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고 최대 ‘비와호’ 역사
1896년 일본은 대형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하천법을 제정한다. 이후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급증하는 공업용수 수요로 비와호 종합 개발 특별 조치법에 따라 1972~1996년에 제방 설치, 수문 확장, 하천 정비 등이 이뤄진다. 당시 일본재정 1조9,000억 엔 가량 투입 됐다.
이런 가운데 1977년 비와호에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냥 마셔도 좋을 만큼 깨끗한 수질을 자랑했던 비와호가 인 등 유해물질 부영양화로 대규모 적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각종 생활폐수 공장폐수 등 오염이 심각해 졌다. 시가현 시민들은 호수가 붉게 물들고 각종 물고기들이 폐사하자 큰 충격을 받는다.
비와호 인근에 위치한 시가현 주민을 중심으로 수질 보전 운동이 시작됐다. 각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수질 정화 운동을 시작했고, 현의회도 각종 조례 제정을 통해 수질 보전을 뒷받침해주는 노력이 시작됐다. 이때 세제업계의 저항은 대단했다고 한다. 1977년 시가현 주부들이 합성세제 대신 비누를 쓰자며 벌인 자발적 ‘비누 운동’이 일어났다. 천신만고 끝에 1979년 지방정부인 시가현 측이 부영양화 방지 조례를 제정했으며 합성세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했다. 이것이 동아일보 등 한국의 주요일간지에서 주요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현 시가현 지사 가다유끼꼬 앞장
이 시기 가장 앞장을 선 여성이 현 시가현 지사 가다 유끼꼬 여사. 사이타마 출신인 가다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비와호의 경치에 반해 호수의 삶을 동경해왔다고 한다. 그녀는 교토대 농학부 시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6개월간 생활했으며, 한때 물 연구에도 몰두했다. 1979년 시가현으로 옮겨와 현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현내 120개 하천을 직접 다니며 조사를 벌였고, 40권의 책을 펴냈다. 2001년 건설당국 자문위원으로 일할 땐 ‘댐에 의존하지 않는 치수(治水)’를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안타깝다’라는 말을 구호로 내세워 재정난과 환경문제에 위기감을 느낀 주민들을 결집시켰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 말은 비와호 현장조사 때 나이든 주민들로부터 들었던 말로서 이들을 결집하는데 가장 주요한 구호가 되었다.
중앙정부 비와호 기반 환경기준 제정
일본 정부는 비와호 사례 성공을 기반으로 큰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1982년 전국 환경 기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시가현 시민들의 비누 운동을 귀감으로 삼은 것이다. 이후 시가현은 ‘수질오탁방지법 추가규제 조례’를 제정한다. 각 공장에서 배출하는 유해물질 규제 기준을 10배나 강화한 것이다. 그리고 환경친화형 농업 기술을 적용하는 농가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비와호 생태계 보전은 토종보존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비와호에 방생했던 외래종이 토종 동·식물을 싹쓸이 하자 외래종 방생 금지와 포획 시 사례금 제공 등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생태 커뮤니티’조성은 시가현 주민과 환경단체가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이를 활용해 마을의 지속가능한 성장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1992년 ‘갈대군락의 보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다. 2003년 ‘비와호의 레저 이용의 적정화에 관한 조례’를 발표하고 2기통 모터보트 사용을 금지했다. 2006년 수질 보전을 위해 삼림을 ‘비와호 삼림 조례’를 제정하여 개인과 법인에 삼림세를 부과하고 있다. 비와호 수질은 현재 BOD(생화학적산소요구량) 0.6~0.9ppm으로 1급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박물관도 명소..비와호 지킨 역정을 한눈에
‘비와호 박물관’은 시가현 비와호 남쪽에 있는 명소이다. 이 박물관은 비와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전시하는 공간. 비와호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1996년 10월이다. 박물관 구성과 전시 품목 선정 등의 개관 준비에만 11년이 걸릴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개관 이후 누적 관람객만 800만 명이나 된다. C전시실(2층)은 옛 비와호의 삶의 터전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1950년대 비와호 인근 가정집을 그대로 옮겨와 호수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것이다. 주민들은 60여년 전 비와호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동안 고난스런 맑은 호수 지킴을 통해 수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국은 비와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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