제시해오면 검토해보겠단다.
박승규 청장, 박대통령 마지막 민정수석
이한빈 장관에 전대차관작업 동의 받아
드디어 청장이 나섰다. 청장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박승규 환경청장은 박대통령의 마지막 민정수석비서관이었으며, 대통령의 서거로 인하여 이제 막 설립된 환경청의 책임자가 된, 어찌 보면 불운하기도 하고 청장직함이 별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분이겠으나 그 분의 철학대로 열정으로 크게 생각하는 분이었다.
청장은 겨우 차관급이지만 그의 전력은 그의 정부 내 위상을 달리하는 듯 보였다. 경제기획원장관 비서실을 통하여 프로토콜에 맞추어 면회 신청을 청장이 직접 드리자, 학자이시고 공직이 많은 경험이 있으신 부총리 겸 장관인 이한빈 장관은 즉시 시간을 주셨다. 나는 청장을 모시고 5분도 되지 않아서 부총리를 뵙게 되었다. 청장은 계획배경을 말씀드리고 곧이어 미니차트로 설명하고자 했으나 부총리는 국장인 나로 하여금 설명하라고 분부하여서 곧 설명에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청장은 굳이 당신께서 설명하신다.
결론은 간단명료, 적극 지원할 테니 차관을 위한 접촉을 하라는 전대차관작업 동의를 받았다. 보사부 법무관으로서 공해 관련법안 때문에 인생의 비애를 짓씹어야 햇던 그 지난일과 비교할 때 이 부총리는 얼마나 환경의 중요성을 이해하신 분인지... 금년도 그분의 영전에 조의를 드릴 때 그에 대한 존경의 염이 새삼스러웠다.
다시 돌아가서, 부총리의 동의를 얻어 청장은 지체없이 아시아개발은행(ADB) 본부가 있는 마닐라로 향했다. 이 때 나는 청장을 수행하게 되었다. ADB에서는 청장을 융숭히 예우하였는바, 이는 대한민국 차관급인 청장에의 예우가 아니라 일국 대통령의 핵심참모(민정수석)에 대한 예우라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으며, 불과 하루 동안의 접촉에서 결과 된 차관 승낙 방침 결정이라는 파격적인 조치에서도 이런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실무접촉을 위하여 준비해간 적잖은 서류는 우리로서 성의껏 작성한 것이었으나 이러한 분위기와 당시의 ADB 이사로 봉직했던 계봉혁 이사의 협조로 별 문제없이 실무적으로 이해되었다. 이 때 본인이 느꼈던 점 중의 하나는 자료준비의 철저와 미흡부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첩경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개봉혁 이사님의 신속 친절한 대처와 협조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ADB차관 결정, 환경보전기본계획 기본지침 활용
당시 용역계획 현장 기술습득 문호 최대한 개방
어떻든 ADB차관은 410만불로 결정되었고, 이것을 토대로 사업은 ’81년 12월 30일 환경청이 현대엔지니어링(주) 및 효성건설(주)와 제휴(associate)한 미국의 Engineering Science사와 한강유역환경보전종합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계획의 추진단계가 시행되었고 이것이 결국은 5년에 걸친 용역 끝에 장기보전 계획으로 나타나 지금도 환경보전기본계획의 기본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때의 용역계획에는 몇 가지 남다른 착안점을 가지고 추진케 되었다. 우선 응찰을 하고자 하는 경우, 차관자금이 주된 재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 환경인력의 기술능력을 향상시키는 계기로 활용하기 위하여 외국 환경전문업체는 반드시 국내 환경전문업체와 제휴하도록 하여 같은 팀, 같은 작업장을 갖도록 하므로써 현장에서의 기술습득의 문호를 최대한으로 개방하도록 하는 한편, 외국 전문가의 정기적인 제휴업체 인력에 대한 OJT, 세미나를 갖도록 하고 해외 본사에 파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하여 Two Envelope System을 적용, 먼저 기술평가를 객관적으로 점수화하여 우수 응찰자와 차순위자를 선정한 후, 차례로 용역가액을 Nego하도록 한 것 등이다. 기술평가 및 용역가액 Nego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 사업에 대한 확고한 역사의식의 뒷받침으로 말미암아 이 사업은 성공적으로 시작, 진행될 수 있었다.
박준익 당시 청장의 “이 사업에 사가 끼이면 만고역적이 된다”는 말씀과 Engineering Science사 측과 계약체결 후 우연히 알게 된 성과수준(계약 상대방의 내정금액 등)을 가지고 실무자들과 기뻐했던 그 기억을 평생 잊을 수 없다.
’84년 초에 이 계약에 대하여 모 응찰자의 투서로 검찰이 철저한 조사를 실시한 바 있어, 이에 대한 경험만 하더라도 할 이야기가 많으나 덮어두기로 하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았으며, 당시 수사관의 격려와 칭찬과 더불어 “이 사건수사를 위하여 주변 조사를 하였더니 건질게 별로 없겠다고 예측한 것이 맞는군요.”하던 말이 불현듯 생각난다.
김형철 / 現 아주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 前 환경처 차관, 당시 계획조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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