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3일 성남시 분당에 소재한 한국디자인센터에서 성남시가 주최하고 성남산업진흥재단이 주관하는 ’04 성남 중소기업 우수상품 박람회가 개최된 바 있다. 이 자리에는 여러 기업들이 참가한 가운데 20여 년간 상·하수도 분야의 기술을 축적해온 T업체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 행사에서 성남시장은 분당구 S모 구청장등 두 사람을 대동하고 T업체를 방문, ‘실용화가 가능한 제품으로 곧바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업체의 브리핑을 듣고 S모 구청장 등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행사를 주관한 성남산업진흥재단이사장 역시 행사장의 회의실에 우수상품업자와 실질적으로 제품을 구매할 공무원들을 모아 대화의 장을 마련해 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모 하수관련 공무원은 ‘배관의 준설 내지 보수업자에게 시키면 됐지 뭐가 필요 하냐’며 제품구매가 전혀 필요 없다는 식의 노골적인 언행이 나오자, 이에 T업체 사장은 ‘준설 보수공사 시 재료를 제대로 사용했는지, 배관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주인이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 아니냐’며 맞받아 쳤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의 적당주의 의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T업체 사장은 ‘정작 환자를 돌보아야할 사람은 전문지식을 갖춘 의사인데 내시경을 만들어준 장비업체가 의사의 역할을 대신하라는 꼴’이라고 말했다.
T업체의 사장은 20여년이 넘게 상하수도분야에서 일해왔지만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하고 있는 자신의 사업장에 환경부나 관련공무원은 차치하고, 성남시나 분당구에서라도 공무원이 다녀가면 이를 기념으로 프랭카드라도 내걸겠다며 무관심한 정책에 할말이 없을 지경이라고 개탄했다.
4개 부처 기술사 1개 회사 3분의 1에 미달
상하수도 정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정책전반이 매끄럽게 잘 굴러가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주된 요인은 우선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본지는 지난해 5월(제197호) 환경·수도산업에 고급두뇌가 부족하다는 기획특집기사를 다룬 바 있어 이미 그 실상은 잘 알려져 있다. 환경부를 비롯하여 건교부, 산자부, 과기부 4개 부처의 공무원 총 수는 6,730명이다. 이 가운데 기술사는 고작 40명으로 전체의 0.6% 수준이다. 그나마 기술사는 환경관리공단이 전체의 5.65%, 수자원공사가 3.3%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개 엔지니어링 회사의 기술사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수준이다.
이처럼 전문가가 없으니 경쟁력이 길러질리 만무하다. 이로 인해 현실성이 없는 정책으로 무게중심이 기울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정부의 고급인력이 부족한 것은 박사나 기술사 등을 양성하는 인력양성프로그램이 절대 부족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환경부를 비롯한 산자부, 과기부, 건교부 가운데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고급인재 양성프로그램은 환경부에서 실시하는 혁신교육비 지원사업과 산자부가 해외유학코스로 매년 2명의 박사를 배출하는 것이 고작이다.
‘전문가가 없다’ 내지는 ‘기술사가 푸대접 받고 있다’는 말만 나오면 정부는 ‘기술사들을 육성해 우대하는 정책을 펴겠다’며 달콤한 사탕발림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제대로 대우를 받고 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기능올림픽 금메달수상자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체육 특기자 연금의 3분에 1에도 못 미치는 푸대접의 수혜를 받고 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표현은 이미 과거형이다. 21세기는 기술보국이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장급 인사에 아직도 ‘낙하산’인사 이뤄져
정부부처의 박사 및 기술사의 보유비율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과 관련, 行試를 통한 대규모 공개채용을 축소하고 가칭 부처자율채용고시를 도입해 전문가의 특별채용확대 방안을 장기플랜으로 제시하고 있어 기대를 걸지만, 그 실효성의 여부는 여전히 의문이다. 외부전문가의 채용범위를 직급별 정원의 20% 이내로 확대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제대로 굴러갈지 지켜볼 일이다.
둘째, 모든 정책이 자주 삐걱거리는 것은 잦은 순환보직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실질적으로 환경부의 수도관리과가 수도정책과로 흡수되던 ’01년 10월경부터 ’04년 9월까지 3년 동안 무려 6명의 과장이 교체되었으며, 이 중에는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계획대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각각 2년씩 평균 4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책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4년은 차치하고, 과장 1인당 평균 임기는 고작 6개월이었으니 그 정책이 어떻게 순항할 수 있겠는가.
또한 환경부는 지난 ’04년 3월, 환경정책국을 환경정책실로 승격 개편하는 과정에서 한달 여 동안 무려 318명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순환인사니 보직의 잦은 변경으로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갈수록 상실되어 가고 있다.
이는 공무원 배치관리에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단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공무원은 해당직무에 대하여 직종, 직급에 상응하는 직무분담을 받으면 이를 무리 없이 소화해야 함이 원칙이다. 공무원을 배치함에 있어서 선발된 직원의 전공분야, 훈련정도, 근무경력, 전문성 및 적성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동일부서 내 동일직무에서 장기근무로 인한 업무 침체와 사고 예방을 위하여 정기적으로 순환보직을 실시한다는 미명하에 과장급 인사가 평균 6개월에 한 번 꼴로 이루어 질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잦은 순환보직에 문제 생기면 책임자가 없다
순환보직이 결코 해당 공무원의 전문성을 길러주고 경쟁력을 확보해주는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오랜 근무경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 분야를 잘 소화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순환보직이 동일부서 내의 동일직무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셋째, 정책의 개발만 있고 개발된 정책과제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개발된 정책을 사업으로 연계시키다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타부서로 이동시키는 인사정책의 관행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지난 ’91년, 낙동강페놀오염사건이 터졌다. 현재 (사)한국자동차정비폐기물협회 권중철 상근부회장은 이 사건을 책임지고 공직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그는 보사부 식품위생과 근무시절에도 제대로 된 정책실행을 위해서는 공무원부터 전문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의식으로 위생사 1급을 손수 취득했다고 하니, 전문성이 결여된 오늘날의 공무원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인사를 제대로 해야 조직이 잘 굴러가고, 일도 순리대로 풀린다는 뜻이다. 조직이 건강한 인체의 혈액처럼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재가 배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공무원사회에 우선 전문가가 없다는 점과 잦은 순환보직, 그리고 정책의 개발만 있고 개발된 정책과제에 대한 책임이 없는 구조적인 모순의 해결 없이는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재가 배치되기 힘들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구성원의 능력을 최대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일은 특히 공무원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라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준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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