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자유부인, 조카에게 연애편지를 쓰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온라인팀 | eco@ecomedia.co.kr | 입력 2016-01-11 15: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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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문화로 보는 성(性) 인문학 시리즈

​유사이래, 생명의 탄생 이래 성(性)은 영원한 화두가 되고 있다. 신비로움, 호기심, 생리적 욕구의 중심에 있다. 개인의 삶도, 나라의 역사도, 인류의 문화도 밑바탕에는 성의 물결이 흐르고 있다. 이정택 후후한의원장이 영원한 테마, 성을 인문학 시리즈로 연재한다.   

 

 

 이정택의 성(性)으로 본 인문학 
 

<19> 왕실의 자유부인, 조카에게 연애편지를 쓰다
   
임금이 사는 대궐을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 한다. 아홉 번 거듭 쌓은 담 안의 궁전이다. 그러나 실제로 아홉 담장 안에 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깊고 깊은 곳을 상징한다. 숫자 구(九)는 가득 찬 만수(滿數)다. 다음은 십(十)인데 다시 0(零)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9는 가장 많다는 의미다. 중(重)은 겹친 것이다. 구중궁궐은 아홉 겹의 담장이 겹쳐 둘러쳐진 깊은 곳이다. 도성 속의 심산 오지라고 할 수 있다.

여인은 구중궁궐에 들어가면 살아서는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다. 왕후도, 후궁도, 궁녀도 마찬가지다. 물론 왕비가 친정부모의 생일잔치에 참여하고, 온천 행차 등을 위해 궁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또 궁녀도 심한 가뭄 등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출궁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예외에 속한다. 원칙적으로 죽음을 앞두지 않는 한 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렇기에 궁중의 여인은 우울증이 걸리기 쉬운 조건이다. 조선시대는 남성위주 사회다. 여성의 일상, 특히 궁궐 여성의 소소한 심리 변화를 기록하지 않았다. 궁궐여성의 우울증 자료가 없는 이유다. 하지만 궁궐의 숨 막히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우울증은 오히려 다른 집단에 비해 많을 가능성이 높다.

궁에 사는 여인은 왕비와 후궁, 궁녀다. 이중에 출산하는 사람은 왕비와 후궁이다. 출산 여성은 신체적, 심리적 변화가 있다. 마음과 몸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우울증이 된다. 출산과 관련된 에스트로겐과 여성에게 많은 갑상선은 우울증과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 여성이 출산 후 미묘하고 심한 감정변화를 보이는 이유다.

출산 후 관리여건은 왕비나 양반출신의 간택 후궁은 비교적 양호하다. 친정 식구들과 말벗을 할 여건이 된다. 반면 궁녀 출신의 후궁은 심한 심리적 요동에 노출될 수 있다. 심하면 우울증이 된다. 만약 출산 후 왕과의 관계가 나쁘거나 산모와 아이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

구중궁궐에서 연애편지를 잘못 써 목숨을 잃은 덕중은 산후 우울증부터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 덕중은 세조대왕의 후궁이다. 그녀는 세조가 왕이 되기 전의 잠저에서 심부름하던 여종이었다. 빼어난 미모의 그녀는 주인의 눈에 들었고, 아들을 낳았다. 왕이 된 세조는 덕중을 궁으로 불러들여 정3품 소용(昭容)의 후궁 첩지를 내렸다. 그러나 곧 다섯 살 아들이 죽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다. 이 기간이면 출산 후 아들을 잃은 데서 온 우울증은 극복할 시간이다.

문제는 피가 끓는 청춘이라는 점이다. 덕중이 10대 후반에 세조의 성은을 입었다면 나이는 20대 후반이다. 세조의 나이는 50 언저리다. 쉰 살 무렵이면 남성호르몬의 감소로 여성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진다. 특히 세조는 스스로 “여성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대신들에게 공공연하게 말하는 임금이었다. 실제는 왕은 정희왕후 외에 후궁으로 근빈 박씨와 신숙주의 서녀인 숙원신씨 그리고 덕중 밖에 두지 않았다. 연령 많고, 성적 관심도 적은 세조에게 덕중은 잊혀진 여인에 불과했다. 
   
10여년 외로움에 몸부림친 여인은 환관 송중에게 눈길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연애편지를 받은 송중은 몸을 부르르 떨며 세조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세조는 기가 찼지만 널리 알릴 사안도 아니었다. 덕중은 참수형에 해당됐지만 옛 정을 생각해 소용 첩지만 거두었다. 후궁이던 그녀는 궐에서 잡일을 하는 방자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뜨거운 몸은 식지 않았다. 궁궐의 훈남 구성군 이준이 보였다. 27세인 구성군은 무과에 장원급제를 한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다. 특히 세조의 조카로 특별한 총애를 받던 당시 최고의 엄친아였다. 헌헌장부를 본 덕중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쳤다. 굳이 따지자면 시조카지만 동년배 남성이었다. 그녀는 구성군에게 한글 연애편지를 썼다. 구구절절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연서를 본 구성군은 기겁을 했다. 삼촌이자 왕의 여인이 보낸 연애편지는 자칫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크나큰 악몽이었다.

구성군은 아버지 임영대군에게 상의했고, 둘은 곧바로 임금을 뵈었다. 세조는 왕실의 치부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덕중을 상궁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조용히 넘겼다. 그런데 덕중이 또 한 번 편지를 보냈다. 임영대군과 구성군은 벌벌 떨면서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세조는 편지의 전달자인 환관 최호와 김중호를 친국했다. 환관들과 이들에게 편지를 전한 덕중 처소의 궁녀들은 “안부편지로 알았다”고 한결같이 진술했다. 환관과 나인들은 고문을 받다 숨졌다. 덕중은 하옥됐다.

세조는 마음을 다른 남자에게 둔 연인이지만 목숨만은 살리고 싶어했다. 세조는 11년(1465년) 9월 4일 대신들에게 물었다. “덕중의 죄는 극에 달했다. 종친(宗親)을 더럽히고 환관을 해하게 했다. 마땅히 죽여야 하지만 오랜 기간 내 곁에 있어 너그럽게 처벌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대신들은 모두 “죽여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덕중은 교수형을 당했다. 임금은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구성군에게 “너는 걱정하지 말라”며 술자리를 마련했다. 구성군에게 춤을 추게 하며 위로했다. 또 대신들에게 “구성군은 죄가 없으니 다시는 처벌을 거론하지 말라”고 일침했다. 임금은 “덕중 사건과 관련해 5명이 죽었다. 백성이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겠다”며 대사면령을 내렸다.

금단의 열매는 따 먹을 수 없다. 덕중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사랑의 열병은 금단의 열매도, 윤리도 때로는 눈멀게 하는 듯하다. 어쩌면 구중궁궐의 숨막히는 외로움이 더 문제였으리라. 연민의 감정은 외로움을 더는 유일한 호흡이었을 테니까.

 

 

글쓴이 이정택
후후한의원 원장으로 경희한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의학계에서 시선이 집중되는 한의사로 2013년에 조루증치료 한약 조성물인 기연탕을 특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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