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합성화학물질의 발전은 중세 연금술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납이나 구리 등 일반금속으로부터 금을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던 중에 결국 원소의 개념을 터득하게 됐고 이는 합성화학물질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은 인류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매일 각종 화학물질들을 접하고 있다. 음료수로부터 건물에 칠해진 페인트, 각종 세척제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합성화학물질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에 개발된 DDT를 포함한 각종 농약은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었던 소위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을 가져다줬다. 이 결과로 우리는 풍족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의 개발은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20세기 발명된 나일론은 가히 옷감의 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불행이도 이러한 발명품들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 못지않게 그로 인한 예기치 못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들도 수두룩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DDT와 1960년대 월남전에서 사용된 고엽제(Agent Orange)다. 이처럼 화학물질의 안전한 생산, 저장, 운반, 사용 등과 관련하여 선진국들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행정부처-기관 간 의사소통 부족
우리나라의 경우 유해화학물질을 관리하는 현행법은 크게 봐서 4가지가 있다. 안전행정부(前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 환경부가 주무부처로 되어 있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그리고 소방방재청이 주관하고 있는 ‘위험물안전관리법’ 등이다. 이 법들은 각각 유해화학물의 관리목적과 대상에 따라 만들어진 법들이다. 따라서 전반적인 안전관리에 관한 사항은 안전행정부가, 유해화학물질의 등록과 그 물질의 유해정보에 관해서는 환경부가, 근로현장의 작업자 안전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그리고 사고 예방과 사고 처리에 관해서는 1차적으로 소방방재청이 각각 수행하고 있다.
본인이 지난번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현장을 다녀와서 느낀 첫 번째 문제점은 법령은 비교적 잘 되어 있으나 중앙 행정 부처 간 정보교류가 부족하며 또한 기관간의 의사소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실제로 화학공장이 위치하고 있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도 문제가 있다.
즉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시·군·구 등에 어떤 종류의 유해물질들이 어느 정도의 양으로 생산, 저장, 유통 또는 소비 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이에 대한 점검과 관리가 지역 소방서와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의 근로자들뿐만 아니라 유사시 이로 인한 사고에 대비하여 그 영향권에 있는 지역 주민들에게 홍보하고 교육하여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치가 전혀 되어 있지 않중요다. 대부분의 화학공장들은 혹시나 지역 NGO들의 공격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쉬쉬하고 있다. 실례로 구미불산 사고 시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그런 것이 있는지 조차 전혀 몰랐다.
제한된 신 물질 유해여부 시험, 실험의 한계
현재 위해성이 확인되지 않은 다양한 합성화학물질들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로 인한 사람이나 동·식물을 포함한 자연생태계의 피해를 예방하는 방법은 답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현재의 우리 사회 시스템이고 둘째는 독성학(Toxicology)에 기초한 실험의 한계다. 기업가는 돈이 될 만한 아이템들을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그래서 만약 어떤 합성화학물이 시장에서 잘 팔릴 것이라 생각하면 바로 공장을 짓고 생산에 들어간다. 물론 생산품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인하고 해당 관청으로부터 인가 또는 허가를 받아 시중에 내다 팔기 시작한다. 동시에 온갖 매체를 통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광고도 한다. 소비자는 이러한 광고와 관청의 인허가 제품이라는 사실만 믿고 구매해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즉 시판이 허락된 제품의 독성학적 안전성 시험이다. 예컨대 발암성 물질 같은 경우에는 상당한 기간 즉 수년 내지 수십 년을 테스트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실험, 즉 발암성, 비 발암성, 급성독성, 만성독성 등을 다 실험하지 못하고 시판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어찌 보면 과학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언급한 DDT나 Agent Orange(고엽제) 같은 경우다. 실험실에서 과학자들, 특히 화학자나 생화학자들이 특별한 목적으로 화학물질을 개발할 때 그 목적에 합당한가를 먼저 테스트하고 신 물질에 대한 환경적으로나 인체 건강상의 유해 여부는 극히 제한된 시험만을 하게 된다.
따라서 대부분의 화학물질들은 먼저 시중에 유통된 후 한참 뒤에야 그 물질의 부정적인 효과가 입증된다. 그리고 사회는 서둘러 생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테스트를 거친 다음에 시판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수년 또는 수십 년 실험하는 동안 기업 비밀이 유출되어 만약에 다른 경쟁사가 잽싸게 먼저 개발했다고 나오면 이 업체는 망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이자 우리가 만든 사회 시스템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더 좋은 대체물질이 개발되면 당장 바꿔야
BC 약 400년에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이 세상에 독이 아닌 물질은 하나도 없다. 단지 그 양과 빈도가 문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즉 ‘어떤 물질을 얼마의 양으로 얼마나 자주 섭취 하는가’가 관건이다. 설탕이나 소금도 지나치게 섭취하면 독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염소가스의 누출사고가 이어지면서 이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사실 염소로 소독된 물의 염소 독성으로 인한 피해는 거의 무시할 정도라고 생각한다. 즉 단위 부피당 어느 정도의 양으로 소독하느냐가 관건이며 또 염소 소독을 하지 않을 경우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한 물질이 개발되어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다. 상대적인 위해성을 판단한다면 염소 소독으로 인한 염소 독성문제와 염소 소독을 하지 않은 경우, 물 속에 있는 각종 세균으로 인한 질병 발병률을 감안하면 염소로 인한 피해보다 수인성 전염병이나 기타 물에 있는 세균으로 인한 피해가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염소로 소독하는 것이다.
물론 더 좋은 대체물질이 개발된다면 당장 바꿔야 된다. 근본적으로 어떤 물질을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고자 할 때 그 안전성의 여부는 위해성을 평가하고 관리하는 기관에서 판단하여 건의하면 해당 부처에서 그 사용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살상무기로 사용된 ‘염소’
염소는 원자번호가 17이며 질량이 35.453인 할로겐 물질로 지구의 지각 속에 95%나 존재하는 지구상에서는 아주 흔한 물질이다. 지나치게 염소가스에 노출되면 눈, 코, 입이 타게 되며 머리가 아프고 헛구역질을 하거나 구토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염소의 성질 때문에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벨지움의 이프리(Ypren) 전투에서 연합군을 향해 150톤의 염소가스를 5,700개의 실린더에 충전하여 아랫바람에 있는 영국군 진지를 향해 밸브를 열고 날려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발생한 사실이 있다.
미국 운송부(Department of Transportation)에서 발간한 ‘긴급대응 가이드 북(Emergency response Guidebook)’에 보면 200리터 미만의 염소 가스가 누출됐거나 흘러나왔을 경우에는 즉각 사고 지점으로부터 30m 이상으로 이탈하도록 하고, 바람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은 낮에는 300m 이상 밤에는 1.1km 이상 이탈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200리터 이상의 염소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즉각 현장에서 275m 이상 이탈하고 바람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은 낮에는 2.7km 이상, 밤에는 6.8km 이상 이탈하도록 되어 있다.
환경부 외 모든 부처도 적합한 지침 만들어야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유해화학물질관리와 관련하여 여러 부처가 다양한 법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 금년에 들어선 새 정부는 17부 3처 17청으로 정부 조직법을 개정했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단어 순서를 바꿨다는 것은 안전을 그만큼 중시 여기는 정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단어 하나 앞뒤를 바꾸었다고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화학물질의 수송과 관련하여 안전행정부(소방방재청), 환경부, 국토교통부가 다 관련이 있다. 그러나 자동차를 검사하고 화물을 통제하며 운전자를 교육하는 책임이 있는 부처는 국토교통부다. 따라서 국토교통부가 안전행정부와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안전한 수송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지난 불산가스 누출사고에서 보는 것처럼 마치 환경부가 모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생각한다. 환경부는 유해화학물질 자체에 대해 평가하고 안전한 관리 대책을 세워야 하며, 모든 부처는 그 유해성관리 정책에 따라 각기 자기 기관에 적합한 지침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지금 잘 지켜지고 있는가? 본인이 이 분야에 직접 가담하거나 연구한 적이 없어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다만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다면 ‘글쎄올시다’다. 만약 본인이 지금 당장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가서 염산을 가득 싣고 가고 있는 탱크로리 운전기사에게 ‘만약 이 차가 가다가 넘어져 염산이 도로에 흘러나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질문 했을 때 과연 몇 명이 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유해물질 취급 업체의 ‘법 집행의지’ 중요
인류가 유해화학물질들을 어떤 목적이든 사용하는 한 이러한 사고를 절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발생확률을 낮추거나 사고 시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다.
본인 생각에는 먼저 관련 부처 간의 정보교환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범정부적 유해물질 정보시스템 개발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화학물질을 생산, 또는 저장 하는 공장들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와 지역 소방서간에 평소 HOT라인 등을 구축하여 보다 유기적인 업무추진 체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는 사업주나 근로자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과 정부의 강력한 법 집행의지다. 법이 있되 지켜지지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한 법이 되고, 이를 통해 오히려 국민들이 법을 하찮게 여기게 된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도 문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결국 인류가 합성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한 그 위험은 항상 따라 다니며 사고 발생확률을 제로로 할 수는 없다. 다만 제도와 기술을 근간으로 하여 사고발생 확률을 최대한 줄여야 하며, 만약 사고 발생 시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평상시에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국방부 예산은 증가한 반면 환경 조직은 감소
본인은 1990년 미국 유학에서 복귀하여 국군화생방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1993년 낙동강 페놀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 당시 이병태 국방부장관이 전군에 유일한 환경학 박사였던 나를 바로 국방부 환경담당으로 보직하여 환경업무를 시작했다. 그 후 약 6여 년을 국방부 환경과장으로 재직하며 6개의 국방부장관 훈령을 만들었고 환경부와 국방부 간에 군·관환경협의체를 구성하여 지역별 군부대가 지역 환경관리청으로부터 도움을 주거나 받을 수 있는 체계를 수립했다. 이때 만든 훈령중 하나가 ‘군 유해물질관리 지침’인데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8년 미국 국방부 환경안전 차관보인 쉐리 굿먼(Sherry Goodman) 여사가 방한 시에는 ‘한국의 환경법과 주한미군의 환경문제’라는 주제로 특별 브리핑을 한 적도 있었다.
2000년 10월 국방부 환경과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네덜란드 헤이그 소재 ‘국제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기술지원부장으로 가서 약 8여 년 이상을 근무하고 2009년에 귀국했다. 귀국해서 보니 국방부 환경과는 없어지고 대신 ‘시설기획환경과’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겨우 6~7명의 인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본인이 물려줄 때는 12명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 당시 MB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고 요란법석을 떨고 있었는데 말이다. 상부에서 ‘소국 대과’를 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한 방에 2~30여 명이 북적대고 있는데 이게 사무실인지 남대문 시장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본인은 8여 년 동안 국제기구에서 5~6명 이상 같은 장소에 앉아서 일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렇게 국방부 환경과 관련한 얘기를 하는 것은 본인이 국방부를 떠난 후 예산의 규모는 3~4배 증가 했는데 조직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태에서 정책적 발전이 얼마나 있었겠는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본인이 귀국하자마자 당시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 단장인 김영후 중장(이후 병무청장으로 근무)이 바로 자문위원으로 위탁하여 곧바로 국방부 환경문제를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인은 현재 환경 관련 여러 문제들을 자문하고 있으며, 군 화학물질의 안전관리 대책과 관련하여 향후 집중적으로 연구해 우리 군이 유해화학물질의 안전관리와 관련하여 선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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